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소년에서 대한민국 CEO까지
드라마보다 극적인 석세스 스토리
야간 상고 거쳐 독학으로 고려대 상대 입학
6.3사태로 옥살이… 현대 입사 인생의 전기
‘샐러리맨의 우상’ ‘불도저’ ‘청계천 복원 신화’로 상징되던 인물 ‘이명박’이 이제 ‘대한민국호’의 선장으로 당당히 청와대에 입성한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국회의원, 그리고 서울시장으로 이어지는 입지전적 인생 역정을 거치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적을 일궈내는 CEO형 정치인이라고 평가돼 온 이명박 당선자는 앞으로 5년간 새로운 지도자로 대한민국을 책임지게 됐다.
끼니 잇는 것조차 어려워 온 가족이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골 어촌의 병약한 노점상 소년이 대통령 당선자로 우뚝 서기까지 인생 역정은 파란만장한 드라마 그 자체였다.
가난을 이겨내며 몸에 밴 투지, 현대그룹 시절 만들어진 기업가 정신은 이 당선자를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올려놓는 밑거름이 됐다.
70·80년대 성공 모델이었던 그는 이제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을 자임하며 마침내 대한민국 CEO가 된 것이다.
동지상고 야간부 시절.
■가난했던 학창 시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가난한 목부 집안의 4남3녀 중 셋째 아들로 출생했다. 부모는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광복이 되던 해 11월 포항시로 돌아왔다. 이 당선자가 4세 때였다. 하지만 귀국선이 난파하는 바람에 그의 가족은 얼마 안 되는 재산마저 모두 잃었다.
그는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가난은 굴 껍데기처럼 우리 가족에 들러붙어 있었다”고 비유했다. 포항시에서의 단칸방 시절, 이 당선자 가족의 주식은 ‘술지게미’였다. 곡식으로 술을 빚고 남은 찌꺼기인 술지게미로 아침을 때우고 등교하면 그의 얼굴은 알콜 기운으로 늘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중학교 이후로 이 당선자는 김밥장사 엿장수, 아이스케키 장사, 뻥튀기 장사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엔 내성적 성격 때문에 부끄럼을 많이 탔다. 집안에서도 형들에 가려 눈에 띄지 않았고, 몸집도 형들보다 왜소했다.
당시 집안의 희망은 포항에서 수재로 이름을 날렸던 둘째 형(이상득 국회부의장)이었다고 한다. 형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난 이 당선자는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을 낼 돈이 없어 고교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었으나 담임교사의 도움으로 야간인 동지상고에 수석 입학, 3년간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대학 중퇴 경력이라도 가져 보겠다’며 청계천 헌 책방에서 구한 입시서적으로 독학을 한 이 당선자는 60년 고려대 상대 입학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그러나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어머니가 일하던 이태원 시장 상인들은 이 당선자가 시장 청소 일을 하는 조건으로 한 학기 등록금을 대줬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공사현장에서.
■대학시절과 군 면제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새벽 4시면 이태원 시장에 나가 쓰레기를 모아 리어카에 싣고 서너 번씩 반포대교 인근까지 오가는 힘든 생활이 반복됐다. 결국 이 당선자는 2학년 1학기 때 군 입대를 결심한다. 힘겨운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논산훈련소 건강검진에서 불합격 판정이 나왔다. 당시 군의관은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줘. 나이 스물밖에 안 된 놈이 몸을 어떻게 굴렸기에 이 모양이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 당선자는 3학년 때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 당선됐고, 이듬해엔 고려대 총학생회장 직무대행 자격으로 6.3반대시위를 이끌었다. 이 일로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살이를 하다 64년 10월 말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내란 선동죄였다. 이후 이 당선자는 학생운동과 거리를 둔다. 나중에 그는 “학생운동은 순수한 열정에 바탕한 문제 제기에 그쳐야지 그것을 해결까지 하려면 안 된다”고 말했다.
1964년 6.3학생운동과 관련해 시위사범으로 재판받는 모습.
■현대그룹 근무 시절
현대그룹에서의 27년은 이 당선자에게 인생의 새 페이지나 다름없었다.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그는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다. 그의 인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 ‘야망의 세월’이 지상파 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현대그룹에서 그의 삶은 한마디로 ‘승승장구’였다.
65년 입사 당시 학생운동 경력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길이 막혔던 이 당선자가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던 이낙선(전 국세청장)씨는 “그 편지 때문에 청와대 수석회의를 열어 입사를 허락했다”고 회고했다.
현대그룹에서의 초고속 승진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 전 회장은 연공서열보다 그의 능력을 철저히 존중했다. 현대그룹 시절 태국 공사 현장에서의 일이다. 처우에 불만을 품은 인부들이 폭도로 변했다. 당시 경리과 직원이던 이 당선자는 “금고 열쇠를 내놓으라”는 폭도들 앞에서 버텼다.
단도가 목옆으로 날아가고 발길질이 시작됐다. 때마침 도착한 경찰관들이 없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일로 이 당선자는 회사에서 영웅이 됐다. 협력업체가 청와대 공사를 이유로 골재 납품을 미루자 아예 골재회사 앞 도로를 불도저로 밀어버려 ‘불도저’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 시절 그의 또 다른 별명은 ‘리틀 박’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 인상이 닮은 데다 일을 저돌적으로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1981년 현대그룹 신입사원 하계수련회에서 정주영 회장과 함께.
■결혼과 가족 관계
이 당선자는 70년 현대건설 이사 시절 부인 김윤옥씨와 결혼했다. 동지상고 영어 선생님이 경복고 친구인 김씨의 큰 오빠를 통해 소개했다. 대구가 고향인 김씨는 공무원 집안의 3남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도곡동 땅 차명 의혹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는 김재정씨가 김씨의 막내 남동생이다.
이 당선자는 어릴 때 집안에서도 ‘명박이가 가장 못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지만 부인 김씨는 이화여대 재학 시절 메이퀸에 뽑힐 정도로 미모였다. 김씨는 당시의 이 당선자에 대해 “연애시절에도 일 때문에 약속 장소에서 30분씩 기다리게 하기 일쑤였다”며 “심지어 본인 결혼식도 토요일 오후 4시로 잡아 놓고 퇴근 후 결혼식장으로 달려온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남3녀가 있다. 장녀 주연(37), 차녀 승연(35)씨는 미국 줄리아드음대에서 기악을 전공했고, 3녀 수연(33)씨는 이화여대 미대를 나왔다. 외아들 시형(30)씨는 최근 미국의 한 대학을 마치고 귀국해 국내 한 외국계 은행에 취직했다 퇴사했다. 큰 사위 이상주(38)씨는 삼성화재 법무담당 상무보, 둘째 사위 최의근(35)씨는 서울대병원 내과 전문의, 셋째 사위 조현범(36)씨는 한국타이어 부사장이다.
이 당선자는 가족들로부터 ‘짜다’는 말을 듣는다. 어렵게 자란 탓이다. 부인 김씨는 “중·고교 시절 아들의 한 달 용돈은 2만원이었다. 가끔 남편이 아들에게 용돈을 주면 ‘내가 줬으니 더 주지 말라’고 얘기할 정도”라고 말한다.
1992년 민자당 전국구 의원 시절 김영삼 총재와 함께.
40대 대기업 회장 ‘셀러리맨의 신화’ 창조
92년 국회진출, 서울시장 거쳐 대권가도에
■정치 역정
이 당선자는 92년 1월3일 현대그룹을 나와 같은 해 4월 민자당 전국구 의원이 됐다. 당시 정계 진출을 선언하고 통일국민당 후보로 대선에 뛰어든 정 전 명예회장에 대한 배신이었다. 이에 대해 이 당선자는 ‘재벌이 권력마저 가질 때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 ‘재벌 오너와 경영인 간의 비뚤어진 봉건적 관계’ 등을 이유로 든다. 지금도 현대가와는 서먹서먹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재선 도전에 나선 이 당선자는 96년 4.11 총선에서 정치 1번지인 종로구에서 이종찬, 노무현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선거비용 초과지출 혐의로 기소돼 유죄선고를 받고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가 겪은 첫 좌절이었다.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몸을 추스른 그는 2002년 6월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시장에 선출됐다. 이때부터 정치인으로서 ‘성공 신화’가 본격화한다. 재임 시절 그가 추진한 청계천 개발사업, 버스중앙 차로제, 뉴타운 개발사업 등은 ‘일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남겼다.
1990년 현대건설 회장 시절 소련을 방문 고르바초프와 만난 이명박 당선자.
이명박 프로필
1941.12.19 일본 오사카 출생
1954 포항 영흥국민학교 졸업
1957 포항중학교 졸업
1960 동지상고(야간) 졸업
1965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65 현대건설 입사
1970.12.19 김윤옥씨와 결혼
1977~88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1978 인천제철 대표이사·한국도시개발 사장 겸임
1988~92 현대건설 회장
1992~95 14대 국회의원(민자당 전국구)
1992~94 6·3 동지회 회장
1996~98 15대 국회의원 (신한국당 종로)
2000~ 현 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제고문
2002~06 32대 서울시장
▲아호: 일송(一松)
▲별명: 컴도저(컴퓨터+불도저)
▲본적: 경북 포항시 북구 홍해읍 의창면 덕성동 537
▲본관: 경주
▲병역: 면제(입소 후 기관지 확장증으로 의병 퇴소)
▲혈액형: B형
▲신장: 173㎝
▲체중: 70㎏(허리 32인치)
▲시력: 좌1.0 우1.0
▲신체비밀: 남보다 손바닥 길이만큼 팔이 길다
▲종교: 기독교(장로)
▲주량: 맥주 1병
▲흡연: 안 피움
▲취미: 테니스·수영·조깅
▲가족: 부인 김윤옥씨와 1남3녀
▲존경인물: 안창호, 간디
▲좌우명: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가훈: 정직
▲첫사랑: 초등학교 5학년 때 짝
▲감명 깊은 책: 슈바이처 전기, 무소유(법정 스님)
▲좋아하는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함석헌)
▲감명 깊은 영화: 오아시스, 집으로
▲선호음식: 순두부, 비빔밥
▲애창곡: 사랑이여(유심초), 아침이슬(양희은)
▲좋아하는 가수: 조용필, 보아, 비
▲좋아하는 배우: 안성기, 장동건
▲학교 때 가장 못했던 등수: 3등
▲잊을 수 없는 친구: 어려운 시절 달걀을 매일 갖다 주었던 양계장 집 친구
▲외국어 구사: 영어(상)
▲학위: 고려대 경영학사, 서강대 명예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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