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아이돌 그룹은 갈림길에 선다. 이쯤 되면 꾸준히 유지했던 그룹의 콘셉트와 정체성이 있으니 ‘그 노래가 그 노래’라는 평을 들을 때다. 여기서 이들은 지금까지 추구했던 스타일을 고수해 팬덤을 더욱 공고히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시도로 자신을 어필해 좀 더 대중적인 아이돌로 나아갈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올해로 데뷔 5년차, ‘인피니트’도 그 갈림길에서 헤매는 듯 했다. 데뷔 초창기 타이틀곡부터 꾸준히 작곡가 그룹 ‘스윗튠’과 함께 하면서 "인피니트의 노래는 스윗튠스럽다"는 게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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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노래로 승부수를 던지며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입지는 다졌지만 역시 `그 노래가 그 노래’라는 생각에 슬슬 지겹다는 얘기가 나오던 참이었다.
이 때 인피니트는 지난해 7월 낸 리패키지 앨범 `비 백’(Be Back)의 타이틀곡 `백’(Back)으로 변화구를 던졌다. 새로 만난 작곡가 ‘알파벳’(RPHABET)과 함께 기존 인피니트의 색과 다른 곡을 내놨으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낯설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1년 뒤, 인피니트는 미니5집 ‘리얼리티’(Reality)로 완벽한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 13일 발매한 `리얼리티’는 팬과 대중사이의 갈림길에 선 아이돌 그룹 5년 차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양 쪽 모두를 만족시키며 영리하게 극복한 앨범이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 ‘배드’(Bad) 역시 작곡가 알파벳의 곡이다. 지금까지 인피니트가 주로 내세웠던 밝고 청량한 분위기의 곡이 아니라 어둡고 날카롭다. 1초도 쉬지 않고 귀를 때리는 듯한 강한 사운드는 뮤직비디오 속 달려 나가는 멤버 김성규의 모습처럼 앞으로 돌진하는 느낌까지 준다.
13일 쇼케이스에서 “스윗튠하고 작업을 굉장히 오래 했기때문에 지금까지 인피니트는 스윗튠스럽고 복고적인 이미지였던 것 같다"고 했던 김성규의 말처럼 좋게 말하면 복고, 나쁘게 말하면 촌스럽게 느껴지던 인피니트가 ‘배드’를 통해 완벽히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변화에도 다행스럽게 인피니트는 팬덤까지 만족시킬수 있는 키 포인트인 ‘인피니트만의 색’을 잃지 않았다. 인피니트의 색을 완성하는 것은 그들이 꾸준히 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그들은 데뷔 때부터 사랑에 목매는 남자의 모습을 노래했다.
데뷔곡 ‘다시 돌아와’에서 “이렇게 너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다시 돌아와"라고 달뜬 감정을 주체 못하고 애원하던 소년들은 `나씽 이스 오버’(Nothing‘s Over) `내꺼하자’ `추격자’ 등을 거쳐 이제는 반항기에 접어들었다. `배드’의 도입을 시작하는 김성규의 보컬은 마치 `날 만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집착으로까지 들린다.
또 하나 인피니트의 곡에서 돋보이는 것은 두 메인보컬의 조화다. 강렬하고 날카로운 김성규의 목소리와 부드럽고 안정적인 남우현의 목소리가 강약을 이루며 인피니트의 색을 완성한다. `배드’에서도 강렬하게 시작하는 김성규와 애절하게 애원하는 남우현의 목소리가 곡의 강약을 조절하며 완성도를 높인다.
마지막으로 인피니트의 소년성을 완성하는 것은 멤버 이성종의 보컬이다. 뛰어난 가창력은 아니지만 특유의 미성과 힘을 뺀 목소리로 곡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인피니트만의 느낌을 완성한다. 이번 타이틀에서도 이성종의 목소리는 ‘넌 마치 꿈인 듯이 그대로 사라져’라는 가사로 강렬한 노래 가운데 느껴지는 허망함을 전달한다.
이번 앨범 `리얼리티’의 다른 수록곡은 기존 인피니트의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구성이다. 전부한 번씩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작곡가들의 곡들로 전략적으로 수록곡을 채웠다.
특히 멤버들이 “그 전 앨범에 있던 인피니트의 곡과 가장 비슷한 노래"라고 소개한 ‘문라이트’(Moonlight)는 청량한 감성으로 사랑을 받았던 정규2집 수록곡 ‘소나기’의 작곡가가 만들었다.
마지막 트랙 ‘엔딩을 부탁해’는 ‘데스티니’(Destiny) 앨범 수록곡 `인셉션’(Inception)으로 함께 한 작곡가 심은지의 작품이다.
리드미컬한 비트와 멜로디로 ‘내 삶의 엔딩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밝고 통통 튀는 트랙이다.
인피니트는 단체 활동이 없었던 지난 1년 간 솔로(김성규)로, 다른 아이돌 그룹 멤버와의 듀엣(남우현)으로, 힙합 유닛 인피니트H(장동우·호야)로, 감성 유닛 인피니트F(엘·이성열·이성종)로 다양한 장르에서 저력을 증명했다. 이들이 새롭게 만들어갈 인피니트의 성장이 기대되는 이유다.
<조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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