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찮은 스펙의 철수는 취업지원에서 우수수 낙방한다. 그나마 연락 온 곳도 인턴기간 동안 월급은 없다. 이마저도 오히려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세상에서 소외된 철수는 그렇게 호스트바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9월 첫째 주 온라인 개봉 후 흥행몰이에 성공한 ‘퀴어영화 나비 : 어른들의 일(감독 백인규/유승원, 김대영, 남승우 주연)’의 도입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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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영화 나비는 주인공 철수의 시점에서 어른들의 일에 대해서 고발한다. “꼬우면 성공하라”며 갑질하는 손님부터, 직원들을 위한다며 기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장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 현 시대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같은 호스트들마저도 계층에 따라 입장이 나뉘고 서로 대립하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리바리 했던 철수도 살아남기 위해 점점 더 때가 타기 시작한다.
퀴어영화이지만 장르의 영역에서만 머물기 거부한 ‘퀴어영화 나비 : 어른들의 일’은 게이 호스트바라는 공간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모습을 통렬하게 담아낸다. 앞 세대들의 의식 있는 영화와 다르게 이 영화는 집단적인 저항이나 분노 대신 현 시스템에 놓인 철수와 아이들의 처지에 더 포커스를 맞춘다. 이 점에서 영화는 이전 세대와는 결을 달리한다. 저항의 힘조차 거세된 현 세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영화를 본 한 관객은 “헬조선(젊은 사람들이 현재의 한국 사회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일상은 언제부턴가 참 씁쓸하다. 그가 게이이건 이성애자이건 간에 말이다. 감각적인 편집과 미장센으로 주제의식을 간명하게 드러낸 점이 흥미롭다. 문제는 주인공이 게이냐 아니냐가 아니다”고 말했다.
제작사 99필름 측은 “원래 더 디테일한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백을 남기기 위해 많이 덜어내게 됐다. 관객들이 영화라는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난 7월 극장개봉 후 장르의 특성과 스타배우 부재로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퀴어영화 나비 : 어른들의 일’은 진정성에 힘입어 온라인을 통해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한 영화관계자는 “퀴어영화로써 차트 상위권에 포진하는 힘은 이러한 보편적인 울림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성 상업영화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문제를 호스트바라는 공간을 통해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 대변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퀴어영화 나비가 이 시대의 ‘어른들의 일’에 대해 던진 화두가 끓어오르고 있다. 이 물음에 대해 이제 어른들이 답할 차례다.
<유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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