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2006년 이래 자신이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월가의 거인 골드만삭스 전 파트너들과 모임을 가졌다. 유서 깊은 뉴욕 어슬레틱 클럽에서 열린 이 모임은 골드만의 과거를 축하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블랭크페인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재임기간에 골드만이 어떤 기회도 잘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연한 말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이번 금융위기 때 그만큼 기회를 잘 잡은 사람은 없다.
고객 위주에서 수익 위주로 분위기 바뀌어
여론 나빠지자 현금 대신 주식으로 보너스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업계가 보통 사람들을 도울 것을 촉구하면서 “돈 많은 금융가들이” 자신들의 봉급을 올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골드만의 전·현직 중역들은 블랭크페인이 고객들과 명성을 중요시하면서도 이익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풍토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20명 가까운 전·현직 파트너를 인터뷰한 결과 단기간 내 이익을 내기 위해 엄청난 돈을 거는 블랭크페인 같은 저돌적인 투기꾼이 좌지우지하는 은행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한 때 골드만의 주수입원이었던 기업 고객들에 자문을 해주고 이들의 자금 마련을 돕던 조용한 은행가들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블랭크페인은 자기 주위에 월가 트레이더 출신 중역들로 구성된 소수의 서클을 만들어놓았다. 이 중 상당수가 그와 같이 상품거래 부서인 J. 아론사 출신이다. 골드만의 사장이자 자산운용 책임자인 게리 콘도 그 곳 출신이고 인력담당 책임자도 그렇다.
트레이더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직원들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기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한 파트너에 따르면 골드만은 이제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지 조사를 하고 있다.
물론 월가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며 골드만도 예외는 아니다.
골드만 어드바이저이자 전 증권거래위원장인 아더 레빗은 “전에는 골드만이 더 원칙에 충실했고 돈벌이에 무심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골드만 자신이 세월과 함께 변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골드만 대변인인 루카스 밴 프라그는 “이 비즈니스는 고객의 취향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진화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했다. 한 때 붕괴 직전까지 갔던 미 금융 시스템의 위기를 잘 헤쳐 나가고 정부의 구제금융에서도 벗어난 후 블랭크페인은 이제 140년에 달하는 이 회사 역사상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시기를 맞고 있다. 전 파트너들은 그가 고객을 먼저 생각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회사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블랭크페인이 이 은행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전통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걱정한다. 골드만이 장기보다 단기이익에 치중하는 월가의 다른 기업과 다를 바 없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공개적으로는 블랭크페인도 골드만의 전통을 지지한다. 그러나 사적으로 전·현직 파트너들은 그가 골드만이 고객과 시장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그 변화는 90년대 말 골드만이 기업공개를 하면서 시작됐지만 블랭크페인이 책임을 맡으면서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이들 중 아무도 공개적으로 골드만에 대해 말하려는 사람은 없다. 골드만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챙겼기 때문이다. 월가 보수에 제동을 거는 주주와 대중의 압력 때문에 골드만은 최근 블랭크페인을 비롯한 중역들이 올해 현금 보너스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대신 중역들은 특별 주식으로 보너스를 받게 될 예정이다. 올해 돈은 못 받지만 나중에 골드만 주식이 오르면 떼돈을 벌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드만 직원들은 일반인들이 골드만은 물론이고 골드만의 이익과 봉급 수준을 변호하다 최근 막연하게 금융위기를 불러온 ‘실수’에 대해 사과한 블랭크페인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분노에 대해 놀라고 있다.
한 전직 파트너는 골드만을 오래 운영해 온 전설적인 인물인 존 와인버그를 거론하며 “그라면 이렇게 됐겠는가”라고 반문하며 “그럴 리 없다. 그는 올해 사람들이 얼마를 받느냐가 아니라 향후 50년에서 100년 뒤를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이 대공황에서 벗어나면서 회사 중역들은 ‘골드만은 월가의 다른 기업과 다르다’는 ‘골드만 예외주의’라고 부를 만한 사명감과 함께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을 지켜 왔다. 이 사명감은 고위 간부들이 정부에서 일하면서 더 강해졌으며 맨해턴 남쪽 브로드가 85번지에 자리 잡은 이 은행 본부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취직 첫 날부터 회사 직원들은 이 회사의 14개 계명을 몸에 새겨야 한다. 첫째는 “고객의 이익이 항상 우선이다. 경험상 고객을 잘 모시면 성공은 따라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골드만 내부에서 투자 은행가와 트레이더 간의 이익과 권력을 노리는 투쟁은 있어 왔다. 지금은 블랭크페인 파인 트레이더가 모든 것을 잡고 있다. 직원 수가 3만1,000명에 달하는 골드만은 자산관리에서 전통적인 투자금융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돈의 대부분은 트레이딩에서 벌고 있다.
밴 프라그는 골드만 수입의 50%는 투자금융 서비스 수수료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나머지 반은 골드만과 고객자산을 투자해 번 돈이다. 블랭크페인의 트레이더가 떼돈을 버는 동안 투자금융가들은 경비를 절감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한 때 합병에 관한 자문 계약을 따기 위해 고객들에게 펑펑 돈을 써대던 투자 은행가들이 이제는 고객들에게 돈을 더 받아내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2006년 블랭크페인의 조수이자 골드만 공동사장이었던 존 윙클리드는 돈 많은 기업 고객들로부터 더 돈을 벌라는 이야기를 해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일례로 합병과 금융, 투자를 한꺼번에 맡아 돈을 더 챙기라는 것이다.
윙클리드와 블랭크페인 휘하의 중역들은 투자 은행가들을 평가하는 기준을 바꿨다. 골드만은 매일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이익과 손실을 남겼는지 파악하기 위한 은행가 ‘프로필’을 만들었다. 다른 데서는 일반적인 현상이었지만 골드만에서는 블랭크페인이 회장이 되기 전까지 이는 골드만에서 경멸의 대상이었다.
이같은 변화는 두 가지 효과를 가져 왔다. 직원들은 골드만에게 더 많은 돈을 가져다 줄 고객들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자기 공을 과시하는데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한 전직 파트너는 “효과는 있었지만 회사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밴 프라그는 이 성적표는 오래 고객을 관리해 온 은행가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발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 은행가들은 부채와 기타 더 많은 금융 상품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됐고 고객 자문뿐만 아니라 모든 행동에 대해 평가를 받았다. 이 보고서는 수입 액수와 함께 자동적으로 업데이트가 된다.
전직 파트너들은 골드만이 최대한 수입을 올리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지만 전에는 장기적인 안목이 있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고객이 합병을 하지 않겠다고 해도 고객 리스트에서 빼지는 않았다. 장차 다른 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 전직 파트너는 “길게 보면 조금 관대해진다”고 말했다.
골드만이 올해 수십억달러를 보너스로 주기로 한 것을 보면 이미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현직 파트너에 따르면 골드만은 외부에서 보는 자신의 이미지에 민감하다. 그러나 골드만 측근들에 따르면 돈만 벌 수 있다면 여론을 별로 중요하지 않다. 레빗은 “골드만의 명성에 금이 갔지만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라며 “나는 차라리 골드만 식으로 금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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