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생가가 있는 작고 아담한 도시 본의 거리풍경
스위스에서 북부 독일로 향하면서 남편의 옛 친구 클라우스를 방문하여 새로 큰 회사의 중역이 된 것을 축하해주기로 하였습니다.
본은 베토벤의 생가가 있고 아주 아담한 도시로 알려져 있어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본은 자그만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전적인 미를 살린 아름다운 도시이더군요. 한때는 일국의 수도였는데!
오후를 목적없이 시내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베토벤의 생가를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관광객이 줄을 이었더군요. 그의 생애를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도록 그가 쓰던 소품을 비롯한 여러 가지 활동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었습니다.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음악을 남긴 위대함에 압도적인 감격을 느끼게 하더군요. 이제 다시 집에 돌아와 그의 음악을 들을 때는 더욱 더 친근감이 들 것 같았습니다.
클라우스의 회사에 도착하고 보니 건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초현대적인 빌딩이 보기에도 굉장했습니다. 맨 아래층에 있는 직원 식당도 근사했구요. 먹는 것이 중요한 저에게는 물론 거기에 관심이 저절로 가지요. 우편물을 다루는 그의 회사. 몇 센트 안하는 것이니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60센트 혹은 90센트씩 하는 편지 하나라도 그 많은 사람들이 항상 보내는 것이니 합치면 상당한 액수로 불어나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저에게는 놀랍고도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네 면이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안쪽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지나가며 보니 그 많은 사무실마다 한국에서 만든 컴퓨터 스크린이 놓여 있지 않겠습니까?
“여보, 저기 저 스크린 어디제야? 난 잘 안 보이는데......”
너무나 자랑스러워 제 키가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직장을 찾는다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인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인데. 그가 한 회사의 일을 그만두자 ‘헤드 헌터’ 라는 인재 등용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발탁이 된 것이지요. 우리는 그의 새로운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와 제 남편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클라우스도 처가 동양 여자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는 대기업에서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기 때문인지 집에서는 순하고 그저 모든 것이 아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저 아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최고라고 생각 해주는 사람이지요. 남편에게 고분고분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이름난 것이 일본 여자이기 때문에 그게 더 두드러져 보이지요. 뭐 그의 아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가끔 그 여자가 새끼손가락으로 남편을 움직이는 시늉으로 과장하지요. 같은 독일 사람인데 그와 반대로 항상 절대권을 주장해야만 하는 제 남편과 너무나 대조됩니다. 남편은 항상 자기를 추켜세워주고 모든 관심이 쏠려야 만족을 하는 점에서는 어린아이 같다구요. 자기를 옆에 두고 제가 전화라도 오래 하면 와서 전화를 끓으라고 야단하는 사람. 제가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여서 그런가요?
이사 간 집 구경을 하면서 유난히 새로 개조한 부엌 시설에 눈이 끌렸습니다. 오븐 같이 생겼는데 야채를 담고 물을 넣은 후 단추만 누르면 꼭 알맞게 쪄서 나오는 장치까지 되었더군요. 서랍을 열면 빵 자르는 기계가 쓰윽 밀려 나오고. 요즈음 부엌시설 정말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주부에게 필요한 것을 너무나 구석구석까지 잘 생각해 놓았어요. 그러니 그 작은 공간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굉장한지 남자들이 놀랄만하지요.
마침 그 날은 우리가 깜박잊고 있던 그의 생일이었습니다. 어쩜, 계획을 일부러 짜도 그렇게 맞추기 힘들텐데. 저녁은 본에서 제일가는 요리사의 음식을 맛 볼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를했습니다. ‘뭐, 뽐내기 좋아하네’ 하며 그 말을 건성으로 들었습니다.저녁에는 호주에서 온 한 중역과 부인 그리고 우리도 자리를 같이 하였습니다. 주택가의 큰 저택에 자리 잡은 포리씨모(Forissimo)는 테이블이 몇 개의 방에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개인 집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분위기가 아늑하면서도 꽃꽂이며 테이블 장식이 아주 세련되었더군요.
금방 다린 듯한 쉐프 자켓을 입은 주인이자 주방장이 나와 우리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메뉴를 보고 고르는 대신 자기가 생각해서 맛보기 메뉴(tasting menu)를 내놓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게 제일 좋지요라고 그의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첫 코스로 나온 것은 비텔로 토나토(vitello tonnato)라는 얇게 저민 송아지 고기를 펴서 놓고 가운데에만 약간의 소스와 케이퍼(capers- 녹두 만한 열매)를 뿌려 서브 하였습니다. 보통 소스
로 뒤덮히게 내 놓는데 그가 서브한 모양이 훨씬 아름답고 입 맛을 돗구게 보였습니다. 약간 분홍 빛이 도는 듯한 고기가 무척 연하였고 통에든 튜나와 마요네즈로 만든 고소한 소스에 새콤한 케이퍼가 쨍하는 맛을 살렸습니다. 씹을 필요도 없이 목으로 저절로 넘어가는 듯하였습니다.
남편이 무척 좋아하는 요리이나 송아지 안심은 너무나 비싸서 어쩌다 한번씩만 해주기 때문에 가끔 불평을 하지요.두 번째로는 트러플(truffle)이라는 울퉁불퉁하게 생긴 아주 귀한 고가의 버섯이 들어간 라비올리(raviolli-납작한 만두 비슷)가 나왔습니다. 크림을 아주 조금만 넣었기 때문에 하나도 느끼하지 않았고 트러플이 고소한 맛을 더욱 더 강조하였더군요. 재주있는 요리사의 기술이 이런 때 보이지 않습니까?! 세번 째의 메인 코스로는 피레네산(프랑스와 스페인의 중간에 자리 잡은 산)에서 온 양고기 안심이라고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그 지방의 양고기가 유명해서 그렇게 말했겠지요. 다진 파슬리를 입혀 겉만 바삭거리게 구운 고기에 약간의 감자 그라탕(크림을 넣고 오븐에 구워 윗 부분을 그을리는 요리)과 색깔있는 야채로 멋있게 장식하여 나왔습니다.
연한 고기에 로즈마리(rosemary-향신료)의 향이 있는듯 없는듯 은근히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 빈틈없이 이렇게 잘 만든 요리를 언제 먹어 보았던가? 더군다나 양을 조금씩 서브하여 부담스럽지 않게 하나하나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몇 쪽의 치즈에 약간의 포도가 곁들여 나왔습니다. 저는 치즈보다는 디저트를 맛보기 위하여 사양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적은 티라미수(tiramisu) 한쪽에 아이스크림 그리고 과일이 모양으로 곁들여 나왔을 때 여자들은 모두 아이구! 이럴 줄 알았으면 치즈를 사양할 것을! 하며 배를 문질렀습니다.
식도락을 맘껏 즐긴 저녁을 보내고 나오면서 보니 여러 나라의 수상, 유명 인사들이 아까 우리에게도 나와서 인사를 한 주인이자 주방장인 삐에트로 로비숑(Pietro Robichon)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온통 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오는구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요리를 잘하고 남의 눈에 별로 뜨이지 않는 레스토랑이니 그런 사람들이 들락거릴만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냥 찾아 올 곳이 아니라 손님이 없으면 장소 탓하기 꼭 좋은 곳인데.
야, 과연 클라우스가 뻐긴 대로 그는 본에서 손꼽는 요리사임을 저도 함께 강조 하면서 그 집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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