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을 앞두고 경제가 화두다.
단순히 성장이 둔화될 것이냐 아니면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냐다.
이런 점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최근 발언들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늘어나는 미국 경제의 걱정거리가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만해도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50% 미만이라고 말했던 그린스펀 전 의장은 지난 14일 공영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는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확실히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16일에는 ABC 방송에 출연해 성장은 멈추고 물가는 오르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가 보인다고도 말해 미 경제가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도 우려했다. 그린스펀의 발언이 변하는 것처럼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미 경제가 연착륙한 뒤 다시 정상궤도에 올라설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들도 많다.
“주택시장 침체·금융위기 지속
스태그플레이션 징후 우려까지
소비동향·산업생산 예상 웃돌아
“연착륙 후 정상궤도에 진입무게
■성장 둔화 vs. 침체 = FRB는 지난달말 경기종합보고서인 베이지북을 통해 미국 경제의 성장속도가 10월 이후 부동산시장 침체와 소비자 지출 약세의 영향으로 전에 비해 더 둔화됐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라는 전망은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FRB는 지난달 중순에 신용경색 악화와 주택경기 침체 지속을 이유로 2008년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지난 7월의 전망치인 2.5∼2.75%보다 떨어진 1.8∼2.5%로 하향 조정해 발표했다.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도 지난달 내년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예상, 당초의 3.1%에서 크게 낮췄다.
그러나 주택시장 침체, 신용위기 등의 악재들이 쉽게 걷히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피터 오르작 의회예산국(CBO) 국장이 주택경기 침체와 고유가,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등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에 빠질 위험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지난 5일 밝히는 등 경기 침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잇따르고 있다.
골드만삭스도 내년 미국 경제의 성장률을 1.8%로 예상하면서 침체에 빠질 확률을 40-45%로 전망, 당초의 30% 수준보다 높였다. 월스트릿 저널은 이달에 경제전문가 5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이 38%로 조사돼 3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지난달 조사 때는 경기침체 확률이 33.5%였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내년 미국 경제는 부동산시장 침체가 얼마나 더 지속되고, 신용경색으로 자금사정이 빡빡한 금융기관들의 대출 활동과 소비자의 지출이 얼마나 견조하게 유지될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인플레 및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 이런 가운데 미국 경제가 고유가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발목을 잡혀 허우적댈 가능성까지 최근에는 등장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11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34년만에 가장 큰 폭인 3.2%의 상승률을 보였고 소비자물가지수(CPI)도 2년여만에 가장 큰 폭인 0.8% 상승했다. 11월 CPI에서 변동성이 큰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0.3% 증가, 지난 1월 이후 가장 높았다.
이에 따라 경기는 둔화되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이 스태그플레이션 징후를 경고한 데 이어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 경제학
교수도 유가가 10배가 치솟아 인플레이션율이 10%이상 올라갔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나타났던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른 모기지 부실과 신용경색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커지는 인플레 우려는 금리 인하 등 경제를 살리기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할 정책 당국의 운신의 폭을 좁힐 것으로 예상된다.
■연착륙에 무게 = 미국 경제가 불안한 가운데서도 최근 발표된 소매판매와 산업생산 지수들을 보면 예상보다 견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경제전망이 꼭 어둡지만은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연방 상무부가 발표한 미국의 11월 소매판매는 1.2% 증가해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고, FRB가 내놓은 지난달 산업생산은 0.3% 증가해 월가 전문가들의 전망치인 0.1%를 웃돌았다. 소비동향이나 산업생산 등 실물경제가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의 어려움 속에서도 비교적 잘 버텨주고 있는 것이다.
FRB 등의 정책 입안자들은 내년엔 주택시장이 바닥을 치고 금융시장도 정상화될 것으로 보고 연착륙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경기침체 가능성보다는 연착륙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전망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저널은 이와 관련, 경제전문가들이 제시하고 있는 연착륙 전망 이유를 소개했다.
우선 FRB는 올해 들어 1%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등 경기침체를 차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미국경제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조지프 라보르냐는 통상적으로 금리가 낮은 수준에 있을 때 경기침체가 시작되지 않는다면서 사전에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FRB와 저금리가 미 경제의 침체를 막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세계경제, 특히 신흥시장의 강력한 성장세도 미국 상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국내소비 감소를 상쇄함으로써 미 경제의 침체를 막아주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고용시장 성장세가 완만한 둔화세를 나타내고 있을 뿐 급격하게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고 있어 수입과 소비자 지출의 지속적인 증가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긍정적인 면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17일 신용위기 및 모기지 문제라는 ‘먹구름’과 우려가 있지만 “기초는 좋다”면서 고용증가 등을 예로 들어 “사람들은 일하고 있고, 생산성은 높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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