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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초일류 호텔들이 즐비하고, 긴 백사장은 쪽빛 바다와 함께 열대의 더위를 식혀준다. 해변에는 늘씬한 라틴계 미녀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조깅을 하거나 일광욕을 즐기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코파카바나 비치의 밤은 낮의 화려함과 판이하다. 하오 7시께 날이 어둑해지면 해변도로에 초라한 모습의 노점상들이 전등불 하나에 의지해 조악하게 가공한 보석류, 가난한 화가의 그림, 싼 옷가지들을 진열하고, 인근 부유층과 외국인 관광객을 기다린다.
기자는 지난 99년 여름 취재차 브라질을 방문하면서, 코파카바나 해변의 야시장에 보석 진열대를 차려놓은 70대 노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뉴욕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여기에 있는 노점상들은 사실상 실업자"라며, "뉴욕 월가는 브라질에 빌려준 빚을 받아내기 위해 실업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
상파울루의 부자촌은 미국의 부자 타운보다 호화찬란하지만, 산등성이 달동네는 한국의 60년대 판자촌을 연상케 한다. 상파울루의 달동네는 현지 경찰도 들어가지 못하는 치안부재의 지역이다. 페르디난도 카르도수 대통령이 10년 동안 글로벌 경제를 받아들인 결과는 빈부 격차의 심화였다.
브라질의 경제연구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상위 부유층 20%가 국가 전체 부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하위 20%는 2% 밖에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의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빈민층이 전체 국민의 25%에 이르고 있다.
3년이 지난 지금, 코파카바나 해변 야시장 사람들과 상파울루 빈민촌의 주민들은 금속노동자 출신인 노동당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의 당선으로 미국의 안방인 라틴아메리카에 최대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게 됐고, 미국 언론들은 연일 남미의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룰라의 당선이 확정되자 가난한 사람들은 마치 갑자기 부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길거리를 뛰쳐나오며 환호했다. 하지만 룰라는 당선과 동시에 그를 지지해준 서민 대중보다는 대형 은행가 등 부유층의 눈치를 살펴야 할 입장이다. 해외 자금 이탈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브라질 부유층들이 돈을 다 빼내갈 경우 룰라는 빈털터리 국가를 인수하게 되는 것이다.
연초에 이웃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錯括 시위가 격해지자 부자들의 해외송금 규모가 커지고, 그 결과는 페소화 절하와 국가파산 선언이었다.
브라질 국민의 민심을 이반시킨 카르도수 현 대통령도 70년대 남미 종속이론의 대부였고, 한국에서도 당시 젊은 대학생들에게 그의 책이 소개되기도 했다. 종속이론은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제3세계 인민들이 가난하게 되고, 이의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카르도수 대통령은 종속이론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로 돌아섰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표방한 브라질은 지난 10년 동안 관세를 인하, 수입물자 가격을 떨어뜨려 물가를 잡고, 외국자본을 유치, 국가 파산을 막았지만, 빈민층을 양산했다.
카르도수 대통령은 그가 포기한 젊은 시절의 종속이론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며, 룰라의 좌파 정권이 탄생하는 배경을 형성한 것이다.
미국의 폴 오닐 재무장관은 "룰라가 미친 사람이 아닐 것"이라며 좋은 정책(?)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룰라의 브라질은 코파카바나 해변의 두 모습처럼 진퇴의 기로에 서 있다.
부자와 관광객들이 야시장을 찾지 않는다면 노점상의 실업인구는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 룰라는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 첫머리에서 해외부채를 갚겠다고 공약했다.
돈이 없으면 사회주의도 하지 못한다. 이웃나라 아르헨티나가 연초에 외국 빚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물가 폭등과 사회불안이 야기된 것을 룰라가 모를리 없을 것이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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