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A House of Dynamite)가 2주째 탑을 찍고 있다. 20주 동안 정상에 있던 ‘K 팝 데몬 헌터스’를 밀어낸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어찌나 사실적이고 긴박감 넘치는지 거푸 세 번을 보았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워낙 페이스가 빠르고 등장인물이 많아서 다시보기가 필요한 지점도 있지만, 두 시간 동안 숨 막힐 듯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연출력에 빨려 들어가 보고 또 보게 된다.
영화는 태평양 상공에서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오는 출처 불명의 핵미사일이 레이다에 포착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때부터 목표지점인 시카고에 떨어지기까지의 19분 동안 일촉즉발의 패닉 상태에서 대응하는 미정부와 군장성, 고위관료들의 핵 위기대처 매뉴얼이 3개의 다른 상황에서 세 번 반복하여 펼쳐진다.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대대, 백악관 상황실, 네브래스카의 전략사령부(STRATCOM), 연방재난관리청(FEMA), ‘백악관 벙커’(PEOC), 그리고 펜실베니아 산악지대의 사이트R 핵 벙커까지, 미국 내 핵 비상대처기관들이 모두 소집되어 사실상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매뉴얼에 따라 우왕좌왕 동분서주한다.
그동안 미군의 전투준비태세(DEAFCON)는 4에서 2로, 그리고 결국은 전쟁 직전단계인 데프콘 1까지 올라간다. 미국에서 데프콘 2까지 간 상황은 1962년의 쿠바미사일위기와 1991년 걸프전 개시 때가 유일하고, 데프콘 1은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적국이 누군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요격미사일 2대가 모두 실패하자 핵무기를 탑재한 B-2 스텔스폭격기가 긴급 출격한 가운데, 대통령은 즉각 보복공격 명령을 내려달라는 군 사령관의 압박에 촉박하고 절박한 고민에 빠진다. 어쩌면 인류전체의 운명이 그의 결정 한마디에 달려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실제상황처럼 느껴지는 대응과정, 디테일 가득한 설정과 촬영, 완전 공황상태에서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심리묘사와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이 대단한 영화를 만든 감독은 캐스린 비글로(73), 이라크전 폭발물 제거반의 이야기를 다룬 ‘허트 로커’(Hurt Locker, 2008)로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거장이다. 이어 만든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을 다룬 ‘제로 다크 서티’(2012) 역시 간담이 서늘해지는 선 굵은 스릴러로, 뉴욕 비평가협회의 감독상을 받았다.
제목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핵무기로 가득한 지구를 다이너마이트로 가득찬 집에 빗댄 것이다. 도미노 한 개가 넘어지면 핵보유국들이 일제히 군 경계상태에 돌입해 수습하기 힘든 대혼란이 시작되는 핵 위기 시나리오를 가리킨다.
영화에서 핵탄도미사일을 쏜 나라는 어디일까? 벼랑 끝에 놓인 북한이 벌인 짓이다, 우크라이나 전으로 미국과 틀어진 러시아가 미국의 보복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북한발사로 위장한 공격이다, 최근 인공지능 핵 공격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중국이 오작동 사고를 일으켰다는 등 다양한 추측이 오가지만 답은 밝혀지지 않는다.
문제는 핵잠수함에서 발사한 미사일은 출처를 정확히 알기 힘들다는 점이다. 핵잠 보유국은 미 중 러 영 프 인도 6개국인데, 다들 별 혐의점이 없자 혹시 북한이 핵잠수함을 건조한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짙어진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국가정보위원회 북한담당분석관 애나 박, ‘패스트 라이브스’에서 주목받은 배우 그레타 리가 여기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무척이나 시의적절하고 민감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요사이 핵잠수함과 핵무기를 둘러싼 뉴스가 부쩍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APEC 정상회담 이후 한국에서는 핵잠 건조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한국이 갖게 될 잠수함은 핵무기를 탑재한 것이 아니라 단지 동력원이 원자력인 잠수함이다. 하지만 핵연료의 제조와 사용과정에서 기술적으로 핵개발과 맞물리는 점이 많고, 주변국 잠수함의 신속한 추적 감시가 가능해 전략상 핵무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2021년 핵잠수함 개발을 선언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독자적으로 핵잠수함을 건조할 능력이 없다고 보고 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 전쟁의 협력대가로 원자력 모듈을 제공했을 가능성도 있고, 올해 3월 김정은이 건조현장을 시찰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추진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지난 5일 미국은 트럼프의 지시로 33년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을 시험 발사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도 질세라, 러시아 국방장관에게 보복차원의 핵실험 준비를 검토하라고 명령했다. 세계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두 나라의 기 싸움에 세계가 불안과 우려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현실 세계에서 핵무기는 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억지력을 위해 보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핵무기가 발사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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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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