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는 일이 3D에 속하잖아요.” 언젠가 음식점에서 웨이트리스가 무거운 접시를 상에 내려놓으며 말했을 때, 나는 옆에 앉은 일행에게 물어야했다.
“3D가 뭐예요?” 웨이트리스가 듣고 얼른 웃으며 대답했다. “Dirty, Dangerous, Difficult의 약자예요”라고. 약자를 모르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할인해 달라거나 깎아달라는 말은 좀처럼 쓰지 않는다.
DC(discount) 안되냐고 해야 한다. 애프터서비스가 아니라 AS이고, 프리젠테이션이 아니라 PT이며, 지도자 훈련이 아니라 MT라고 해야 한다. 하물며 전 대통령들의 이름도 DJ, YS의 약자가 더 눈에 익숙하다.
네티즌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하다. 약자와 파생어들이 한 단어 건너 쓰이고 있어 그 뜻을 모르면 그야말로 암호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난감함에 빠지고 만다.
안녕하세요 대신 ‘안냐세요’라 하고, 반갑습니다 대신 ‘방가’라 하고,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는 ‘리하’(re-hi), 즐거운 시간은 ‘즐’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예 자음만을 나열한 것이 단어가 되기도 한다: 감사는 그저 ‘ㄱㅅ’으로, 죄송은 ‘ㅈㅅ’로만 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연결이 되는데 그림문자 같은 엽기적인 단어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어 당혹스럽다.
이쯤 되면 3D라는 약자는 약과이다. 그렇긴 해도 누가 감히 어느 특정한 업종에 더럽고, 위험하고, 어렵다라는 형용사를 모두 붙여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굳이 그 이름표를 붙이자면 그렇지 않은 업종이 또 어디 있는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참 더러워서 못해먹겠네”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며,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고, 안전하기만 한 일이 어디 있는가. 그저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을.
그런데 언론에서 유독 노동과 생산직을 3D 업종으로 공공연히 부르고 있다. 심지어는 ‘대표적인 3D 업종’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이와 연관된 최근의 신문기사 대목을 몇 개만 뽑아보더라고, ‘3D 업종의 생산, 기술직에 한정됐던 구인난이…’ ‘재건성형 분야는 의료계의 3D로 분류돼 최근 지원자마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정규직 집배원 모집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3D 업종이라는 인식 때문에…’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꼽히는 조선업종의 생산직 근로자’ ‘3D 직종으로 분류되는 해충방제 요원’ ‘3D 업종 외국인 노동자’ 등이 있다.
굳이 3D를 붙일 만한 업종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노동이나 생산직이 아니고 단연히 ‘정치업’일 것이다.
정치가들이 만지는 더러운 돈(dirty),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배신당할 지 모르는 아슬아슬함(dangerous), 그리고 누구의 비위를 언제 어떻게 맞춰야 앞 길이 막히지 않을까 24시간 궁리해야 하는 난감함(difficult)을 고려할 때 정치업은 3D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언론에서 3D 업종이라는 이름표를 노동과 생산직에 한해 공식적으로 붙이고 있는 것에 대해 시정이 요구된다. 설령 그 표현이 언론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모두가 인정하는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하는 언론에서 특정 업종을 비하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은 신성하며 근로자의 땀은 깨끗하다. 노동(일할 勞, 움직일 動), 근로(부지런할 勤 일할 勞)―이 글자들 안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力자를 자전에서 찾아보면 힘, 힘쓰다, 부지런히 일하다, 있는 힘을 다하여 라고 풀어주고 있다. 부지런히 있는 힘을 다하여 움직여 일하는 것을 더럽다고 하다니, 천부당 만부당하다.
이영옥 엔지니어·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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