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대의 한국 가요계는 가수가 스케줄, 분장, 의상 준비, 출연료(일명 카라) 등을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원시적인 시스템이었다. 한마디로 척박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랬고, 그 이후도 한동안 같은 운영 방식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한 시스템이 변화를 맞이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1년 어느 날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신인 가수 이춘희는 방송 프로듀서인 최동욱으로부터 매니저 제안을 받게 되고 그녀는 단칼에 거절했다.
-최동욱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그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조선호텔 커피숍에 갔다. 그러나 그의 제안을 받고 나서 당황하여 바로 거절했다. 그 이유는 매니저란 용어가 그 당시로는 생소하였고, 매니저가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조차 몰라 그가 설명한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시종 협조적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내 행동이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오해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하지만 그 당시엔 매니저란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아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아마 국내 첫 번째 매니저를 가진 가수로 기록되었을텐데...
-일전에 왕년 가수들의 중고 음반 가격을 인터넷으로 알아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대개 실세들의 가격대는 3만원에서 15만원대로 형성되는데 그중에서도 이춘희 씨의 레코드가 35만원이나 호가하여 깜짝 놀랐다. 이것을 알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나의 음반이 중고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듣는다. 그래도 한편으로 기쁘다. 아직도 기억해 주는 팬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 음반에 어떤 곡이 수록되어 있나
▶Malagueña, Passion Flower, Quizas, Quizas, Quizas, Quierme Mucho, 꽃잎의 월츠,
Ole Torero 등이 실려있다.
-미국에서 화려하게 꽃피울 기회가 있었는데 왜 갑자기 연예계를 떠나게 됐나
▶1965년 첫째를 갖게 되자 활동하기 힘들어 가수 활동을 중지했으며, 그 후 가정에 머물며 아이들 양육에 전념했다.
-요즘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
▶안상석 단장이 운영하고 박종수 지휘자가 이끄는 실리콘밸리 한인 노인회 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다. 단원 약 60명으로, 매주 금요일에 모여 약 1시간가량 연습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지나간 삶을 뒤돌아본다면 어떤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1962년 일본 공연 갔을 때 세계적인 가수 Frank Sinatra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을 때 그 순간이 나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두 아들을 위해 나의 가수 활동을 은퇴한 일. 대장암으로 힘들게 살다 간 나의 남편을 28년 동안 병수발하며 최선을 다한 일. 허나 이 모든 것들을 후회 없이 살아온 내 인생이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난 똑같이 할 것 같다.
-인터뷰 동안 느낀 심정은
▶사실 난 지금까지 나의 과거 화려했던 연예 경력을 잊고 있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나의 가버린 무대 인생을 돌이켜 볼 수 있었으며 '나에게도 그렇게 빛나는 시절이 있었던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기회를 가졌다. 주위에서도 나를 다시 보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난 그동안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왔으니... 끝으로 이런 기회를 준 한국일보에 감사를 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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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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