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발을 시인한 북한이 핵카드를 어처구니 없는 흥정거리로 들고 나왔다. 단순한 경제적 실리가 아니라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맺자는 것이다. 불가침조약은 국제관계에서 별로 흔치 않은 조약이다.
불가침조약을 맺을 경우 상대 국가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것과 상대국이 전쟁에 휘말릴 경우 그 적국 편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주 내용이 된다. 각국간에 전쟁상태가 복잡해질 때 자국의 전선을 확대하지 않기 위해 등장한 수법인데 2차대전 전 중국과 소련, 독일과 소련, 일본과 소련이 맺은 적이 있다. 그 후 어느 나라도 불가침조약을 맺지 않았고 미국은 이런 조약을 맺은 선례가 없다.
불가침조약은 상황에 따라 휴지조각이 되기 쉽다. 개인간이나 국가간에 이루어진 합의는 제재수단이 뒷받침되어야 이행될 수가 있는데 불가침조약은 그 제재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일방이 불가침조약을 어겼다는 자체가 곧 전쟁이므로 더 이상 제재수단이 없다. 과거의 불가침조약은 모두 그렇게 깨졌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불가침조약은 끝까지 지키는 쪽이 손해 보는 조약이다.
북한이 이런 불가침조약을 제의한 의도는 뻔하다. 손해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약이 성립된다고 해도 북한이 전제조건이 될 핵개발 포기를 충실히 지킬 리가 없다. 그래서 조약이 깨진다면 또 다른 방법으로 대응하려고 할 것이다. 지금 제네바협정을 사문화 시켜놓고 불가침조약을 제의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을 쓸 것이다.
불가침조약을 제의한 이유는 미국의 선제 공격을 막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짜 속셈은 다른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과 불가침조약이 성사되면 북한은 더 이상 미국의 적국이 아니다. 외교적,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물론 남한에 미군이 주둔할 이유도 없게 된다. 북한과 남한의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미국은 남한의 편을 들 수 없게 된다.
북한은 미국의 손발 뿐 아니라 온몸을 꽁꽁 묶어놓고 마음 놓고 전쟁을 할 수 있게 된다.북한이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한다면 한반도 비핵화정책을 선언하고 남북 불가침조약부터 제의해야 할 것이다.
남북 불가침조약을 맺는다고 해도 그 실효성을 믿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 4강국이 보장해야 하고 이 조약을 뒷받침하는 남북한 동시 군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도 북한은 핵개발과 무장강화를 정당화하면서 이에 대한 미국의 압력을 남북한과 해외동포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북한의 조평통은 10월 28일 담화를 통해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는 북한의 이른바 선군정치가 없었더라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열백번도 더 터졌을 것이라면서 선군정치는 공화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한 것이므로 다함
께 대미투쟁에 나서자고 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은 핵카드를 이용하여 남한을 적화통일하는데 방해가 되는 미국을 꽁꽁 묶어 놓으려고 한다. 그리고 남한을 도와줄 미국을 묶는 일에 남한더러 총대 매고 나서라고 하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결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로 우리 앞에 다가와서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방향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미 남한에는 얼빠진 일부 지도층과 국민들이 북한이 원하는대로 가고 있다. 기회만 있으면 미국을 비난하고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뭔지도 모르고 이들을 따라가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그리고 남북한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알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의 향후 정권에 따라 우여곡절이 있을 것은 분명하다.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속에서 북한의 의도 대로 일이 풀릴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북한의 시도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 누구도 역사의 선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이 역사의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실체와 의도를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