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차압당한 날 셰리 웨스트는 자동차 안에서 첫날밤의 어둠을 견뎠다. 현대 세단을 드라이브웨이에 주차해 놓고, 뒷마당을 화장실로 썼다. 두 번째 밤은 친구 집에서 보냈다. 그렇게 살기를 1년 이상 했다. 성년의 자녀가 셋인 50대 중반의 웨스트는 친구들과 친척들의 카우치에서, 자동차 앞좌석에서 살기를 몇 달씩 계속했다. 하지만 올가을 웨스트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한때는 주택 소유주이자 무숙자 보호시설을 운영했던 그가 이제는 그 자신 무숙자가 되어 보호소를 찾게 되었다.
무숙자 보호소 운영하던 50대 여성 무숙자로
주택 차압당한 후 친지 집 전전하며 생활
보호소 무숙자 중 10%는 주택차압 케이스
“내가 무숙사 보호소에서 잠을 깨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지요. 무숙자 시설을 운영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무숙자입니다”
집을 차압당하면서 거리로 내몰려 무숙자 시설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
다.
3년 전만해도 주택 차압 때문에 무숙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사회봉사 기구들이 도움을 제공한 무숙자들 중 평균 10%는 집을 차압당한 사람들이다. 무숙자들을 위한 봉사 기구들이 조사한 ‘차압에서 무숙자로 2009’ 보고서 내용이다. 중서부 지역의 경우는 새로 무숙자가 된 사람들의 15%가 차압 때문이다.
웨스트가 머물고 있는 클리블랜드의 웨스트 사이트 가톨릭 센터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보호소로 차압 때문에 들어온 케이스는 지난 2007년 제로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2 케이스가 되고 올해는 이미 4 케이스가 되었다.
비슷한 증가세가 캘리포니아, 미시건, 플로리다 등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실직과 주택시장 붕괴가 합쳐지면서 차압이 빈발하는 지역들이다.
차압으로 무숙자가 되는 사람들은 과거 주로 저소득층 입주자들이었다. 집 주인이 모기지 상환금을 내지 못하면서 모아놓은 돈도 없는 상태에 갑자기 새 주거지를 찾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집 소유주였던 사람들이 무숙자 보호소로 들어오는 케이스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집을 차압당하면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캠핑을 한다. 따뜻한 지역일 경우 특히 그렇다.
“자동차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캘리포니아, 벤추라 시 매니저인 릭 콜은 말한다. 벤추라는 최근 지정된 구역 내에서 자동차 캠핑을 허용했다.
이들은 설사 돈이 있어서 집이나 아파트를 렌트하려고 해도 크레딧이 너무 망가져 거부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모텔을 주 단위로 빌려 온 가족이 한방에서 생활하고 핫 플레이트를 부엌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실직상태가 지속되면 모텔에 계속 투숙할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친구와 친척들 집을 찾아가 빈 침실이나 지하실, 다락방을 쓴다. 하지만 그런 호의가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다. 그리고 나면 무숙자 보호소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을 흡수한다.
클리블랜드의 웨스트는 지난 90년대 흑인 중산층 지역에 벽돌집을 장만했었다.
집값은 4만5,000달러로 어머니가 유산으로 물려준 돈 중 9,000달러를 다운페이먼트로 지불했다. 먼저 주인의 모기지를 그대로 이어 받고 구입, 월 모기지 상환액은 400달러가 못 되는 부담없는 액수였다.
당시 웨스트는 아파트 단지 관리직원으로 시간당 9달러를 벌었고 남편은 트럭 운전기사로 시간당 10달러 정도를 벌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앞마당에 관목들을 심고 벽에는 아이들 생일 파티 사진들을 보태며 세월이 지나갔다.
이어 그는 유산으로 받은 돈 1만5,000달러를 투자해 집 한 채를 더 샀다. 그리고는 5명의 무숙자를 위한 시설로 만들었다. 세탁을 하고 음식을 만들며 그들을 보살피는 대가로 관련 사회봉사 기구를 통해 매달 한사람 당 최고 750달러를 받았다.
그런데 부부의 씀씀이가 헤픈 것이 문제였다. 버는 것보다 지출이 더 많았다.
그리고 주정부가 무숙자에 대한 보조금을 제한하면서 경비는 여전한데 들어오는 돈이 줄었다.
주택 가격이 오른 2001년 웨스트 부부는 집 에퀴티에서 6만7,000달러를 빼내 고이자의 빚을 청산하고 월 상환금으로 700달러를 내게 되었다. 그리고는 2년 후 남편이 그를 떠났다. 상황은 급속도로 내리막길이었다.
2005년이 되자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벽돌집을 사촌에게 팔고 무숙자 보호소 운영을 중단하고 그 집으로 들어갔다. 임시직을 이것저것 하면서 가까스로 버텼지만 일 없이 여러 달이 지나가면서 시한을 넘긴 청구서들이 쌓여갔다.
월 상환금을 낮춰보기 위해 모기지 회사에 편지를 썼지만, 크레딧이 나쁘고 풀타임 일자리도 없어서 성사가 되지 못했다. 결국 2008년 봄 그는 모기지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열쇠를 내놓고 나가면 2,50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처음에는 삼촌이 자기 집에 얼마동안 와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가겠다고 전화를 하니 동거녀가 꺼린다고 했다. 딸은 임대한 좁은 집에서 아이 둘 데리고 애인과 살고 있고 아들은 하숙집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첫날 밤 그는 차안에서 잠을 잤다. “무서웠다. 아무도 없이 혼자서,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는 처지였다”
그 다음날 웨스트는 친구의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3개월쯤 살았다. 그 다음 자신의 벽돌집을 산 사촌 집에서 몇 달을 지냈다. 사촌은 남편과 여러 아이들과 살고 있었다. 장난감이 마루에 마구 널려있고 음악소리, TV소리, 아이들 소리로 벽이 진동했다. 과거 그렇게도 확실하게 자기 집이었던 곳에 떠돌이로 와서 그는 뜬 눈으로 카우치에 누워 있었다.
그래도 실내에 있는 것이 감사했다. 클리블랜드의 겨울에는 특히 그랬다. 그러면서도 앞날을 위해 계획을 세울 만큼 편하거나 안정적이지는 못했다.
마침내 얼마전 거리에서 만난 여성의 도움으로 그는 보호소로 들어오고 재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푸드 스탬프를 신청하고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해 주정부 지원 직업 훈련을 받는다. 3개월 코스를 마치면 생물학 테크놀로지 분야의 기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료증을 받는다. 취직되면 시간당 16달러를 벌 수 있는 자리다. 그는 다시 내 집 장만의 꿈을 키우고 있다.
<뉴욕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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