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61) 판소리
![계층을 넘나들며 오락과 정보를 전달하던 전통놀이판 계층을 넘나들며 오락과 정보를 전달하던 전통놀이판](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2/08/24/20220824190602631.jpg)
올해 54세의 허애선 명창이 남원 시립도서관에서 판소리 심청가를 4시간 완창하고 있다. [Photo ⓒ Hyungwon Kang]
![계층을 넘나들며 오락과 정보를 전달하던 전통놀이판 계층을 넘나들며 오락과 정보를 전달하던 전통놀이판](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2/08/24/20220824190602632.jpg)
판소리 연구가 김용근 선생이 통나무로 만든 전통북으로 고수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때 원래 통나무로 만들던 우리 북을 일본식 판자로 만드는 전통으로 바뀌었다. [Photo ⓒ Hyungwon Kang]
판소리는 원래 마당, 즉 공개 장소에서 확성기 없이 한 명의 고수가 속도와 장단을 조절하는 북장단에 맞추어서 창과 대화로 관객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하는 전통놀이판이다.
판소리에서는 길게는 8시간 이상 아니리 스토리텔링 소리를 하면서 너름새 춤과 몸동작을 공연하는 명창이 고수의 북소리와 귀명창인 관객들의 추임새로 흥이 돋워질 때 공연이 완성된다. 요즘은 무반응 관객을 신조어로 ‘시체 관객’이라고 부르는데, 판소리 관객은 지속적으로 추임새를 하면서 명창을 응원해야 한다.
명창의 생명은 소리를 지속적으로 맑게 부를 수 있는, 오장육부에서 파장으로 나오는 지구력과 소리가 새지 않을 양호한 치아 건강이라고 판소리 연구가 김용근 선생은 말한다.
고려 때 마지막 왕으로 정권을 얻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개국 국시(國是)를 민본주의(民本主義)로 정했는데, 세종 때 한글을 창제하면서 백성들의 눈을 띄웠다면, 판소리의 대중화는 백성들의 귀와 입을 트이게 한 변화라고 한다. 전국 팔도를 다니면서 판소리를 하는 광대들이 각 지역의 어렵고 서러운 사정 이야기를 판소리로 들려주는 판소리 마당을 통해서 타 지역 정보를 접했던 시절, 판소리꾼들이야 말로 정보통신꾼이었던 것이다.
조정에서는 시골에서 듣고 전달하는 판소리 창의 스토리를 근거로 암행어사를 파견해 타락한 지역관리들을 색출할 만큼, 판소리 명창들은 광대 신분이지만 양반의 복장을 하고 활동하는 사회 특이층이었다. 동편제 판소리 창시자 송흥록(宋興祿, 1801-1863)은 조선 후기의 판소리 명창으로 철종으로부터 통정대부(정3품) 벼슬까지 받으며 한 시대를 소리로 노래했다.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유난히 많이 들어있는 판소리를 하는 명창 중에는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였으나 아직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 즉 선달(先達)이 많이 있었다.
판소리 중 4시간에 걸려 완창하는 심청전은 뱃길로 이어진 한국과 중국과의 교류의 역사를 담고 있다. 매 6시간마다 바닷물의 방향이 바뀌는 서해는 배를 타는 선원들에게는 위험이 많은 바다이다.
심청전에서 봉사 심학규의 아이를 임신했던 곽씨 부인이 태교 때 지켰던 내용을 판소리 창으로 표현하는 내용을 보면 “불효삼천 무후위대(不孝三千無後爲大), 이 세상에 죄가 삼천가지 있는데 후사 없는 것이 가장 크다, 석부정부좌 (席不正不坐), 자리가 반듯하고 바르게 놓여 있지 않으면 앉지 않는다, 할부정불식(割不正不食), 모양이 반듯하고 바르게 썰리지 않은 것은 먹지 않고, 이불청음성(耳不聽淫聲),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 눈으로는 부정적인 것을 보지 않는다”라고 했다.
딸 심청이 태어난 후 바로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난 곽씨 부인 없이 동냥으로 젖을 얻어 먹이며 심청을 키우는 심봉사의 이야기를 담은 판소리는 듣는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힘이 있다.
혼자 사는 심봉사에게 ‘자진출가’를 해왔다는 뺑덕어미 사연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황성에서 장님파티가 있다고 개경으로 이동하는 심봉사가 목욕을 하다가 옷을 잃어버리는 사연 등 웃지 않고는 못 지나가는 코믹한 부분도 있다.
4시간에서 길게는 8시간이 걸려야 완창하는 춘향전 판소리를 하면 “수명이 줄어든다고 안하시는 명창들이 계신다” 고 허애선 명창은 말한다.
진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창을 가까이 해온 허애선 명창은 1986년 5월 호남예술제에서 큰 상을 받고 자신감이 생겨, 중앙대 국악과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혼자 공부해서 서울로 상경해 중앙대에 무리 없이 합격해서 판소리를 계속 해왔다고 한다.
판소리는 온몸 전체를 다 써서 소리가 배에서 나오는데, 오랜 시간 터득을 하다 보니 배에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7년부터 국립극장 창극단 단원으로 입단해서 공연을 해오고 있는데, 출산을 하고 뱃심이 빠져 한 1년은 힘을 못 받아 고생을 했다고 한다. 노래는 하면 할수록 성대가 부드러워져 기운만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창을 할 수 있는데, 4시간 완창 준비를 하면서 식사량을 늘려 체력을 쌓다보니 한 달 사이에 체중이 2kg나 늘었다고 한다.
최근 남원시립도서관에서 심청가를 4시간만에 완창한 허애선 명창은 “관객이 조용하면 더 힘들어요”라며 “도중에 나갔다 들어오고 먹을 것 가지고 와서 먹어도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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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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