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암살’ 최동훈 감독】
‘작당’(作黨)해서 ‘모의’(謀議) 한 뒤 ‘수행’(遂行)하고 ‘작별’(作別)한다. 이것은 최동훈(44) 감독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의 신작 ‘암살’은 딱 그런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독립군 암살단과 일본군, 친일파와 독립군 내부의 적과 정체불명의 사나이라는 캐릭터가 있고 이들이 안옥윤과 속사포, 하와이피스톨과 포마드 같이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이름과 결합한 뒤 이 역할을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등이 나눠 가지면‘그래 이게 최동훈이지’라고 무릎을 탁하고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살’을 다 보고 나면 조금 의아할 것이다. ‘최동훈 작품이 맞나?’‘이 촉촉함은 뭐지?’‘이 묵직함은 뭐지?’‘최동훈 영화에 감동이?’‘심지어 쿨하지도 않잖아?’ 등등 의문이 이어진다. 최동훈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최동훈은 “내가 좋아하는 걸 버려라”“전작(前作)은 나의 적”“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어요”“제 욕망이죠”“불안하고 부담스럽죠”“어떻게 만들지 또 고민해야죠” 같은 말을 했다. 욕망과 불안, 그 사이에서 최동훈은‘암살’을 완성한 듯했다. ‘암살’이 영화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흥미롭게 느껴지는 건 ‘도둑들’(2012) 이후 최동훈 감독의 3년이라는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결국, 욕망과 불안의 시간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최동훈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느냐’ 대신 ‘최동훈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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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보고회 때와 시사회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암살’을 만드는 데서 오는 고충에 관해 이야기를 자주 했다. “1년 걸려 쓴 시나리오를 폐기처분하고 다시 썼다”는 류의 이야기 말이다. 힘들게 완성한만큼 이번 영화에 더 애정이 있겠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애정이 있다고 해서….(웃음) 당연히 애정이 있다.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SF 영화를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우리 머릿속에 그 시대(일제강점기)는 큰 공백처럼 느껴진다. (당시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사실 잘 상상이 안 가는 면이 있지 않나. 조선시대와는 달리 1930년대 경성에 관한 레퍼런스는 많지 않다. 그 공백을 보여주고자 했던 욕망이 강했다. 잘 보여주고자 했던 책임감, 사명감도 있었다. 다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 난도가 높았던 거다."
- 두 차례 공식 행사에서 불안감 같은 게 보이더라.(웃음) 당신의 과거 자료를 찾아보니 ‘전우치’(2009) 개봉 당시 했던 인터뷰에서도 ‘불안’에 관해 이야기했던 게 있더라. 그때의 불안과 지금의 불안, 무엇이 다른가.
“음…. 글쎄. 근본적으로는 같은 불안감이다. 관객,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아니고 내 영화를 사람들이 본다는 불안감인 것 같다.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랄까. 내 영화가 좋은 영화, 재밌는 영화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이라는 건 그런 것 같다."
- 독립군의 사진을 보면서 이 영화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기획했던 영화라고도 했다. 내게는 당신의 말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한 명확한 대답으로 느껴지지 않더라. 개운치 않은 대답이라고 해야 하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영화는 막연한 욕망에서 시작한다. 2012년에 ‘도둑들’이 나왔고 올해 ‘암살’이 나왔다. 3년이다. ‘3년 동안 뭘 하면서 살 것인가’ 그런 문제다."
- 독립군이라는 소재는 좋게 말하면 ‘클래식’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안 좋게 말하면 ‘올드’할 수도 있다.
“정확한 표현이다. 조선시대는 올드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일제강점기는 올드한 느낌이 있다.(웃음) ‘올드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전략은 개인에게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교육적 목적으로 그 ‘시대’를 보여주는 게 아니고 그 시대를 살았던 ‘개인’, 캐릭터에 집중했다."
- 캐릭터 이야기가 나왔으니 묻겠다. ‘암살’은 상대적으로 당신의 전작보다 캐릭터가 확 사는 영화는 아니다. 어떤 차이인가.
“전작의 캐릭터들은 등장하자마 ‘나 이런 사람이야’를 말한다. 쉽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암살’에서는 관객이 등장인물을 알아가게 했다. 윤곽만 보여준 뒤에 영화가 끝나면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라고 알게 하는 방식이었다. 영화가 진지해지고, 인물이 진지해진 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 상대적으로 느린 영화를 만든 건 혹시 난 이렇게 해도 잘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었나. 일종의 뽐냄이랄까.(웃음)
“그렇지는 않다. 해보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욕망이라고 말한 거다.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범죄의 재구성’이 진짜 빠르다. 그거 찍고 나니까 정서적인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게 ‘타짜’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타짜’는 느린 영화다. 화투 치는 장면만 빠르지.(웃음) ‘타짜’하고 나니까 빠른 거 하고 싶더라. 그게 또 ‘전우치’다. ‘전우치’가 끝나니까 더 빠르게 하고 싶었다. 그게 ‘도둑들’이었다. 이제 ‘정취’가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암살’의 템포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걸 고민하는 시간이 정말 길었다. 시나리오 쓰기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잘 할지 못 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한번 가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살’은 끝났다. 이제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 또 고민해야 한다.(웃음)"
-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영화를 보면 정말 공을 들였다는 게 느껴진다. 180억원이라는 돈을 어디다 썼는지 보인다. 그만큼 정교하니까. 그런데 꼭 이렇게 해야 했나. 이 정도까지 정교한, 화려한 세트를 만들거나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이야기만 좋다면 말이다.
“영화로 돈을 벌려면 이렇게 찍으면 안 된다.(웃음) 예산이라는 건 따내는 거다. 그건 투쟁이다. 왜 그렇게 하느냐면 표현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하고 싶은 영화가 딱 다섯 장소만 필요한 영화라고 한다면 예산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암살’은 상해와 경성, 경성 시내와 여러 건물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애써 만든 세트를 부숴버린다. 난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 음…영화에는 꿈 같은 게 있다. 꿈이 컸던 것 같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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