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극 전형성 파괴, 다양한 장르 결합, 똑 떨어지는 캐스팅
정통사극의 외피를 두른 듯하지만 사극의 전형성을 파괴했다.
세종대왕의 대업인 한글창제 과정을 그리는 듯하지만 대업 일주일 전 벌어진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을 전면에 내세운 미스터리 스릴러다.
천하디천한 백정이 왕의 신임을 얻어 주요 사체의 부검을 하고 책만 파고들 것 같은 집현전 학사가 날아다니며 뛰어난 무예를 뽐낸다.
왕은 툭하면 욕설을 내뱉고 똥지게를 지며 직접 농사를 짓고, 천것 출신 겸사복은 오로지 개인적인 원한으로 똘똘 뭉쳐 왕을 시해하려한다.
SBS 수목극 ‘뿌리깊은 나무’가 ‘공주의 남자’에 이어 팩션사극의 재미를 이어가는 동시에 다방면에서 이종교배를 한 하이브리드 사극으로서 절묘한 맛을 내고 있다.
지난 5일 시청률 9.5%로 출발한 ‘뿌리깊은 나무’는 방송 3회 만에 수목극 시청률 1위에 올라서며 시청률 20%를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세종, 새로운 조선 전기 = ‘뿌리깊은 나무’가 이처럼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키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새로운 세종과 새로운 조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세종(한석규 분)은 편전에 근엄하게 앉아있는 박제된 왕이 아니다. 늘 백성을 위해 고뇌하고 대신들과의 힘겨루기에서 명민함과 카리스마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빌어먹을’ ‘제기랄’ ‘우라질’ 등의 욕을 서슴없이 내뱉고 장난도 잘 친다. 때로는 농부차림으로 똥지게를 지고 밭에 거름을 뿌리며 농사에 대해 연구한다. 숨을 쉬고 있고 동시에 곁을 내주는 친근한 왕이다.
2008년 KBS가 선보였던 대하사극 ‘대왕세종’의 세종대왕과는 천양지차다.
그런 왕을 보는 재미에 더해 드라마는 조선 전기인 15세기 전반기의 풍경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최근 등장한 사극들이 근대화를 코앞에 둔 정조 시대를 주로 다룬 까닭에 시청자는 ‘변화’를 태동한 조선 후기의 풍경에는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뿌리깊은 나무’는 조선 전기를 배경으로 왕실과 민초들의 관계를 다각도로 맺어놓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성균관이 있는 치외법권 지역 반촌의 세밀한 풍경과 노비 출신 꼬마가 흘러흘러 오랑캐 토벌의 공을 세우고 궁궐호위 무사인 겸사복으로까지 신분이 상승한 과정 등에서 새로운 조선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한글창제와 반란세력을 결합한 미스터리 스릴러 = 다양한 장르의 결합은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세종이 부왕 태종 밑에서 고뇌했던 나날들, 한글이 창제되기까지의 고통스러운 작업이 정통 사극의 외양을 하고 있다면, 반촌의 지하세계에서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남긴 ‘밀본’을 중심으로 은밀히 세를 키워나가는 반란세력과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 사건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세종의 업적은 우리가 기승전결을 알고 있지만, 드라마가 창작한 스릴러 부분은 뒤를 알 수 없는 허구의 세계라는 점에서 역사를 새롭게 감상하는 재미를 안겨준다.
여기에 겸사복 채윤(장혁)과 왕의 호위무관 무휼(조진웅)을 중심으로 한 무예의 세계는 드라마에 박진감을 더한다. 드라마는 와이어 액션, 이른바 무협지 액션도 적극 구사하며 정적이고 학구적인 집현전에만 머물지 않는다.
또한 어릴 적 충격으로 말을 잃은 궁녀 소이(신세경)의 전광석화같은 필담(筆談)은 극의 긴장감을 조용히 높이는 또다른 무기다.
◇한석규.장혁 등 똑떨어지는 캐스팅 = 절묘한 캐스팅도 드라마의 인기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16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한석규는 시청자들에게 그간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마스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숙한 연기력은 물론이고 성우출신답게 전달력과 호소력이 짙은 목소리로 무장한 한석규의 세종은 빈틈없는 근엄함과 편안한 너털웃음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시청자를 흡입하고 있다.
세종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송중기가 ‘미색’으로 시선을 잡았다면, 한석규는 중년의 세종을 신선하면서도 친근하게 그리며 극의 중심을 꽉잡고 있다.
여기에 장혁은 ‘추노’에 이어 복수에 눈이 먼, 그러나 태생적으로 영민하고 무술에 능한 조선시대 밑바닥 인생의 모습을 ‘전공’처럼 연기하고 있다.
또 청년 성상문을 허허실실한 듯하지만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학자로 그리는 현우와 그런 성삼문의 둘도 없는 짝으로 묘사되고 있는 박팽년 역의 김기범 등도 시청자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다.
◇그림같은 화려한 화면 = 화려한 화면도 빼놓을 수 없다. 미대 출신인 장태유 PD는 ‘바람의 화원’에 이어 이번에도 사극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하며 아름다운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색감과 구도는 물론이고, 클로즈업과 액션 연출 등에 있어 두루두루 드라마는 한폭의 그림 같은 화면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인물 클로즈업은 대체로 거칠고 공격적이며 날것의 느낌을 주는 KBS ‘광개토태왕’과 달리 오히려 가장 손을 많이 본듯 비단처럼 고급스럽게 다가와 감정의 밀도를 높인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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