▶ 관세로 생긴 균열, 중동 포화로 더 벌어져… “유럽 스스로 싸우라”
▶ 당장 우크라戰 영향 받을듯…트럼프 ‘거래적 동맹관’에 韓 여파도 촉각

트럼프 대통령[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의 전쟁을 계기로 77년간 지속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를 뿌리째 뒤흔들 태세다.
세계 최대의 집단방위 체제인 나토의 유럽 동맹국들이 정작 미국이 필요로 할 때 뒷짐만 지고 있다면서 연일 '후폭풍'을 예고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시작한 대(對)이란 전쟁 과정에서 나토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더니, 최근에는 '무용론'을 넘어 탈퇴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나섰다.
결정적 계기는 이란이 사실상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파병 요구였다. 해협 봉쇄로 곤경에 놓인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를 위시한 동맹국들에 지난 14일 해협 개방을 위한 군함 파견을 요구했는데, 이에 응한 국가는 아직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들에 격노하며 "기억하겠다"고 벼르는가 하면, 영국·프랑스·독일 등 나토의 주요 유럽 회원국들을 "종이호랑이"이자 "겁쟁이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호르무즈 해협의 '수익자 부담 원칙'을 들고나왔다. 해협을 통한 에너지 수송에 의존도가 큰 유럽 국가들이 스스로 봉쇄를 뚫고 자국으로 에너지를 실어 나르라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그 해협의 책임을 이용 국가가 지도록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고 말하더니 31일에는 대놓고 "가서 당신들의 석유를 직접 확보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토 동맹국들을 향해 "당신들은 스스로 싸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면서 "당신들이 우리를 위해 그곳에 있지 않았듯이, 미국도 더 이상 당신들을 돕기 위해 그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냉전 시기, 구(舊)소련의 침공과 공산주의 팽창에 맞서기 위해 1949년 북미·유럽 국가들이 만든 기구다. 한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모든 회원국이 대응하는 집단방위 조항(헌장 제5조)이 핵심이다.
'대서양 동맹'으로도 불리는 이 체제는 미국의 군사·자금력에 크게 의존해 왔는데, '당신들을 돕기 위해 그곳에 있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체제의 존속 필요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도 가세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전날 "나토가 단지 유럽이 공격받을 때 우리가 방어해주는 것뿐이고, 우리가 필요할 때 주둔권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그다지 좋은 합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날 "우리가 자유 진영을 대신해 이런 규모의 작전(대이란 전쟁)을 수행할 때 (나토의) 동맹들이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할 의지가 있는지가 세상에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또 "(이란의) 미사일들은 미 본토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나토) 동맹국과 다른 국가들이 사정권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추가 지원, 단순한 접근, 기본적인 영공 통과를 요청하면 질문, 장애물, 주저에 직면한다"고 말했다.
나토 동맹들이 전쟁 지원에 소극적일 뿐 아니라 비협조적이었다는 헤그세스 장관의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유럽의 대표적 우방인 영국·프랑스를 겨냥한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을 향해 "이란 (지도부) 참수에 참여하길 거부"했다고, 프랑스를 향해 "군수 물자를 실은 채 이스라엘로 향하는 비행기들이 프랑스 영토 위로 날아가는 걸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나토 내부의 균열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불거지기 시작해 이란 전쟁을 거치면서 한층 뚜렷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면서 유럽 국가들의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올리도록 압박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공세를 막아내는 우크라이나 지원도 유럽을 통한 '무기 판매' 방식으로 바꿨다.
나토 회원국에 대한 방위비 압박과 별개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고율의 관세 부과에 이어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 시도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보복성 관세 위협을 받기도 했다.
결국 유럽 국가들이 이란 전쟁에 소극적인 것은 나토의 핵심인 제5조가 이번 전쟁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명분론과 함께, 동맹국들에 가혹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이 유럽 내 반감을 자극한 결과일 수도 있다. 또 2월28일 대이란 공격 개시 직전까지 나토 동맹국들의 작전 동참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것도 유럽의 냉담한 반응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표대로 이란 전쟁이 4월 중 어떤 형태로든 매듭지어지고 나면 나토 문제가 수면 위로 본격 떠오를 가능성이 주목된다.
그리고 4년 넘게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 유럽이 이란 전쟁을 대하듯 미국도 우크라이나전을 "우리 전쟁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대응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무기를 중동에 전용할 수 있다는 미 언론의 보도에 대해 "우리는 늘 그렇게 한다. 종종 여기서 가져다가 다른 데 쓰는 것"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이란 전쟁이 수습되고 나면 미국이 어려운 상황에 몰렸을 때 동맹의 도움을 받지 못한 점을 문제 삼으며 무역·안보 협상에서 한층 일방적 공세에 나설 경우 나토는 물론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결속력이 저하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를 향해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래적 동맹관'을 고려할 때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한국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역시 지난 15일 영국·프랑스·중국·일본과 함께 호르무즈 파병 요구 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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