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령환자 죽음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공방
병구완을 소홀히 해 종조모를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스테파니 헤르난데즈. 그녀의 재판은 노인학대와 간병인 문제에 대한 전국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검찰측 “간병인이 환자방치” 살인·학대혐의 적용
배심원단은 예상 뒤엎고 “고의성 없었다” 무죄 평결
미국내‘노인 도우미’4,300만명… 유사사례 잇따를 듯
헤르난데즈 사건은 고령자 간병과 노인 학대가 미국의 새로운 사회문제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현재 미국의 전체 인구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속도를 보이는 연령그룹은 85세 이상의 초고령층이다. 나이든 친척이나 친구를 돌보는 미국인의 수도 4300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연히 인구 노령화와 간병에 관련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이 같은 변화에 대처할 제도적 장치는 미비한 상태다.
올 봄에 열린 헤르난데즈 재판은 노인 학대의 정의와 부적절한 보살핌에 대한 형사 처벌기준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간병인이 고령환자의 뜻을 거슬러 외부 도움을 강압할 수 있는 것인지, 85세 이상 고령자의 ‘정상적 죽음’이란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한 법정공방을 불러일으켰다.
‘수터케어 엣 홈’(Sutter Care at Home)의 중증질환관리 연구원이자 수석 의료담당관인 브래드 스튜어트 박사는“아직까지는 헤르난데즈 사건과 유사한 케이스가 그리 많지 않지만 앞으로 수 년 내에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노인학대 방지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65세 이상 노인들 가운데 100만명 내지 200만명이 그들을 보호하고 돌보아주어야 할 사람들로부터 신체적 상해를 입거나 착취를 당하는 등 학대를 받은 것으로 보고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학대사례는 당국에 보고된 것 보다 최소한 다섯 배는 많을 것이라는 게 이 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UC어바인의 노인문제 전문가인 로라 모스퀘다 박사는 학대 의혹이 제기된 치명적 사건의 경우에도 고령자 시신에서 발견된 증상이 질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학대에 해당할 정도의 간병 소홀에 의한 것인지 의학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검시관들은 간병인들이 억울하게 형사처벌을 당할 가능성을 우려, 일반적으로 보고서 작성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전국적인 관심 속에 지난 3월 중순부터 5주간 계속된 재판에서 헤르난데즈는 2006년 로페즈가 골반 골절을 일으킨 이후 임신부의 몸으로 병간호를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핸드폰 외판원으로 일하며 프레즈노 시티칼리지를 다니던 중 2006년 딸 아리아나를 임신하게 됐고, 때마침 로페즈가 낙상으로 골반수술을 받게 되자 가족들에게 등을 떠밀려 그녀의 간병을 전담하게 됐다는 것. 처음에는 로페즈를 대신해 가사를 돌보는 것이 주 임무였으나 2008년 이후 종조모의 건강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환자를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본격적인 간병활동에 들어갔다.
로페즈는 식사도 혼자 하지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가능해졌고 요실금 증세까지 보였다. 더 큰 문제는 로페즈의 몸에 돋아나기 시작한 악성 욕창이었다.
그러나 로페즈는 ‘방문 간호사’(visiting nurse)를 한사코 떠밀어냈고 병원에 가는 것도 막무가내로 거부했다.
헤르난데즈는 의사의 왕진을 요청하려 했지만 이 역시 “외부인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종조모의 강력한 반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측은 로페즈의 욕창을 헤르난데즈의 태만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검찰 측 감정인으로 나선 노인병 전문의 캐슬린 로카텔은 맨홀 사이즈 크기로 확대한 로페즈의 욕창을 배심원들에게 슬라이드로 보여주며“이제까지 이처럼 심하게 훼손된 피부상태를 본 적이 없다”며 “이는 피고가 로페즈의 욕창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끔찍한 증거”라고 말했다.
로카텔은 이어 로페즈의 앙상한 등 사진을 공개하면서 “욕창은 사망이 임박한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며 임종을 앞둔 호스피스 환자들 가운데 욕창이 돋는 환자는 3%에 불과하다”고 강조하고 “피고의 철저한 태만 속에 로페즈는 고통스럽게 죽어갔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맞서 피고측 감정인 존 플러턴 박사는 몸무게의 절반 이상 줄어든 로페즈와 같은 환자에게 통상적으로 어떤 증상이 발생하는지를 배심원단에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2001년 100파운드이던 로페즈의 몸무게는 2006년 골반골절 이후 88파운드로 내려갔고 2008년 왼쪽 정강이에 생긴 궤양으로 병원에 입원할 당시에는 64파운드까지 떨어졌으며 집에서 요양을 시작한 직후 35파운드로 처졌다며 “이런 상태로 3년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피고의 정성어린 간호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노인병 전문의인 플러턴 박사는 로페즈처럼 체중이 급속히 떨어진 환자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되고 이렇게 되면 피부는 다른 장기들과 마찬가지로 심한 부전증을 일으켜 치료가 힘든 악성 욕창이 돋게 된다고 밝혔다.
재판 마지막 날인 4월12일, 안젤라 힐 검사는 “피고가 의료 지원을 요청하는 단 한 통의 전화만 걸었어도 로페즈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배심원단이 헤르난데즈에 적용된 살인 및 노인학대 혐의에 대해 유죄평결을 내려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대해 헤르난데즈의 변호사인 크레이그 콜린스는 “로페즈가 열악한 상황에서 숨지면 살인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헤르난데즈는 의식조차하지 못했다”며 피고는 로페즈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결작업 이틀째 되는 날 배심원단이 재판장인 조셉 솔다니 수피리어 코트 판사에게 “과실치사도 살인에 해당하느냐”는 질의를 해오면서 변호인단 사이에 헤르난데즈에게 유죄평결이 떨어질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그 날 오후 배심원단은 평결이 끝났다고 통고해 왔지만 패소를 예감한 크레그 변호사는 피고의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평결내용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배심원단은 헤르난데즈에게 적용된 살인혐의와 과실치사 혐의, 노인학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평결했다.폐정 후 배심원단은 “헤르난데즈가 의도적으로 로페즈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었다”고 밝혔다.
헤르난데즈는 현재 로페즈의 집에 머물며 할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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