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 유력인사 조세회피 의혹 ‘파나마 페이퍼스’
▶ ICIJ 필두로 각국 언론사들 ‘부패 알리기’ 연대
세계 각국 정상 등 지도자급 인사 72명을 포함해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전대 미문의 역외 탈세의혹을 담은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가 폭로되면서 그 파문과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특히 이 자료의 공개가 가능하기까지 세계 각국 언론인들의 지치지 않는 노력이 빛을 발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이번 폭로가 변화의 기폭제가 될지 관심이 쏠이고 있다.
■어떻게 공개됐나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는 세계 각국 언론인들의 연대와 협력이 없었다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파나마의 최대 로펌인 모색 폰세카가 보유한 1,150만건의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데는 세계 76개국 107개 언론사 기자 370여명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무려 2.6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모색 폰세카의 내부 자료는 당초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이 확보했다.
해당 언론사는 입수경위에 대해 “익명의 제보자가 암호화된 채팅을 요청해 와 자료를 넘겨줬다”며 “그는 아무런 보상 요구 없이 ‘범죄를 알리고 싶다’고만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자료가 워낙 방대한데다 세계 각국이 연루된 사안이라 쥐트도이체차이퉁은 홀로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ICIJ에 협조를 요청했다.
ICIJ가 지난 4일 홈페이지를 통해 “자료의 규모가 워낙 방대해 제보자로부터 이를 넘겨받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고 할 정도였다. 이로써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ICIJ는 자료를 영국 BBC, 프랑스 르몽드, 독일 NDR, 미국 프로퍼블리카 등 76개국 107개 언론사와 공유했고, 자료 분석에는 소속 언론사 기자 376명이 동원됐다. 그 대상은 모색 폰세카가 1977년부터 2015년 말까지 거래한 내역이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의 배스티안 오베르마이어 탐사보도 전문기자는 “유출 자료는 언론인으로서 접해본 최대 규모의 기밀자료였다”며 “전 세계 기자들이 자료를 각국 재판 기록, 이해관계자 증언, 공적 장부 등과 비교해 진위 여부를 가려냈다”고 AP통신과 인터뷰에 말했다.
모색 폰세카는 파나마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스위스 등 역외 탈세국을 포함한 전 세계 42개국에 지사를 둔 직원 600명 규모의 법률회사다. 영 일간 가디언은 “30만개 이상의 회사에 페이퍼컴퍼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회사”라고 모색 폰세카를 소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모색 폰세카가 설립해 준 페이퍼컴퍼니의 90%에 이르는 21만4,000여개 업체의 정보를 담고 있다. 자료상 모든 페이퍼컴퍼니 정보가 역외탈세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료를 전한 ICIJ는 “유출 자료는 ‘검은 돈’이 수 십년간 조세회피를 통해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줬는지 보여준다”고 경고했다. ICIJ는 자료에 담긴 인물 및 기업의 전체 명단을 오는 5월 초에 공개할 예정이다.
■변혁 불러올까
이 '파나마 문건'에 이름이 올라 있는 각국 독재자와 정치인, 갑부, 유명인들이 숨죽이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문건에 포함된 다른 인물들의 심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건은 이미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폭로 하루 만에 아이슬란드 총리가 사임했고, 미국·프랑스·독일 등이 조사 방침을 밝히고 나서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더 가혹한 형벌은 문건 관련자들을 겨냥한 뜨거운 시선이다. 문건 폭로 이후 세계 주요 언론매체들은 사설과 칼럼, 기명 기사를 통해 ‘1%의 행태에 대한 99%의 분노’ ‘사회 변혁의 기폭제’ ‘릭티비즘’(leaktivism·폭로와 변혁운동 조어) 등의 표현을 써가며 연일 핫이슈로 다루고 있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 폴리시 지난 5일 '만국의 납세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를 제목으로 한 기고문을 실었다. 2011년 9월부터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세계 80여개 국으로 번졌던 '월가(금융중심지)를 점령하라' 시위를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러시아와 중국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파나마 문건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 주석이 거명됐기 때문이다. 양국 모두 자국 내에서 파나마 문건 보도가 제대로 이뤄지면 부정부패 척결작업은 물론 지도자 리더십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이런 탓에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파나마 문건을 겨냥해 자국 지도자들과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서방의 음모'라고 차단막을 치고 보도 통제에 나섰다. 파나마 문건 파동으로 기득권을 가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부정부패 의혹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각국에선 민심이 술렁대고 있다.
문건의 출처인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는 문건에 나온 개인과 기업들의 유령회사 설립과 운용은 합법적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조세회피처 파나마에 유령회사 설립과 은행계좌 개설이 그 자체로 불법의 증거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이면의 부패와 탈세의혹에 99%의 분노가 향한다는 점이다. 월스트릿저널은 “더 크고 중요한 질문은 그렇게 많은 나라 정부들의 그렇게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았느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도 아이슬란드·러시아·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의 정상들을 거론하면서 ‘공직자들이 숨긴 의심스러운 부’를 드러낸 것을 파나마 문건의 중요한 의의로 꼽았다.
NYT는 탈세로 인한 세수 손실은 실소유주를 숨길 수 있도록 해주는 재산은닉 체제가 초래한 부수물이라며 "정말 위험스러운 일은 부패 정치인들이 훔친 재산을 자국 국민들의 눈을 피해 빼돌릴 때 민주주의 지배와 지역 안정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파나마 문건 파동은 "글로벌 정치 엘리트의 상당수가 세계를 통치할 게 아니라 감옥에 가는 게 맞다"는 증거라는 의미를 넘어 이런 체제를 바꿀 수 있는 사회변혁의 계기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게 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적했다.
포린 폴리시도 파나마 문건이 "변혁의 기폭제가 될 것이냐"고 자문하고, 세계의 대중이 이미 "부패 피로증"에 걸려 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
■역외회사 주주 3,500명
미국 주소지 보유 드러나
사상 최대의 조세회피 의혹 폭로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미국 주소를 가진 3,500명이 역외회사(조세회피처에 설립되는 일반적인 회사) 주주로 등장한다고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SZ)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이 자료를 처음 입수한 SZ는 이날 독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질문을 추려내 볼프강 크라흐 편집인이 답변하는 형식을 취한 문답 기사에서 이같이 전했다.
크라흐 편집인은 이번 폭로와 관련해 러시아 등 다른 국가와 달리 독일과 미국의 정치인에 관한 보도는 왜 없느냐는 물음에 이미 2014년 알려져 보도된 전 독일 기독민주당의 회계 담당자 헬무트 린센을 제외하고는 해당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적게 등장하는 것은 와이오밍, 델라웨어, 또는 네바다 같은 미국의 주에서 역외회사를 만들기가 쉬우므로 굳이 파나마 로펌을 접촉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SZ에 자료를 건넨 제보자의 동기와 관련해서는 제보자는 "이들 범행이 공개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매우 명백하게 도덕적 충동에 관해 표현했다고 전했다.
그는 모색 폰세카가 주장하는 것처럼 제보자가 (자료를 빼내려고) 해킹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