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은 뉴욕 뿐 아니라 미주 전역의 한인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각인시켰다. 감동의 물결이 전세계를 휘감았던 그 월드컵이 어느덧 1년째를 맞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 한인이 있는 곳에서는 모두 ‘붉은 악마’가 됐다. 우리에게 더 큰 의미는 한인 2세들이 월드컵을 계기로 세대간의 무관심을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당시를 되돌아보며 월드컵을 통해 얻은 수확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 등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1.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2002년 6월4일 한국과 폴란드의 예선 첫 경기는 건국 이래 첫 월드컵 승리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부산월드컵경기장에서 전반 중반 이을용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이 멋지게 선취골을 넣었고 후반 초반에는 유상철이 중거리슛을 터뜨려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경기를 지켜봐야 했던 뉴욕 한인들은 펄쩍펄쩍 뛰며 감격했다. 나중에 ‘응원의 메카’로 떠오른 서울플라자에는 1,000여명의 한인들이 모였다. 그러나 이 경기는 한편의 드라마를 뛰어넘는 시작에 불과했다.
6월10일 미국과의 경기는 얼마전 동계올림픽에서 불거진 반미감정이 당시 국가적 염원이었던 16강 진출과 맞물려 높은 관심을 끌었다. 전반 선취골을 빼았긴 한국팀은 후반 안정환 선수가 감각적인 헤딩골로 연결해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경기는 뉴욕시간으로 새벽 2시30분에 열렸지만 붉은 옷을 입은 수천명의 한인들은 태극기를 들고 얼굴에는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 주요 경기 중계 장소에 몰려들었다.
첫 경기인 폴란드전과 달리 젊은 한인 1.5세, 2세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대형 TV를 통해 축구 경기를 중계한 맨하탄과 퀸즈 플러싱 등의 식당과 카페는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뉴욕한인사회가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속으로 뛰어들었다.16강 진출을 결정짓는 포르투갈과의 경기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6월14일 아침 7시25분 한국과 포르투갈의 16강 진출 경기는 뉴욕한인사회를 감동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경기 후반 박지성의 천금같은 결승골이 터짐과 동시에 뉴욕 일대 한인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16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아침 수업을 빼먹은 채 응원 장소에 모인 한인 청소년들, 멀리 뉴욕주 올바니에서 아이들과 함께 내려온 50대 아저씨,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응원하러 나온 젊은 부부, 모두 한마음이었다.열정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한 한인들의 한결같은 응원에 미국인과 주류 언론에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인 2세 청소년들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느꼈고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고 거듭 말했다.
한국이 최강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와 만난 8강 진출 경기는 한인사회 역사상 없었던 최고의 환희를 안겨주었다. 이탈리아의 선제골로 패색이 짙던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 연장전 안정환의 골든골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내고 8강 진출의 신화를 만들었다.
각본없는 역전 드라마에 한인들은 너나할 것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플러싱과 맨하탄 뉴저지에서는 경기가 끝난 뒤 길거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행진했고 ‘대∼한민국’에 맞춰 자동차 경적을 울려댔다. 길거리는 붉은 옷을 입은 한인들로 뒤덮였다.
8강에서 한국은 스페인과 맞붙었다.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에서 한국이 승리, 4강 진출이 확정되면서 또한번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경기 후 플러싱에서는 한인 4,000여명이 공영주차장에 몰려 자축의 파티를 열었다. 한인 이민 역사상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희열과 정열을 마음껏 발산했다.
결승 진출을 앞두고 맞붙은 독일과의 경기는 연이은 연장 접전으로 지친 태극 전사들이 아쉽게 패했지만 한인들은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날 경기에서 한인사회는 처음으로 플러싱 유니온스트릿에서 길거리 응원을 기획했지만 준비 미숙으로 불발, 아쉬움을 남겼다.
2. 월드컵이 남긴 것
한인 1세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갖고 있던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지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인 1세와 2세의 세대간 무관심이 깨졌다는 사실이다.한인 1.5세, 2세들은 월드컵을 통해 자신이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게 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라 문씨는 월드컵 기간 중 "한국에 대해 고마움을 갖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자발적으로 붉은 옷과 두건을 입었으며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얼굴과 팔 등에 태극 문양의 페인팅을 새겼다.중학생과 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이른 새벽에 경기를 지켜보고 응원 장소로 몰려왔다. 서툰 한국말로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뉴욕주 소재 아이오나대학의 김기석(심리학) 교수는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짐으로써 주류사회속의 소수 민족으로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던 한인 1.5세와 2세들이 확고한 정체성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한인사회에 이들의 진출을 앞당기는 기회가 된 것이다. 지난해 있었던 코리안퍼레이드와 추석맞이대잔치 등에 한인 2세들의 모습이 많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4월 열린 홍명보(LA 갤럭시)의 뉴욕 경기에 5,000여명의 한인들이 몰린 것도 월드컵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인 2세 단체들의 한인사회 참여가 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숙제는 남아있다. 이들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내 한인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한인 2세들이 보여준 열정을 한인사회의 발전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한인 단체들의 노력과 희생정신이 필요하다.
김기철 뉴욕한인회장은 "한인 1.5세, 2세들에게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며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월드컵은 끝났지만 뉴욕 한인사회는 월드컵에서 나타난 화합의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
<김주찬 기자> jc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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