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 32가 ‘1호 한인상점’
1974년 약국 겸 잡화점으로 시작
씨씨백화점은 1974년 창업주인 임정원 사장이 한인업소가 전혀 없었던 당시 맨하탄 32가에서 약국을 겸한 잡화점으로 탄생한 ‘맨하탄 32가의 1호 한인상점‘이라는 자부심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중소형 선물백화점으로서 씨씨백화점이 33년간 장수한 비결에는 이 같은 자부심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998년 아들 부부에게 사업을 넘겨 준 뒤 현재는 씨씨부동산을 경영 중인 임정원 사장은 씨씨백화점은 지금의 맨하탄 32가 한인타운이 탄생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진 최초의 상점이자 선물백화점으로 한인경제와 함께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실제로 씨씨부동산의 발자취는 곧바로 맨하탄 한인타운이 발전해 온 역사와 괘를 같이하고 있다. 설립당시 현재의 스탠포드호텔 로비 자리에 약국을 겸한 잡화점으로 문을 연 씨씨백화점은 초창기 캔디, 건강식품 등 잡동사니들 위주로 물건을 팔다가 점차 사업을 확장해 1976년 현재의 자리로 업소를 옮겼다.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맨하탄 32가가 현재의 한인타운으로 틀을 자리잡아가면서 씨씨백화점은 말 그대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유명 화장품과 양품을 판매하는 선물백화점으로 명성이 높아지자 동포 고객들은 물론 한국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연중내내 끊이는 법이 없었다.
한창 때는 고객 한사람이 7,000~8,000달러 어치 물건을 한꺼번에 사갔는가 하면 서울에서 온 보따리 장사들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는 것.
이같은 성업 덕분에 1980년대 후반 씨씨백화점은 품목 다변화를 추구하면서 다시한번 성장가도에 탄력을 받게 된다.
유명 브랜드 의류는 물론 생활용품, 건강식품, 지갑 등과 카메라, 계산기, 다리미 등 가전제품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명실상부한 한인사회 최대 선물백화점으로 거듭났다. 당시 메이시백화점 등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고급명품들을 씨씨에서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탄탄대로를 달려왔던 씨씨백화점도 1990년대 말 찾아 온 한국의 환란 이후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한국 관광객들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선물수요가 줄면서 그만큼 비즈니스가 위축됐던 것. 한 때 20여명의 직원에 3층 건물 전체를 사용했던 영업규모가 1개 층으로 축소된 것이
단적인 예이다. 이후 주력 품목을 화장품과 골프의류로 바꾸고 매장을 새단장해 고객유치에 힘쓰는 개선작업을 통해 한창때 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부활의 날개 짓을 하고 있다. 맨하탄 32가 한인타운이 걸어왔던 영욕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산증인인 셈이다.
씨씨백화점의 장수비결은 이처럼 오직 선물백화점의 외길만 걸어온 ‘한우물 경영’과 끊임없이 다변화를 추구해 온 ‘자기개발’이다. 물론 역사에 비해 대형 백화점으로 성장이 되진 않았지만 씨씨백화점은 아직도 맨하탄 32가의 간판 업소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며 한인타운의 성장을 리드해 나가고 있다. 임정원 사장은 씨씨백화점은 한인타운을 일군 첫 개척자답게 단순한 산술적인 비즈니스 보다는 꾸준한 자기개발로 한인타운을 이끌어가는 경쟁력있는 비즈니스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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