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연 MBC ‘내 마음이 들리니?’ 호평
"’이렇게 멋진 순간이 다시는 안 오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저절로 감사하며 연기하게 됩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정말 행복합니다."
한밤중이었지만 황정음(26)은 씩씩했다. 제대로 쉬어본 게 언젠가 싶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쪽대본을 소화하느라 전파를 찾는 휴대전화처럼 배터리가 마구 마구 소모되지만 목소리에서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또박또박 힘이 묻어났다.
그뿐이 아니다. 매주말 안방극장에서 만나는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하고 심지어 윤기도 흐른다. 그의 배터리는 지금 마르지 않는 샘물 모드인 것 같다. 누구나 신명이 나면 그러하듯.
지난 3일, 장장 12시간을 대기하다 날짜가 바뀔 찰나 겨우 그와 전화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인터뷰하는 시간에라도 쉬어야 하는 그를 불러세운 게 미안했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행히 쌩쌩했다.
MBC 주말극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우리 역으로 데뷔 후 첫 주인공을 따낸 황정음은 엄청난 촬영 분량에 가히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연신 "행복하고 재미있다"며 신나 했다. 첫 주인공이라는 게, 사랑받는다는 게, 연기가 늘어간다는 게 그 에너지의 원천이리라. 실제로 그는 봉우리를 통해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따뜻한 호평을 끌
어내고 있다.
"정말 분량이 많아요. 그래서 많이 먹는 걸로 버텨요. 밤이 되면 눈이 저절로 감기는데 졸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줘 일부러 더 크게 떠요. 화면에서 제가 눈을 너무 크게 뜨면 졸려서 그런 거랍니다.(웃음) 하지만 분량이 많아서 화가 나는 건 절대 아니죠. 너무 힘들지만 행복해요. 다만 워낙 쪽대본에 시달려 제대로 대본을 분석할 시간도 없이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속상할 따름입니다."
뭔가를 알아가고 깨우쳐갈 때,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올 때 사람은 신이 나기 마련이다. 지금 황정음이 바로 그렇다. 걸그룹 출신으로 연기자로 전환한 초기만 해도 ‘발연기’의 향연을 펼쳤고, 잔뜩 치장한 모습으로 예쁘게 보이는 데만 집중했던 그가 어느새 진짜 연기자의 문으로 두 발 다 쑥 들여놨다.
가난한 봉우리는 지난 두 달여 방송에서 의상이 고작 두세 벌에 지나지 않았고, 바가지 머리에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생계를 꾸려나가느라 늘 배낭을 짊어진 채 운동화차림으로 바삐 뛰어다녀야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어여쁘다.
"예쁘게 보이는 건 포기했어요.(웃음) 사실 제가 그것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늘 서클렌즈를 끼고 다니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일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메이크업도 제가 뚝딱 할 정도로 거의 화장도 안 해요. 그러고 나니까 편해요. 사실 처음에는 꾸미지 않으니 자신감이 없어져 사람들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다녔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그런데 이제 두 달 정도 지나고 나니까 멜로 라인에서는 상대방에게 좀 미안해요. 제가 늘 똑같은 옷만 입고 나오니까 좋아하는 남자에게 미안하죠. 처음에는 역할에 딱이라고 좋아하던 작가님과 감독님도 이젠 옷 좀 갈아입으라고 하세요.(웃음)"
사실 가난한 역이라고 해도 여배우는 대체로 극중 패션쇼를 펼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황정음은 이번에 그것을 과감히 깨버려 오히려 눈길을 더 끈다.
그는 "’지붕뚫고 하이킥’ 때 식모 세경이가 단벌이었는데 그걸 보며 배우고 응용했다. 그때 세경이가 단벌로 나오니까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쉽더라"고 말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는 피 한방울 안 섞인 ‘바보’ 아빠, 욕쟁이 할머니와 한가족을 이뤄 사는 봉우리가 사고로 청력을 잃고 마음의 문도 닫은 재벌 2세와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아빠 정보석과 할머니 윤여정은 매회 명연기로 즐거움을 준다. 그 사이에서 황정음은 돈 주고도 받을 수 없는 연기수업을 매일 듣는 셈이다.
"솔직히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과 사는 게 이해가 안 갔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왜 친오빠도 아닌 사람을 16년간 기다릴까?’를 고민하며 처음에는 되게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극중 아빠와 할머니가 우는 걸 보고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싹 없어졌어요."
그는 "좀 전에도 윤여정 선생님과 같이 찍었는데, 선생님이 우시는 걸 보고, 순간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까먹고 달래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나왔다"며 웃었다.
"상대 연기자에 따라 이렇게 내가 달라질 수 있구나를 느끼고 있죠. 촬영할 때마다 정말 좋고 많이 배우고 와요. 정보석 선생님도 마찬가지고요. ‘이분들과 연기를 하니까 이런 걸 배우는구나’ 싶고 곳곳에 배울 게 널려있어 재미있어요. ‘이 순간이 다시 안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니까 감사하게 되고, 아직 너무너무 부족하지만 그래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신이 나요."
그는 "’겨울새’나 ‘사랑하는 사람아’ 때 연기를 너무 못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했더니 이렇게도 되는구나 싶다"며 "나아가 ‘나도 노력하면 윤여정 선생님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된다"며 밝게 웃었다.
그런 ‘희망’이 그를 쉬지 않게 만들고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성공과 함께 연기자로서 주가를 날리게 된 그는 영화 ‘고사2’와 드라마 ‘자이언트’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계속 질주 중이다.
"’지붕뚫고 하이킥’ 할 때 너무 힘들어서 끝나면 무조건 쉬겠다고 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다른 작품을 찾게 되더라고요. 이번에도 너무 힘들지만 벌써부터 ‘이거 끝나면 다른 거 바로 해야지’ 싶어요. 여전히 무척 부족하지만 지금은 연기에 재미를 느끼며 하고 있고 하나씩 얻어가며 자신감을 키우는 것 같아요. 세 작품 연속 함께하는 정보석 선생님이 ‘지금 잘하고 있어. 넌 이미 봉우리야’라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힘이 나요."
하지만 쪽대본과 살인적인 스케줄에는 화가 나기도 한다.
"대본 자체가 어려운 데다 제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쪽대본만으로는 연기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어떤 때는 20신씩 건너뛰고 연기해야 할 때도 있어요. 너무 힘들어 울기도 했어요. 그런데 매주 방송이 펑크날 지경까지 가는 데도 펑크는 안 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인간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해요.(웃음)"
황정음은 "봉우리의 인생이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봉우리 덕분에 난 정말 행복하다"고 환하게 말했다.
"우리 드라마의 온도는 사람의 체온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뜨겁지는 않지만 따뜻해서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주죠. 끝까지 저도, 시청자도 따뜻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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