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필자는 신문 사회면 뉴스의 최전방에 있는 기회가 있었다. 로스엔젤리스의 C 플라자 총격사건이 있던 날. 오랜만에 만난 가까운 분들과 총격사건이 발생한 레스토랑의 바로 길 건너 찻집에 밤늦게까지 있다가 총소리 3방을 바로 머리 뒤에서 느끼는 전율을 맛본 것이다. 그 뒤로 한인타운에 밤늦게까지 있는 것은 가급적 자제하게 되었다.
항상 로스엔젤리스 한인타운에 사시는 분은 잘 느끼지 못하실지 몰라도 어쩌다 한번 한인타운에 들리는 필자는 들릴 때 마다 그곳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교통량도 많이 늘었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개인의 안전에 대한 위험성에 있다. 너무나 위험해진 것이다. 옛날 푸근한 마음으로 저녁의 타운거리를 다니던 시절과는 너무나 달라져버렸다.
그런데 오늘 말씀드리려는 얘기는 타운안전 얘기가 아니라 그날 밤의 총격사건의 의미에 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한인타운에 저녁식사를 하러온 죄 없는 베트남 청년에 대한 한인인 범인의 배타적 범죄였다는 것이다. 너희들이 왜 한인타운에 와서 노느냐. 재미없어. 아마 이런 메시지였던 것 같다. 가까이 지내는 어느 분의 우리한인들에 대한 근심은 지나친 배타심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 우리 한인청년 하나가 베트남타운에 가서 총을 맞고 죽었으면 우리 커뮤니티에서 또 난리를 부리지 않았을까요?” 베트남 커뮤니티는 이 사건을 그렇게 몰고 가지 않았다.
한때 우리나라가 존폐의 기로에 서있던 시절 도와주러 와서 좀 오래 머물게 된 미군들. 그들의 훈련 중 다니던 길에서 과실치사로 목숨을 잃은 두 여중생들. 아까운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들을 한국에서는 반미정서 고양을 위해 너무나 많이 써먹었다. 미국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얼마나 생떼를 썼었던가. 버지니아텍 사건이 난 후 한국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온 나라가 걱정을 했지 만 미국은 살인범이 한국인이란 걸 가지고 그렇게 난리를 떨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아마 조금은 의젓한 나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해 여름. NBC 한밤의 조크 프로그램을 맡은 제이 레노가 한인들의 개고기 먹는 것을 풍자해 농담을 했다. 우리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우리를 우습게 보았다고 그걸 큰 이슈로 삼아 그와 방송국에 사과를 요구하고 난리를 쳤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소재로 농담을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다. 세상의 큰 비극을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그의 농담소재에 든다.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것이 사실이고, 농담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대로 웃고 지나버리면 될 일을 우리 커뮤니티에서는 한참 난리를 쳤다. 그것이 우리 커뮤니티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면 타 커뮤니티에 더 우스운 사람들로 보이게 되었을까.
필자는 우리 한인사회의 무슨 향우회, 동창회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 활동의 범위가 좁고 그것이 가진 배타성에 근심을 한다. 경제적이건 사회적이건 작은 숫자의 약자들이 모여서 하는 모임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하는 모임은 다수의 집단이 갖는 공격적 성격으로 비칠 수도 있어 걱정이 되는 것 이다.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1위라고 한다. 역사를 공부한 우리들의 눈에는 우리 역사상 지금처럼 국력이 왕성한 적이 없었다. 우리 민족은 작은 나라의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놀랄만한 국력신장을 이룬 대단한 민족이다. 대권도전을 하는 이들의 얘기를 들으면 세계 10위 안에 드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제 그러면 우리나라도, 민족도 좀 의젓해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경제도 보잘 것 없고 국력이 약할 때는 좀 잘못을 해도 아무도 크게 탓하지 않는다. 별로 기대할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대단해지고 나면 그 다음은 의젓해져야 할 순서다. 아니면 좀 우스워 보이고 주책없어 보이는 것이다. 한국에서 방문 오는 이들이 늘어나는 계절이 온다. 이제 잘살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순서에서 좀 의젓하고 그럴듯한 모양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오는 이들을 우리 미주한인들도 기대하고 있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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