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名實)이 상부하여 껍데기와 알맹이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면 그래도 납득이 가련만 왜 "실(實)이 없는 명(名)’을 내세우려 하나. 고급 포장지로 포장된 옥수수는 옥수수일 뿐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민 온 동기를 얘기할 때도 그렇다. 한 달에 기백만원이 넘는 과외비를 감당 못해 이곳에 왔다든지, 편하게 살려고 왔다든지, 돈 벌러 왔다는 말로 족하다. 그런데 무슨 대학을 나와 무엇을 하다 왔다는 등의 수식어를 늘어놓는다. 허울 좋은 ‘껍데기’가 판치는 세상이다.
재벌이 무엇이기에! 학벌이 무엇이기에! 란 말을 요즘 대화에서 많이 쓰고있는 판에 한국의 모 결혼정보회사가 내놓은 다음과 같은 허울 좋은 배우자상(配偶者像)은 일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배우자 선택에서 학벌, 외모, 재산, 집안배경까지는 좋다. 그런데 배우자 선택을 점수제로 예를 들어 여성의 경우 키 162cm(5.3피이드) 이상, 체중 50Kg(110파운드) 미만에 안경 미착용이면 30점을 얻지만 호감이 안가는 인상이면 무조건 0점이다. 학력은 서울대, 연·고대, 이대면 20점을 따지만 지방전문대는 0점이다, 아버지가 장·차관 이상 공무원이나 50대 대기업가, 변호사, 교수 등이면 20점이지만 일반 상인이면 10점, 이런 식이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 학벌 20점, 집안배경 20점, 직업 20점, 재산 10점, 외모는 여성이 30점인데 반해 남성은 10점으로 남녀간 점수 배분기준이 다르고, 총 65점 이상이면 배우자 찾기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상은 한국의 모 결혼정보회사가 회원제를 두면서 제시한 점수제다. 그런데 그 회사가 오는 5월 가정의 달을 기하여 미혼녀 회원들을 인솔하고 LA로 원정, 나흘 동안 미주 동포 미혼남 20명과 돌아가며 데이트를 하도록 주선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라면 결혼을 앞둔 모든 미혼남녀는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미 점수가 부여된 선택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분류가 되는 셈이다. 아무리 점수에 울고 웃는 세상이라지만 배우자 선택도 점수제라니 끔찍스런 정신적 파산이다.
언젠가 한국의 모 여성 잡지사에서 상패와 함께 백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를 부상으로 내건 ‘다이아몬드 레이디상’을 공모한 일이 있었다. 일테면 앞서 말한 배우자상과는 달리 모범이 될만한 여성상(女性像)을 뽑자는 것이다.
잡지사가 그 선정기준을 놓고 고심한 끝에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마음씨, 말씨, 맵씨, 솜씨 등 4개 부문으로 나누어 각각 그 해당자를 뽑았다. 이렇게 부덕(婦德)을 4개의 사부덕(四婦德)으로 나눈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일장일단이 있게 마련이어서 이 사부덕을 한 사람이 모두 좋게 갖추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여성지(女性紙)니까 부덕을 들고 나왔을 법하고, 부덕을 생각하다보니 사부덕이 나왔을 법하지만 합쳐진 부부간, 내외간의 내외상(內外像)에서 유독 여성만을 떼어 무대에 올려놓고 객석에서 마음씨가 어떻고, 말씨 맵씨 솜씨는 어떻다고 저울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남성이 목적이 되고 여성이 수단이 된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하고,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잔재로 볼 수도 있다. 차라리 금슬이 좋은 부부 한 쌍을 무대에 세워 놓고 부부상을 주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부덕이니 사부덕을 오직 여성만이 지켜야 할 몫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남편도 이 사부덕을 돕는 남성으로서의 사부덕(四夫德)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아내는 마땅히 이레야 한다"는 당위성(當爲性)은 남편에게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실종된 남편상 앞에 아내상이란 무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부부 산술법에서 1+1=1인 까닭도 있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었다,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아내는 ‘아줌마’로 변했고, 남편은 여전히 ‘남자’로 남아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허울 좋게만 살고, 서로 젊게 사는 내외상(內外像)을 잃었기 때문이다.
결혼한지 3년이 지나면 신혼의 열정은 사라지고 갈수록 의무감으로 살게 된다는 한국리서치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이혼자의 30%가 결혼 4년 이내의 부부라고 덛 부쳤다. 부부간의 열정이란 그만큼 쉽게 식는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행복한 부부일수록 열정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친밀감이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상적인 부부는 본래 없고, 서로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땅에는 ‘껍데기’가 너무 많다. 나흘 동안 미주 교포 미혼남 20명과 돌아가며 몇 시간 동안 데이트를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열정이 생길 것인지. 설사 생긴다 하더라도 친밀감으로 이어질 것인지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혹시 한국의 미혼녀 회원들이 미주 동포 미혼남을 만난다고 머리를 무지개 색으로 물들이고, 코 툭튀어 나오게 만들고 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생긴다.
/ikhchang@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