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군이 수도 카불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13일 뉴욕 증시를 벌겋게 달궜다. TV 화면에 북부동맹의 무장 군인들이 카불로 진입하는 장면이 나오자, 지구촌 반대편에 있는 뉴욕 증시의 주가지수는 고개를 들고 위로 치솟았다. 두달 전 세계무역센터를 붕괴시킨 바로 그 테러 집단과 동맹 세력이 퇴주하고, 그 자리를 미 공군의 지원을 받은 아프간 반군이 점령하는 모습은 뉴욕 월가 투자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으리라. 수천명의 동료를 잃고, 사무실까지 쫓겨나 있던 그들은 보복을 한 셈이고, 증권시장의 큰 불안요소 하나가 제거됨으로써 기분 좋게 투자하는 여건이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아침자 뉴욕타임스지를 열어보면 마음이 달라진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아프간 반군을 동행하며 아프간 북부 도시를 공격하는 현장 르포 기사를 사진을 곁들여 실었다. 북부동맹군은 버려진 벙커에서 탈레반 병사들을 생포했다. 그들은 무장 해제된 탈레반 병사들을 질질 끌고 갔고, 겁에 질린 탈레반 병사는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사진도 생생하다. 그러나 북부동맹군은 그들을 잔혹하게 총살하고, 또 확인사살까지 했다. 북부동맹군은 그것도 모자라 죽은 시체를 뒤져 돈이며, 값나가는 물건을 약탈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란 다 그런 게 아니냐고. 무고한 시민 수천명이 죽었는데, 테러 집단을 보호해준 세력의 병사를 죽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게 전쟁이고, 21세기 첫 전쟁도 역시 사람을 죽인다는 점에서 재래의 전쟁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최신식 무기가 동원되고, 숨어 있는 세력과 싸우는 게 다를 뿐이다. 종족간 분쟁이 이용되고, 승자가 포로를 서슴없이 살해하고, 전리품을 나눠 갖는 모습은 두 밀레니엄전에 서양의 로마군이나 동양의 흉노족이 했던 것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가.
이제 아프간 반군이 수도 카불을 점령함으로써 이번 전쟁에 중대한 진전이 이뤄졌고, 맨해턴 유엔 빌딩에선 포스트 탈레반 정부 수립에 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전쟁의 명분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20세기에 1, 2차 세계대전과 동서 냉전에 참전하면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대의명분을 내걸었다. 이번 전쟁에도 자유와 민주주의에 하나 더 곁들여 반테러라는 명분이 걸려 있다. 따라서 이번 전쟁의 목표는 알 카에다 테러집단의 척결과 그 지지세력인 탈레반 정부의 전복에 있지, 도덕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북부동맹의 지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부동맹은 지난 92년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했지만, 아프간 다수 종족인 파슈툰족을 대량 학살, 탈레반 정부가 카불을 점령하게 명분을 만든 세력이다. 북부 타지크족과 우즈베크족이 주력인 그들은 카불을 4년 동안 지배하면서 강간, 살인, 약탈을 일삼다가 파슈툰족을 등에 업은 탈레반 세력에 의해 북쪽으로 쫓겨갔다. 그들은 마약 재배를 통해 군비를 조달했음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북부동맹이 또다시 과거 역사를 재연할 것임은 뉴욕타임스지의 르포 기사를 통해 예견되고 있다. 국제 전쟁협약도 무시하고 다른 종족의 포로를 살상, 약탈하는 사진을 보고 미국이 저들에게 정권을 넘겨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북부동맹은 미국과 영국의 만류에도 불구, 서둘러 카불로 진격했다고 전해진다. 뉴욕 증시의 주가처럼 알 카에다 집단과 탈레반 정권의 본거지가 점령됐다는 소식에 속시원하게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미국은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아프간 사람들을 위해 식량을 공수하고, 학생들로부터 1달러씩 거뒀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운동이 특정 종족을 기반으로 한 부도덕한 군사 세력에게 아프간을 통치하도록 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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