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작 : 천사의 도시 - 이정아
다운타운 4가에는 지린내 나는 바람이 골목 사이를 누빈다 골목을 돌 때마다 젖은 신문지처럼 들러붙어 앉아 무심하게 내미는 사내들의 손에는 때 낀 햇빛이 앉아 있다 낡아진 외투의 무게만큼 그림자를 깊이 벽에 박고서 뜨내기들이 만들어 내는 한낮의 먼지를 뒤집어 쓴 사내들은 하나같이 그을려 있다.
비둘기들조차 쪼아대지 않는 부스러기들, 누군가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의 끈적한 눈물자국, 이 골목에서 한 계절을 더 나도 더 이상 불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세간을 샤핑카트에 싣고서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자리 옮기는 일이 소일인 사내들을 향해 1불의 자비를 베푼다 주름진 손가락 사이로 흔들림도 없이 자비는 사라져버린다 누군들 새까맣게 그을려진 삶을 짐작조차 했을까 해진 신발끈을 질질 끌고 비틀거리며 가는 저 사내도 신발끈 꽉 묶고 뛰어다니던 생이 있었으리라 이 골목으로 들어오기 전까지의 기억을 꿈꾸듯 90도가 웃도는 한낮의 열기 속에서 사내들은 잠실 속의 누에고치처럼 웅크린 채로 하얀 꿈을 꾼다.
사내들의 꿈이 깨어지기 전에 골목을 뛰어다니던 뜨내기들은 서둘러서 그곳을 떠난다 멀지 않는 도시 깊숙이에서 빛들이 촘촘히 애벌레 같은 눈을 뜬다 바람이 막다른 골목으로 쓰레기를 감고 들어가 버리면 벽에 깊숙이 박혀 있던 그림자들은 몸을 떼고 거리로 비틀거리며 나온다 주름진 입을 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달이 뜬다.
# 당선 소감 - 삶의 부스러기 모이면 시가되는 거구나
거리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뛰쳐나오는 아이들의 머리처럼 생기 있게 출렁이는 빛들을 만났던 9년 전 그날과 삶에 쩌들게 하는 무자비한 따끔거림밖으로는 생각나지 않게 하는 또 어느날의 생각의 차이가 한동안 잊고 있던 ‘언어’를 모으게 하였다.
이런 삶의 부스러기같은 언어들도 모이면 詩가 되는 거구나… 여덟 번의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을 이 땅에서 보내는 동안 아무 것도 내 손에 쥐어진 것이 없다 했는데 마른 꽃잎 같은 몇 개의 단어들을 쥐고 있는 나를 보며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거창한 말보다 그저 ‘측윽함’이 몰려왔다. 나는 너를 열정으로 품은 적이 없는데 어쩌자구 자꾸만 메마르게 닫혀진 문 앞에서 너는 떠나가질 않는 것이냐. 오래도록 밖에 세워져 있던 것들을 이제는 불러다가 같이 밥그릇을 나누며 먹어야겠다. 식은 밥이라도 먹이고 위로해 줘야 할 것 같다.
부족한 엄마를 자랑스러워 해 주는 큰 딸 다희와 이 땅에서 캐낸 알 굵은 감자처럼 튼튼한 예린이, 채영이 모두 사랑한다. 냄새나던 그 거리를 같이 다녀주었던 당신도 고맙습니다. 이 땅에서 부족한 나를 참아주었던 모든 사람들도 고맙습니다.
# 가작 : 김치전 - 장미화
마음이 울적할 때 그녀는 김치전을 부쳐요
오늘처럼 흐린 날에는 빛바랜 사진 같은 묵은 김치를 꺼내
시큼한 기억들을 잘게 조각내죠
입안에 침이 고이면 그녀는
잊고 지낸 친구에게 편지를 써요
바쁘다는 핑계로 소식 한장 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밀가루에 적어나가요
할 말이 너무 많아 엉키고 달라붙어도 그녀는
마음을 추스리며 낯선 이민생활을 써요
자신은 이곳에서 몸 따로 마음 따로 살고 있다고
물컹한 슬픔을 쏟아내요
그녀는 이름이 없어요 집사람으로 제니로
집안에만 맴돌며 점점 잊혀져가죠
어젯밤에는 네가 꿈에 보였다고 보고 싶다고
그녀는 간절한 바람들을 뜨거운 프라이팬에 펼쳐요
산다는 건 세상에 나를 맞춰가는 과정 같아요
흐물거리던 반죽이 익어가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죠
그녀는 손바닥만한 생활을 뒤집고 눌러보기도 하며
수취인불명의 김치전을 부쳐요
# 당선 소감 - 새 싹을 키워버라는 격려에 감사
제가 사는 곳은 LA에서 두 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애플벨리의 복숭아 농장입니다.
해발 2,000피트가 넘는 고지대인 이곳에서 처음 농사를 짓겠다고 작년 겨울 이사를 했습니다.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우리 가족은 감사하며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봄이 되어 채소를 키워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싹을 띄우는 일조차 쉽지가 않았습니다. 미지근한 물에 상추며 쑥갓, 고추 씨들을 불려 밭에 뿌렸는데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싹들이 얼어죽고 말았습니다. 주위에서 농장하시는 분들에게 물어 가며 다시 밭을 일구고 어렵게 고추 모종을 구해 심고 상추며 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아침 저녁으로 주며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랬더니 드디어 싹이 파릇파릇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새싹들을 보며 많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밭을 보니 그 많던 새싹들이 없었습니다. 토끼가 다 먹어버린 까닭이지요. 새싹을 키우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이런 제게 시를 키워보라고 어린 싹이 날아왔습니다.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너무나 감사하며 잘 키워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내게 용기를 주는 남편과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커주는 세 아이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주변에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며 사는 고마우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나의 가장 힘이 되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부족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들께도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 심사평
* 극기의 노력, 스스로 발견자 돼야 - 마종기(시인)
올해는 많은 양의 응모작품에 비해 뛰어난 작품이 비교적 적게 보였다. 해외에 나와 사는 응모자들이고 보면 그들의 작품 역시 향수에 젖은 사색이 그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모든 예술이 다 그렇듯이 좋은 시 역시 새로움을 발견하는 작업에 다름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들의 이민의 일상에서도 자기만의 목소리를 다듬고 자기만의 생각을 찾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즉 시인은 극기의 노력으로 스스로 발견자가 되어야 하고 발명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당선작인 이정아의 ‘천사의 도시’는 천사라는 단어에 대조되는 거지 사내와 쓰레기 더미의 주위 풍경을 환유로 처리하면서 시를 전개시킨다. 이 시의 초점은 바로 마지막 두 줄의 서술에서 결정적인 빛을 보이고 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비교된 가작, 장미화의 ‘김치전’은 아름다운 생활시의 전형이다. 김치전을 부치는 과정은 이민생활에 반사시키면서 수채화를 그리듯 작은 감동을 던진다. 이 작품도 마지막 몇 줄이 절창이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보이는 거친 직설적 표현이 당선을 막았다.
다른 가작인 오수니의 ‘담쟁이’는 시가 가지는 절제의 미를 알고 있어서 호감이 간다. 자기 사유의 공간을 넘지 않는 미덕이 시 작업에 버팀목이 되기도 하지만, 바로 그것이 시인의 큰 권리인 자유를 억제한다는 것도 꼭 알고 있어야 한다.
이훈호 시인이나 이일 시인의 작품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좋은 시인은 쉬지 않고 노력하는 땀과 눈물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역량 있는 작품 가능성 평가 - 한혜영 (시인)
지난해에 비해 응모작품이 부쩍 늘었다. 예심을 통과한 십여 편 가운데 당선작을 놓고 논의에 들어간 것은 이정아의 ‘천사의 도시’와 장미화의 ‘김치전’이었다. 모두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이정아의 ‘천사의 도시’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당선작을 결정할 때는 응모작품 전체가 평가의 대상이 된다. 앞으로 얼마나 역량이 있는 작품을 써낼 것인가를 포괄적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이민생활의 고단함을 ‘김치전’에 빗댄 장미화의 작품은 주제의식이 분명한 것이 장점이었으나, 응모작 전체로 볼 때 상대평가에서 밀린 경우이다. 이정아의 ‘천사의 도시’는 “다운타운 4가에는 지린내 나는 바람”으로 시작해서 “주름진 입을 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달이” 뜨기까지의 공간을 비극적으로 잘 형상화했다. 묘사와 진술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고, 제목을 역설적으로 활용한 점도 높이 샀다.
장미화의 ‘김치전’과 함께 오수니의 ‘담쟁이’를 가작으로 뽑는다. 투고한 작품 전체가 비교적 안정되긴 했으나, 그것이 일정한 틀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틀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을 봤으면 싶다. 장려상에는 이훈호의 ‘봄밤’과 이일의 ‘난생’을 뽑는다. 이훈호에게는 함께 응모한 작품에서 보여주는 긴 호흡이 장점일 수도 있겠으나, 장황함에 머물고 말 때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라고 말하고 싶다. ‘봄밤’을 선하는 이유는 장황함에서 벗어나 비교적 감정이 절제되었던 까닭이다. 이일의 ‘난생’ 역시 묘사보다는 진술성에 의존한 감이 많아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알을 통해서 환기하는 시세계가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눈여겨보았다고 할 수 있다.
# 가작 : 담쟁이 - 오수니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가로막는 담, 가파른
온 몸으로 타고오른다
나의 길은 사방으로 뻗어갔으나
미망인 듯 모든 것은 엉클어지고
마음만 갈팡질팡할 때에
함께 따라오르던
이파리들도 서서히 지쳐가면서
하나씩 내 곁을 떠나갔다.
천지에 드러난 나의 궁색
하지만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게
사랑이었다
면벽한 채로
나는
기다리고있다
생각의 갈피를 가다듬고
새로운 잎 돋아나주기를
너를 만나러 가는 길
참으로
멀다.
# 입상소감 - 잠자리 들기 전 나만의 시간 감사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로 가기 전이 제게 주어진 컴퓨터시간입니다.
어머니날 이후 제게 랩탑이 하나 주어져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 시간입니다.
오늘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보는 순간 축하합니다 다음 세개의 느낌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뻤습니다.
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제게는.
어제나 소식을 들은 오늘이나 똑같이.
감사합니다.
# 장려상 : 난생(卵生)- 이일
달걀을 고르면서 궁금해진다.
어떤 것이 암탉이 되고
어떤 것이 수탉이 되는지
안다고 해도 이건 정말 비밀이다.
암탉의 뱃속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쪼르르 매달린 노란 눈동자를 본 적이
있다.
점점 자라서
세상으로 씨알 하나 밀어 넣을 때
당당하게
암탉은 운다.
21일간의 공사다망,
수탉은 왜 알을 품지 않는 것일까
모든 암컷에 대한 편애는 그렇게 생겨났다.
퇴화된 날개를 달고
세상 밖으로 밀려나와
허공을 몇 번 쥐었다 펴는 사이
엄마의 배는 주름으로 거듭 접혀있다.
한 세월 퍼덕이고 난 뒤
세상 도로 아득해질 때
고단한 업을 깨고
다시 한 번 태어나고 싶다.
엄마∼
# 입상소감 - 서두르지 않고 더 큰 도전을
시詩가 내린다 신神이 내리듯 시詩가 내린다 말(言)은 차고 넘쳐서 나는 내리 말똥을 싼다 수상 소식을 제일 먼저 아내에게 전했다. 내가 시를 쓸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아내의 배려 덕분이다. 착한 딸도 고맙다. 사실은, 투고를 하고나서 내 시의 부족함을 다시 알게 되었고 스스로 많이 부끄러웠다. 지난 3월에 쓴 열일곱 편의 시 중 세 편을 보낸 것인데 충분히 곰삭지 않은 시로 응모한다는 것이 영 불편했었다. 이제는 서두르지 않고 더 큰 도전을 하고 싶다. 즐거운 여정이 될 것 같다.
# 장려상 : 봄밤 - 이훈호
저녁이 왔다. 바람이 먼 곳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편다.처음엔 그저
오월의 연두빛을가볍게 흔들더니,어둠이 내리는 분량에 따라,차 차사나워 진다.
들판을 가로 지르는 거친 숨결,아득히 취해 비틀 거리는 검은바다 물결,헝큰 머리칼 속으로 번쩍이는번개의 칼 꼽고,
천둥소리 지르며괴로워 하다,마침내주룩 주룩 주룩
목 놓아울기 시작한다.
저녁이 오고,바람이 마음 깊은 곳 으로 마구일렁인다.
# 입상소감 - 하루하루 한자 한자 성심껏 살도록
답답하고 무거웠던 가슴과 지친 일상에 시원한 냉수 한잔처럼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를 주신 것 감사합니다.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님의 말씀처럼, 삶과 시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너무 느리지도, 너무 앞서지도 말고 그저 하루 하루 한자 한자 성심껏 살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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