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3월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당시 11명이 사망하고 289채의 가옥이 파괴되었다.
크레센트 시티에선 어딜 가든 ‘파도’가 눈길을 끈다. 시의 경계표지판에도, 노조의 로고에도 파도 그림이 들어있고 ‘쓰나미 레인 볼링장’ ‘빅 웨이브 이발관’ ‘쓰나미 스포츠바 앤드 그릴’ 등 상호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최북단에 위치한 이 소도시에서 가장 큰 주의를 끄는 파도의 흔적은 항구에 서 볼 수 있다. 지난 11일 일본을 강타하고 태평양을 건너와 들이닥친 쓰나미의 잔재는 아직도 이곳 앞바다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지금도 3피트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고 16일 주 수렵국의 조시 줄리거는 말했다. 크레센트 시티는 미국에서 쓰나미에 가장 민감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바다로 돌출된 저지대인데다 해저의 지형에서 항구 설계까지가 쓰나미의 발생률을 높이고 있어 이른바 “쓰나미 매그넷(Tsunami Magnet)” 지역으로 불린다. 1934년 부두에 조수계측기가 설치된 이후 이곳의 쓰나미 발생률은 크고 작은 것 합해 34차례나 된다.
이번 쓰나미로 크레센트 시티 항구에선 부두가 파괴되고 16척의 선박이 침몰되었다. 나머지 선박 중 상당수도 크게 손상돼 재산피해는 수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부두 파괴·선박 침몰로 어업 중단, 수천만달러 피해 예상
77년간 34차례나 발생한 쓰나미 지역·1964년엔 11명 사망
전 세계의 관심이 갈수록 악화되는 일본의 참상에 쏠려있는 요즘 이곳 주민들은 상대적으로는 미미하지만 당사자들에겐 너무 큰 피해에 대처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금요일 이 작은 항구로 들이닥친 8피트 높이의 쓰나미는 단숨에 수십척 어선을 덮쳤다. 부두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최소한 16척의 어선이 완전 침몰했으며 아직도 수많은 어선들이 파손된 채 반쯤 물에 잠겨있다. 피해는 수천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명피해도 있었다. 이제 막 인생의 새 출발을 하려던 청년 더스틴 웨버(25)를 쓰나미가 삼켜 버린 것이다. 아직도 그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오리건에서 마약문제로 힘들었던 10대를 보낸 웨버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외할머니에게서 작은 집을 유산으로 받아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크레센트 시티 남쪽 20마일 클래마스 마을 절벽 위에 서있는 작은 집은 낡았지만 태평양과 클래마스 강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마약재활치료를 완전히 끝내고 아버지와 함께 낡은 집수리도 마무리한 웨버는 이날 친구들과 함께 바다와 맞닿은 크래마스 강 북쪽으로 놀러 나왔다 변을 당했다. 친구들은 바다를 향해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웨버는 조금 떨어져 바다를 등지고 강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쓰나미가 올 것으로 예보된 오전 7시30분이 훨씬 넘었기 때문에 이들은 위험은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파도가 점차 거세지면서 몇 시간 넘게 계속되는 쓰나미의 특성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웨버를 향해 소리쳤지만 파도소리에 묻혀버렸고 달려가 웨버의 셔츠자락을 잡으려는 순간 웨버는 사라져버렸다고 웨버의 어머니는 전한다.
쓰나미로 인명피해가 생긴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64년 알래스카 지진이 몰고 온 쓰나미가 한적한 이 마을을 덮친 것은 부활절을 앞 둔 수난의 금요일이었다. 30피트 높이 거대한 물의 장벽이 마을을 휩쓸면서 11명이 숨지고 30개 블럭이 물에 잠겼으며 289채의 가옥이 파괴되었다.
물론 사전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자정이 약간 지나 밀려온 쓰나미는 2피트 정도였다. 사람들은 안심했고 전날부터 비상근무를 하던 시장도 언덕위 자택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빅 쓰나미가 들이닥친 것은 금요일 밤이었다. 거리는 순식간엔 급류가 소용돌이치는 강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언덕을 향해 달렸다.
그날 저녁 부둣가 바에서 쓰나미 경보를 들은 7명의 남녀는 전날의 쓰나미 정도로 생각하고 파도타기의 모험을 즐기기로 결정했다. 바에서 나와 정박해 있던 어선 중 하나에 올라탄 이들 중 5명이 사망했다. 집안에서 엄마에게 안겨있던 아기가 물살에 떨어져 나가며 익사했고 구두수선공이 자기 일터에서 숨졌으며 대피소로 뛰어가던 남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의 일본에 비하면 이번 피해는 훨씬 덜 하지만 인구의 상당수가 빈곤층 이하의 어려운 형편이며 가뜩이나 경기침체를 못 벗어난 상태여서 피해의 후유증은 오래 고통스럽게 남을 것으로 우려된다. 크랩을 주종으로 연매출 1,200만 달러를 올리는 이 도시의 어업이 완전히 중단되었고 어업이 멈추면서 많은 관련 직종들도 자칫 손을 놓게 되었기 때문이다.
크레센트 시티가 속한 델 노테 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회는 지난 15일 이 지역의 ‘공공 재난’을 선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연방재정보조를 신청하기 위해서다.
8살 때 64년의 쓰나미를 겪었던 수퍼바이저 마사 맥클루어는 카운티엔 재정자원이 없다면서 “우린 돈이 필요합니다. 복구해야 하니까요…우리의 이 작은 항구를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수십년 쓰나미에 시달려온 작은 어촌에 대한 깊은 애정을 나타내며 그는 “Our poor little harbor”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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