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 여성, 가해자 남성보다 엄중처벌 받아
사우디왕가, 회교원리주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
동맹이란 무엇인가. 보다 넓게 보면 가치관을 같이 하는 관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자유. 인권. 정의- 이런 것들이 미국이 추구하는 이상이라면 미국의 동맹국도 이와 비슷한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테러전쟁이 진행 중인 현재 미국은 이슬람권에서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두 나라를 동맹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두 나라 중 그러면 어느 나라가 보다 진정한 의미의 동맹국으로 볼 수 있을까.
여권존중의 정도가 그 척도가 될 수 있다. 여권이 가장 발달된 나라가 미국이란 점에서다.
우선 파키스탄으로 눈을 돌리자. 이 나라에서 여성이 강간을 당하면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네 명의 남성 증인을 세워야 했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여성은 간통을 저지른 것으로 인정돼 가혹한 처벌을 당해야 했었다.
얼마 전까지, 그러니까 지난해 12월 이전까지 시행되었던 법이 그랬다. 그 법을 고치려들자 상당한 논란이 따랐다. 그 중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은 이슬람 근본주의들. 그 논란은 자칫 정권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그러나 단호히 대처했다. 회교근본주의의 과격한 투쟁을 종식시키고 여성피해자를 보호하는 개정법을 시행케 한 것이다.
지난 11월 중순께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여성이 일곱 명의 남자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사우디 법정은 그런데 집단 성폭행의 희생자인 여성에게 90대의 태형을 가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남성들과 불륜의 관계를 가졌다는 판시와 함께. 가해자인 남성들은 상당수가 가벼운 형을 받았다.
지난 6월 미국 콜로라도에 거주하던 한 사우디 남자가 인도네시아출신 가정부를 성 노예로 억류하고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가 인정돼 유죄평결을 받았다. 그가 받을 형량은 최소한 27년에서 종신형.
이와 관련해 콜로라도 주 검찰총장은 사우디왕가를 방문하게 됐다. 왜 그를 구속했는지 부터를 설명하라는 외교압력을 가한 결과다. 사우디 방문 중 콜로라도 검찰총장이 주로 받은 질문은 반(反)이슬람 편견이 재판과정에 개재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왜 사우디정부가 이처럼 적극적이었을까. 그 성적학대 형사피의자는 다름 아닌 사우디 왕족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한 여성이 7명의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재판결과 엉뚱하게도 피해여성에게 중형이 떨어진다. 사우디왕가는 그러나 침묵을 지킬 뿐이다. 왕가의 한 남자가 미국에서 외국여성을 성 노예로 학대해 유죄평결을 받는다. 그러자 왕가는 온갖 외교채널을 동원해 반 이슬람 편견이 작용했다 등의 주장을 편다.
이 두 사건은 사우디왕가가 여성인권이란 문제에 어떤 입장인지를 극명히 말해준다. 동시에 회교근본주의 세력의 입김에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여성의 지위를 개선시키겠노라고 해마다 약속해왔다. 그러나 해마다 공수표임을 입증해왔다.
파키스탄과 비교하면 사우디왕가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안정돼 있다. 극단적인 회교원리주의 세력의 도전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우디왕가는 원리주의자들의 비위맞추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왕실 스스로가 여권개선에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테러전쟁은 테러와의 전쟁인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전쟁이다. 광신적인 이데올로기가 테러리즘을 유발시키는 그런 형태의 전쟁이다. 이데올로기란 측면에서 볼 때 사우디는 과연 미국의 동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성 ‘베일’ 착용 의무화
서구에 대한 저항을 상징
이슬람사회의 여성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올려지나. 베일을 쓴 여성이다. 이 베일은 이슬람 사회의 관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여성억압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얼굴을 비롯해 여성의 노출부분을 가리는 베일은 이슬람 이전부터 중동지역에 있었던 문화적 관행이었다. 이슬람 이전의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시대에 베일은 계급이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로 사용됐던 것.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그러나 베일착용은 여성에게 강제됐다.
이슬람법의 토대가 되는 코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예언자의 부인들이 신도들을 만날 때 가리개(hejab)를 사이에 두고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이후 이슬람법을 해석하면서 여성의 정숙함을 강조하는 타당성의 근거가 된 것이다.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사회질서유지라는 명목 하에 여성의 베일착용이 강요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슬람 사회에서는 이슬람법에 따른 의무사항으로까지 여겨지게 된 것이다.
개방정책을 추구하는 일부 이슬람국가에서는 그러나 베일착용을 법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이란의 경우 팔레비 왕정시절에는 베일착용 금지를 강제화하다시피 했다. 군을 동원해 베일착용의 구습을 타파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확산과 함께 베일은 서구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부각된다. 이런 정서가 확산되면서 베일은 다시 권장되고 있다. 일부 이슬람국가에서는 베일착용을 종교법에 따라 의무화하고 불착용 시 엄한 벌을 가하고 있다. 수니 근본주의의 요람지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전형적인 케이스다.
베일은 그러므로 정치, 종교, 문화적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강제성의 원리만 작용하는 이슬람의 사회구조에서는 이중삼중으로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각종 베일을 쓴 이슬람권의 여성들. 이 베일은 강제성의 원리만 작용하는 이 사횡에서 이중삼중으로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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