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보 보도 노숙자 K씨 위해 한인세탁업주 숙식, 일자리 제공
▶ 개인, 단체 도움 제의 전화 쇄도
서버브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오길동(우)씨가 노숙자 K씨에게 앞으로 머물며 일을 배우게될 세탁소 내부를 소개하고 있다.
부나 명예를 얻은 성공적인 이민자들의 스토리가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되곤 하지만 따뜻한 정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목마른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은 그런 이야기 보다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데로 떨어진 어느 한 노숙자 이야기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본보가 처음으로 한인노숙자 남성을 인터뷰해 시카고 한인사회의 노숙자 실태를 보도<12월13일자 A 1면>한 직후, 본보에는 노숙자 K씨를 돕고 싶다는 단체나 한인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정모씨는 13일과 14일 이틀간 본보로 전화를 걸어 K씨에게 조금이나마 지원금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사를 거듭 밝혀왔다. 정씨는 “한인사회에 노숙자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큰 돈을 줄 수 있는 형편은 안되지만 따뜻한 옷이라도 한벌 구입할 수 있도록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버브에 거주하는 박모씨 역시 “노숙자 K씨를 돕고 싶다. 어떠한 방법이 있느냐”고 물으며 “많은 돈은 아니지만 K씨를 위해 지원금을 대신 전달해 달라”며 본보에 성금 전달 의사를 밝혔다.
이외에도 많은 한인들이 K씨의 사연을 접하고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어왔다. 또다른 한인은 숙식을 제공하고 기술까지 전수해 자립에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이밖에도 시카고 한인회와 총영사관, 종교단체 등에서도 K씨를 돕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본보는 이처럼 K씨에 대한 한인들의 관심과 지원 요청이 쇄도하자 지난 14일 오전 자체 논의를 거쳐 K씨에게 숙식은 물론 기술까지 가르쳐주겠다는 가장 적합한 지원을 약속한 오길동씨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시카고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서버브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오길동씨는 지난 14일 아침 일찍 본보에 전화를 걸어 “한인 노숙자 기사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 분을 직접 돕고 싶다.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숙식을 제공하며 직접 채용해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겠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본보는 오씨의 제안이 K씨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판단돼 긴급히 노숙자 K씨에게 연락을 취했으며, K씨의 수락 아래 오씨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14일 오후 기자와 함께 오길동씨의 세탁소에 처음 들어선 K씨는 주춤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오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건넸다. 세탁소 카운터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한걸음에 달려 나온 오씨는 마치 헤어진 가족이라도 맞이하는 양 반갑게 K씨를 맞았다. 오씨는 “너무 잘오셨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밖에서 지내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냐. 나 역시 어려서부터 가난이 신물 날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해왔고 20년전 혈혈단신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절망과 고통을 맛볼 대로 맛 봤기에 K씨의 사정을 백분이해한다”면서 따뜻한 인삼차를 권했다. 이에 K씨는 “어떻게 아무 관계도 없는 노숙자를 이렇게 품어 줄 생각을 다했냐”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앞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재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렇게 연결고리를 마련해준 한국일보에도 너무나 감사하다”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행색이 초라한 K씨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오길동씨는 이내 준비해 놨던 새 옷을 건네며 더러워진 K씨의 외투와 스웨터, 셔츠까지 받아들고 직접 세탁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그에게서는 노숙자 K씨를 만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교차돼 보였다. 오씨는 당분간 K씨를 위해 숙식을 제공하고 본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채용해 일정액의 보수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오씨는 “아무런 부담 없이 자리가 잡힐 때 같이 지내보자”며 “어려움과 고난은 한 순간이다. 이 순간만 잘 이기고 나면 다시 일어서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같이 고생하면서 함께 힘들고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보자”고 K씨를 응원했다.
지난 17년간 한국일보를 구독하며 한인사회의 뉴스를 접하고 세탁일의 고단함을 잊어 왔다는 오씨는 “한국일보의 오래된 애독자다. 13일자 신문에 나온 노숙자 기사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면서 “시카고에 타인종 노숙자들은 많지만 한인이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기사를 보는 순간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내가 꼭 이분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숙자가 있다고 한들 각박한 세상에 그를 직접적으로 도와준다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노숙자를 채용하거나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한인들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는데 밖에서 잘 곳을 찾아 헤매며 배고픔에 떨 K씨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다급하게 연락을 취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K씨가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신문기사를 통해 접한 그의 사연이 너무나 딱했지만 배울 만큼 배우신 분이라 새로운 생활에도 금방 적응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처음이라 마음의 문이 조금 닫혀 있는 듯 보이는데 이도 곧 열릴 것으로 확신합니다. 더욱이 술로 인해 지쳐버린 K씨를 위해서라도 저하고 같이 있는 동안은 절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건강을 챙기고 멋지게 재기한 K씨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당당히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오씨는 자신이 베푼 선행이 얼마나 크고 값어치 있는지 따져 보려 하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심어주고자 자신의 작은 정성을 담아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었을 뿐이다. 노숙자 K씨는 오씨의 선행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오씨 역시 노숙자 K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들을 보면서 어렵고 힘들지만 이웃을 되돌아보며 살아가는 한인들이 아직도 많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됐고 시카고 한인사회의 미래가 여전히 밝음을 알 수 있었다.
<김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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