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 - ‘인사이드 아웃’
누군가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최고로 꼽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니모를 찾아서’를 택할지도 모른다. 뭐니뭐니해도 ‘업’ 이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게 픽사의 최고작이냐는 물음에 쉽게 한 가지를 고를 수 없게 하는 것, 그것이 픽사의 능력이다. 픽사는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자 그들의 15번째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감독 피트 닥터)을 이 선택지에 슬며시 추가한다.
‘꿈과 모험’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확장해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끌어내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픽사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인사이드 아웃’에서 그들은 정반대로 접근한다. 피트 닥터 감독은 인간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보다는 인간의 감정이라는 내면을 파고든다. 기억의 형성과 망각, 추억이라는 머릿속 세계로 침투한 그는 발산의 에너지가 주는 활력을 포기한 대신 수렴의 집중력이 선사하는 새로운 우주에 다가간다.
그러니까 인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우주다.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그는, 그곳을 능수능란하게 휘저으며 오히려 여태껏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우면서도 거대한 모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이 탐험은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는 한 철학자의 말처럼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데도 성공한다. 행복하게 살자는 메시지도 있었고, 슬픔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도 있었지만, 기쁨과 슬픔이 한 묶음이라고 말하는 애니메이션은 없었으니까. 그것은 인간이란 우주를 깊이 돌아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니까.
귀엽고 엉뚱한 11세 소녀 라일리에게 큰 변화가 생긴다. 태어나 지금껏 살았던 곳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오게 된 것. 차가운 도시 분위기와 낯선 주변 환경, 허름한 집은 라일리를 자꾸 우울하게 만든다. 그 사이 라일리의 ‘감정 조절 본부’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기쁨’과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 중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게 된 것이다. 기쁨과 슬픔이 감정에서 사라지자 라일리는 방황한다. 그동안 기쁨과 슬픔은 본부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라일리의 마음속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하게 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우선 눈에 들어오는 건 감정과 마음이라는 추상적 세계를 형상화하는 상상력이다. 이를 단순히 ‘뛰어난 상상력’ 정도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작품의 상상력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그리고 생리학 연구를 통한 결과물이다.
영화는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감정을 구슬과 구슬의 색으로 구분하고, 이것들이 차례로 쌓여 전체적인 색에 따라 한 인격 형성의 바탕이 된다는 심리학적 방식을 택한다. 무의식 속에 내재된 ‘핵심 기억 구슬’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 사람이 어떻게 성장할지를 예상하게 하는 건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다. 현미경을 들여다봤을 때의 세포 이미지와 시상하부, 뇌하수체 등의 모양을 본 따 만든 마음 속 세상은 ‘인사이드 아웃’의 상상력이 막연한 공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핵심 기억의 형성을 하나의 마을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다. 핵심 기억이 망가지거나 달라진 걸 마을의 쇠락을 통해 알려주는 장면은 ‘인사이드 아웃’이 얼마나 뛰어난 이미지 제작 능력을 갖춘 작품인지 증명한다.
감정을 의인화한 캐릭터는 관객이 직관적으로 각 캐릭터가 어떤 감정인지 알아볼 수 있게끔 단순하게 디자인됐다. 감정의 세계를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공간으로 그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드러내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피트 닥터가 그려낸 마음의 세계는 아름답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 이야기 그 자체다. 영화는 라일리의 심경 변화에 따른 방황과 기쁨과 슬픔의 모험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를 각각 진행하면서 하나의 메시지에 절묘하게 다가간다. 기쁨이 라일리의 마음에서 슬픔을 자꾸 배척하려고 했을 때, 그 둘은 감정 조절 본부에서 떨어져 나왔고 라일리는 일종의 사춘기를 겪는다. 그리고 기쁨이 최대한 빨리 본부로 돌아가려 무리수를 뒀을 때, 라일리의 방황은 더 심해져만 간다. 기쁨이 슬픔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며 성장했을 때(슬픔 또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됐을 때), 라일리 또한 한 단계 성장한다. 즉, 감정의 성장(감정들이 서로의 존재 이유를 인정했을 때)이 한 인간의 성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의 동반 이탈은 의미심장하다. 기쁨이 라일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그의 모든 기억과 추억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려고 했을 때, 라일리는 불행해졌다. 이것은 솔직하지 못한 감정, 만들어진 추억, 조작된 기억은 결국 한 사람의 성숙을 방해한다는 메타포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며 그 과정에서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는 아이가 다시 행복에 다가서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라일리의 핵심 기억 마을이 예전보다 더 크게 성장하고, 기억 구슬의 색이 한 가지 색이 아닌 다양한 감정이 섞인 알록달록한 색으로 구성되기 시작하는 장면은 그래서 매우 흥미롭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아이보다는 성인으로 구분되는 관객, 혹은 자식을 가진 관객에게 더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잃어버린 감정에 가슴 아파할지 모르고, 버려진 추억을 다시 떠올리며 삶의 동력으로 삼을지 모른다. 그리고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고 대면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 관객은 아이의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정 부분 긍정하게 될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감정과 기억과 추억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매우 예민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성급하게도 픽사의 다음 영화가 벌써 궁금해진다. 그들이 또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를 내놓을지, 얼마나 더 멋진 상상력을 내보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혹시 주변에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장난 같은 거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인사이드 아웃’을 함께 보기를 권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애니메이션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영화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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