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따뜻한 봄날이 되면 가뜩이나 움츠렸던 겨울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가본 곳도 많았고 가고 싶은 곳도 많지만, 오래 전에 내가 가서 보고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곳이 있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몽마르트르의 언덕과 갈레트의 풍차가 있는 곳이다. 19세기 몽마르트르에는 르느와르, 드가, 피카소, 반 고흐 등의 많은 화가들이 모여 풍차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화구를 옮겨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이 화가들 중에서 나는 반 고흐의 몽마르트르의 애달픈 시절을 잊지 못한다. 고흐는 당시 신혼이었던 동생 테오 부부에게 얹혀살았다. 모델을 살 돈이 없어서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쉽게 내려다보이는 빨간 지붕들과 모델 없이도 그릴 수 있는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을 탄생시켰다.
몽마르트르 하면 또 한 사람이 생각난다. 철학자이자 화가인 이우환 교수다. 이우환은 고흐의 바람처럼 역동성 있고 다이나믹 한 터치를 보여주는 ‘바람과 함께(with winds)’를 몽마르트르 시절에 그렸다. 나는 이 그림을 무척 좋아한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화폭에는 사방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나비의 날개 짓의 팔랑임처럼 은밀하게 바람이 분다. 봄의 한때를 분홍빛 화사함으로 현란하게 물들인 벚꽃 잎들이 바람에 날려 화면 밖으로 날아 나오는 그런 행복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 다음 방문지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곳이다. 그 곳은 폴란드이다. 폴란드의 바르샤바 시 인근에 있는 유대인 학살 수용소를 방문 했을 때였다.
수용소 안내관의 벽에는 한 사람의 교사와 어린이들(Korczak und die Kinder des Getto)이 모여서 찍은 흑백 사진이 들은 사진틀이 벽에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코르자크 선생님과 유대인 학생들이 함께 독가스실에서 살해된 슬픈 사연이 소개되어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독일군은 폴란드에서도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어느 날 한 초등학교에 독일군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이들을 모두 운동장에 모아놓고 유대인 아이들을 색출해서 군용 차량 앞으로 끌어내었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 가운데 한 아이가 무서움에 떨면서 선생님을 꼭 끌어 않았다. 독일군은 무지막지하게 아이를 선생님으로부터 끌어내려고 했다. 바로 이때 코르자크 선생님이 군인을 막아서며 “그만 하시오. 나도 이 아이들과 함께 가겠소!” 하며 트럭에 올라 독가스실로 향했다. 극도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어디를 가던 선생님이 너희와 함께 갈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제 우리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리고 선생님과 아이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독가스실로 들어가서 죽었다.
코르자크 선생님의 담대한 용기와 차원 높은 사랑을 회상하면서 더 큰 사랑을 위해, 더 큰 가치를 위해, 온 인류의 희망을 위해 처절한 육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남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요한복음 15장 13절)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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