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주변국 출신 33만6천여명
▶ 다수가 강제노동·폭력·임금착취 등 학대 시달려
홍콩의 외국인 가정부들은 현대판 노예와 다름없다.
홍콩의 비영리 인권단체인 ‘저스티스 센터’는 1,049명의 외국인 가정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조사결과를 인용, 이들 중 6명당 1명이 강제노동, 물리적 폭력, 임금착취 및 식사와 휴식 박탈 등과 같은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전체 조사대상자들 가운데 14%는 인신매매 피해자로 드러났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금융 중심가는 번쩍이는 고층빌딩과, 고급 부티크와 억만장자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화려한 외관의 뒷면에는 외국인 가정부 33만 6,600명의 피땀 어린 노역과 눈물이 강을 이룬다.
저스티스 센터의 보고서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외국인 가정부들 가운데 5만 6,000명은 강제노동의 피해자다.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제이드 앤더슨과 빅토리아 위스니 오테로는 “이제 홍콩은 불편한 진실을 깨끗이 털어놓아야한다”며 “더 이상 더러운 쓰레기를 카펫 밑에 감추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고용주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셸터로 도피한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피해자는 저스티스 센터 관계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간 하루 20시간의 살인적인 중노동에 시달렸으며 매일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이름을 문(23)이라고만 밝힌 이 여성은 최근 “너무 겁이 났다. 홍콩에서 외국인 가정부들은 거의 모두 나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덧붙였다.
홍콩 정부는 모자라는 가사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1970년대에 외국인 가정부 고용을 허용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주변국 출신으로 대부분 자국의 인력모집 에이전시를 통해 홍콩으로 건너왔으며 고용주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집에서 숙식할 것을 요구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홍콩 현지법에 따르면 가사도우미는 1주일에 하루를 쉴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규정에 불과하다.
저스티스 센터는 보고서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가사도우미들은 강제노역과 학대에 취약하다”며 그 이유로 “일과 개인생활의 경계가 모호한데다 아무나 들여다 볼 수 없는 닫혀진 문 뒤로 고립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가정부들의 학대사례가 연일 터져 나오자 홍콩정부는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홍콩 공안국 대변인은 CNN에 이메일로 보낸 스테이트먼트를 통해 “우리는 인신매매에 대항하는 견고하고도 검증된 법적장치를 갖추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의 진술을 들어보면 공안국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문은 지난해 초 고국인 인도네시아를 떠나 홍콩에 도착했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병마에 사로잡힌 노모를 부양할 수 있다는 희망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문의 월급은 4,110 홍콩달러(미화 530달러)로 책정됐다. 그 당시 홍콩의 최저임금을 기준한 것이었지만 인도네시아의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웨이트리스로 활동하며 받았던 임금보다 4배나 많은 액수였다.
홍콩 현지의 법에 따라 외국에서 건너온 가사도우미들은 반드시 고용주의 집에서 지내야 한다. 그러나 고용주가 문에게 내어준 방은 계약서에 명시된 80평방피트보다 훨씬 좁았다.
본격적인 시련은 입주 한달 뒤부터 시작됐다. 고용주는 거침없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고 툭하면 따귀를 날렸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물건을 제자리에 정돈해두지 않았다는 것이 무자비한 폭력의 이유였다.
문을 채용한 고용주의 가족은 거의 매 끼니마다 먹다 남은 음식을 내주었다. 조리한지 수일이 지나 쉰 냄새를 풍기는 부패한 음식물 탓에 그녀는 여러 차례 식중독에 걸렸고 체력은 급속히 바닥났다.
건강을 상해 기력이 쇠잔해진 상태에서 며칠씩 이어지는 하루 20시간의 중노동을 버티기란 불가능했다.
거의 매일 되풀이되는 폭행과 표현하기조차 힘든 학대로 “돈을 버는 것보다 목숨을 건지는 것이 급선무”라는 다급한 생각이 들었으나 취업알선업체가 여권을 빼앗았기 때문에 움치고 뛸 수조차 없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인력모집 업체에 빚을 진 상태였다.
취업 브로커는 그들의 동업자 격인 인도네시아의 고리대금업자를 문에게 소개해주고 거액의 일자리 알선료를 변통하도록 했다. 문이 빌린 돈을 멋대로 대납한 브로커는 고리의 원래의 상환금에 별도의 이자까지 붙인 액수를 매월 그녀의 봉급에서 ‘원천징수’했다.
고용주가 문이 아닌 브로커의 계좌에 그녀의 월급을 입금하면 브로커는 여기서 75%를 대출상환금 명목으로 제하고 나머지 25%를 문에게 돌려주었다.
한마디로 고리대금업자와 취업 브로커가 고용주와 한 통속이 되어 문을 철저히 착취한 셈이었다.
지난 연말 어느날, 거의 초주검이 되도록 구타를 당한 문은 주인가족이 외출한 틈을 타서 거주지역 셸터로 도주했다.
셸터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35킬로그램(75파운드)에 불과했고 온 몸이 멍과 상처투성이였다.
저스티스 센터에 따르면 문과 같은 초짜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고용주의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생애 첫 번째 가정부 계약이라 이 바닥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데다 취업 브로커에게 거액의 빚을 지고 있어 완전히 발목이 잡힌 상태이고 타지에서 이주한 탓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저스티스 센터는 문과 같은 피해자가 속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노동 자체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가사도우미는 반드시 고용주의 집에서 기거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폐기하며, 인력모집업체에 대한 당국의 감독을 강화할 것 등을 주문했다.
저스티스 센터는 또 가사도우미에게 고용주가 적정한 수준의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고 근로시간에 제한을 두도록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콩에서는 지난 2014년에도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인 에르위아나 수리스티아닝시가 고용주인 주부 라우 왕-퉁의 집에 사실상 감금당한 채 고문에 시달린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에르위아나를 며칠씩 굶기고 거의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무보수로 혹독하게 부린 왕퉁은 불법감금과 가정부 학대 혐의로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왕퉁처럼 가정부를 학대한 고용주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재 자녀들 둔 홍콩 가정은 세 가구당 하나 꼴로 하녀를 두고 있다.
저스티스 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홍콩 전체 노동인력의 10%가 외국인 가사도우미이며 이들 중 절대다수가 여성이다.
<
김영경 객원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