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안 현금 많다”표적
▶ 감시카메라 무력화 장비
▶ 차량 추적기로 미행까지
▶ 수백만달러 피해 발생
지난 8월 오리건주 유진에 거주하는 김종만(69)씨와 아내 병숙씨는 하루 종일 식료품점에서 일한 뒤 집으로 돌아와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했다. 집 안 거의 모든 서랍이 비워져 있었고, 옷 주머니는 뒤집혀 있었으며, 깊숙이 숨겨둔 금고는 강제로 열려 있었고, 또 다른 금고는 사라져 있었다.
이들이 도둑맞은 것은 부부가 평생 모은 저축, 결혼반지, 가족 대대로 내려온 유품, 심지어 김씨가 수집한 아이젠하워 달러까지 포함됐다. 김씨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50년 동안 돈을 모으며 꿈을 키웠는데, 이제 그 모든 의미가 사라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인 등 아시아계 가정을 표적으로 한 콜롬비아 출신 ‘빈집털이’ 전문 조직절도단이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며 김씨와 같은 한인들의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고 NYT가 14일 보도했다. 이 절도단은 피해자의 차량에 위치추적기와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일상을 면밀히 관찰한 뒤, 피해자들이 집에 없는 시간을 틈타 집 안으로 침입해 터는 수법으로 지금까지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현금과 귀중품을 훔쳐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러한 범죄가 고도로 조직적이고 기술적으로 정교해 대응이 쉽지 않다고 경고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플로리다, 위스콘신, 오하이오, 콜로라도, 펜실베니아, 오리건 등 여러 주에서 유사 사건이 잇따랐다. 경찰은 용의자 대부분이 남미 출신, 특히 비자 만료자나 콜롬비아 국적의 불법체류자라고 밝혔다. 특히 한인 등 아시아계 사업주들이 많은 현금을 집에 보관한다는 인식이 범죄 표적이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언어·문화적 장벽으로 신고를 꺼리고, 규칙적인 업무로 집을 자주 비우는 생활 패턴도 이같은 범죄의 타깃이 될 취약성을 높이는 요소로 지적됐다.
NYT가 전한 이들 조직절도단의 수법은 정교하다. 이들은 목표로 삼은 도시로 들어와 단기 임대 주택에 머문 뒤, 집주인이 일하는 틈을 타 문을 부수고 침입한다. 며칠에서 몇 주 동안 한 지역의 여러 가정을 턴 뒤 다른 도시나 주로 이동한다.
절도단은 공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피해자의 집 주소를 확인하거나, 아시아계 마켓 등지에서 직접 범행 대상을 찾기도 한다. 카메라를 숨겨 일상을 관찰하고, 집안에 설치된 경보 시스템을 무력화하기 위해 ‘와이파이 재밍’ 불법 신호 방해 장치를 사용하며, 조경사나 배달원으로 위장해 집 주변을 감시하기도 한다. 얼마 전 플로리다에서는 용의자들이 나무에 설치한 감시카메라로 주택과 사업체를 관찰하는 모습이 경찰에 포착돼 체포되기도 했다.
인구 17만7,000명의 도시 오리건주 유진에서 한인 등 아시아계 주민은 전체의 약 4%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작년 초 이후 유진 지역에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강도 사건이 총 22건 발생해 약 170만 달러 상당의 현금과 물품이 도난당했다. 아시아계재단 보고서는 “지난 2018~2024년 아시아계를 겨냥한 485건의 강도 중 대부분은 피해자의 집에서 발생했으며, 인종을 표적으로 한 범죄가 광범위하고 의도적”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유진 지역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가정을 대상으로 한 강도 사건과 관련해 13명이 체포됐지만, 최근 개정된 보석법으로 일부 용의자는 보석금을 내고 도주했다. 최근 체포된 7명의 남성은 모두 콜롬비아 국적으로 추정되며, 절도품 외에도 콜롬비아로 송금된 기록과 배송 영수증이 발견됐다. 이들은 곧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세 명은 ICE에 의해 구금됐다.
하지만 관련 용의자들이 체포된 지 2주 만에 또 다른 아시아계 가정이 표적이 되는 범죄가 발생하면서 많은 사업주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는 안전 금고와 유선 경보 시스템을 설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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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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