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요기획/인물 포커스
▶ LA컨벤션센터 등 숱한 ‘명품’설계 박기서 대표
그루엔 어소시엇츠의 박기서 대표가 올해로 활동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50년 세월 동안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박상혁 기자>
오로지 건축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혈혈단신 맨주먹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 50년동안 건축가 외길인생을 걸으면서 세계 유명 건축회사 대표가 되고 미 대통령 건축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된 ‘그루엔 어소시엇츠’(Gruen Associates) 박기서(79) 대표.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리웨이로 꼽히는 I-70 프리웨이의 글렌우드 캐년 구간을 비롯, 한국의 교보빌딩, 한인타운의 코리아타운 플라자, LA 다운타운 컨벤션 센터, LA 공항을 잇는 105 프리웨이 등이 모두 그가 설계한 작품들이다. 오는 27일 50주년 리셉션을 준비중인 박 대표는 지금도 사무실에 출근해 건축설계를 지휘하며 건축인생을 불사르고 있다. 박 대표는 “아직도 배우는 심정”이라며 건축가 인생 50년의 스토리를 말했다.
학창시절 6.25 체험 “조국 재건 꿈에 미국행”
버클리·MIT서 건축·도시계획 전공
KAC·한미박물관 등 커뮤니티 활동도 열성
■전쟁이 맺어준 인연
1932년생인 박 대표는 1950년 경기중학을 5년 만에 마치고 서울 법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하던 해 6.25전쟁이 발발해 학교를 정식으로 다니지 못했다. 북한군 치하에서 3개월을 지내야 했던 박 대표는 의용군에 자원입대했다. 하지만 총사령관이 부정부패로 물러난 뒤 그의 군 생활은 짧게 끝이 났고 이후 부산의 미 적십자사 매점 매니저와 미군 정보기관 통역으로 일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박 대표의 마음에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전쟁으로 파괴된 조국을 재건하고 싶어 미국으로 건너가 건축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미국행은 쉽지 않았다. 알고 지내던 미군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스폰서를 찾는 편지를 미국 신문에 보내라고 조언했다.
1952년 박 대표는 뉴욕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그리고 LA타임스 등 3곳에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얼마 후 LA타임스에 게재된 그의 편지를 읽은 한 미국인 부인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LA 동쪽 몬테벨로에 살던 뮤리엘 맥클렌드 부인은 그의 편지를 소설가 제임스 미체너에게 소개했다. 부인이 건축가였던 소설가 미체너로부터 “이스트LA 칼리지에 장학기금을 설치해두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기서 대표의 영화와도 같은 미국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듬해 3월1일 LA에 도착한 박 대표는 맥클렌드 부인 집에서 기거하며 집안일을 도우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던 박 대표는 미국에 온지 1년 반 만에 UC버클리에 입학했다. 건축학 전공으로 UC버클리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박 대표는 MIT에 진학해 건축과 도시계획 등 2개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61년 건축회사 입사 후 줄곧 한 길
MIT에서 건축관련 분야에서 2개의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취직은 쉽지 않았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제출한 끝에 ‘그루엔 어소시엇츠’에 자리가 났다. 빅터 그루엔이 소유한 ‘그루엔 어소시엇츠’는 백인 남성이 주도하던 건축 설계 분야에서 드물게 소수계와 여성에게도 기회를 제공했다.
이후부터는 승승장구였다. 입사 직후 그는 주로 도시계획 분야 일을 맡았다. ‘발렌시아 뉴 커뮤니티 매스터 플랜’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오렌지카운티 코스타메사에 있는 대형 샤핑몰 ‘사우스코스트 플라자 & 타운센터 플래닝’에도 참여했다.
이 무렵 잊을 수 없는 건 105번 프리웨이 프로젝트다. 1969년부터 시작해 1993년까지 무려 25년 동안 계속된 105번 프리웨이 프로젝트는 루트 선정에서부터 디자인과 환경 평가 등을 통해 건축 이상의 그 무엇을 배울 수 있었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보상하는 작업을 통해 ‘폴리틱’(박 대표는 “폴리틱은 한국말의 정치와는 다른 의미”라고 했다)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이후 부사장을 거쳐 1972년에는 파트너로 승진했고 9년 뒤인 1981년에는 최고경영자인 ‘매니징 파트너’가 됐다. 박 대표는 그루엔 어소시엇츠를 지난해 수주액 1,060만달러의 LA카운티 내 23위 건축회사로 성장시켰다.
■전 세계에 남긴 유명 작품들
그 동안 박 대표가 설계한 작품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I-70번 프리웨이 ‘글렌우드 캐년’ 구간을 비롯해 ▲베벌리힐스의 ‘샌타모니카 파이브 파킹’ ▲‘샌타모니카 블러버드 트랜짓 팍웨이’ ▲뉴욕 JFK 공항 ‘대한항공 플래그십 라운지’ ▲오렌지카운티 퍼포밍아츠센터 ‘르네&헨리 시거스톰’ 콘서트홀 ▲프리웨이가 땅속으로 이어지는 10번 프리웨이 피닉스 구간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또 LA 최고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꼽히는 ▲‘하버드-웨스트레익 스쿨’의 ‘뭉거(Munger) 사이언스센터’ ▲말보로스쿨 내 ‘뭉거홀’ 등이 있다.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교보빌딩’을 박 대표가 설계했다는 사실은 아는 한인은 많지 않다.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금호 아시아나 플라자’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시티뱅크 및 PT 뱅크 만디리 타워’ 등도 박 대표의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의외로 ‘코리아타운 플라자’라고 했다. 박 대표는 “재일교포 사업가에 의해 1985년 설계를 맡은 코리아타운 플라자는 한인타운에 설계한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
박 대표는 건축뿐 아니라 대외활동과 사회봉사에도 적극적이다. 2001년 5월부터 나라은행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부터는 지주사인 나라뱅콥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94년부터 3년 동안 한미연합회(KAC) 이사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2002년부터 한미박물관 이사장을 맡아 한인 커뮤니티에 대해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박 대표는 1986년에는 미주 한인으로는 최초로 ‘전미건축가협회’(AIA)의 특별회원으로 임명됐고 1994년에는 AIA가 사회에 많이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위트니 M. 영 주니어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AIA 가주위원회로부터 ‘평생업적상’을 받았다. 지난 2000년에는 I-70 프리웨이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박 대표는 “건축을 전공했지만 커뮤니티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흥미롭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박일동 여사와의 사이에 3남을 두고 있으며 아들 데이빗과 막내 에드윈은 며느리까지 모두 변호사이며 둘째 케빈은 의사로 활동 중이다.
■박기서 대표 약력
-1932년 출생
-1950년 경기중 졸업 및 서울 법대 입학
-1953년 도미
-1957년 UC버클리 건축학 학사
-MIT 건축 석사(1959) 및 도시계획 석사(1961)
-1961년 그루엔 어소시엇츠 입사
-1981년 매니징 파트너(CEO)
-1986년 미주 한인 최초 전미건축가협회 특별회원
-1994년 AIA 선정 ‘위트니 M. 영 주니어상’ 수상
-2001년 나라은행 이사 선임
-2010년 나라뱅콥 이사장 선임
<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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