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서서히 가며 ’해바라기’가 많이 보이는 요즘이다. 구월에도 여전히 태양을 따라 노랗게 푸른 창공을 향해 핀 해바라기를 보면 기억 속을 헤집고 영화를 봤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영화 해바라기의 장면이 떠오르고, 순간 헨리 맨시니의 주제곡이 귓가에 흐른다.
전쟁터에 나가 실종된 남편을 찾아 헤매던 소피아 로렌의 슬픈 눈빛, 그리고 그녀가 도착한 러시아의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 그 평화로운 풍경이 사실은 수많은 군인의 묘지를 상징하니 해바라기는 그리움이자 전쟁의 비극이었다.
기억 상실로 러시아 간호사에게 도움을 받으며 그녀와 아이를 낳고 살아 가는 남편을 놔 주고 혼자 기차를 타고 쓸쓸히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이 곡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을 먹먹하게 한다. 그 시절, 우리는 그 영화를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보았을까?
그러나 시행착오와 연륜이 쌓인 지금 돌아보니, 그 영화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과 사랑을 품은 깊은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주인공 소피아 로렌이 스무 살 시절의 그리움을 안고 살았듯, 우리도 그 영화를 통해 삶을 배우고 자라났는지도 모른다.
70년대에 본 영화들을 떠올리면, 이해보다는 감성이 먼저였던 것 같다. 장면과 음악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또렷이 남아 있는 걸 보면 . 그때 영화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었고, 이별의 슬픔을 알려 주었으며,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애틋한 정서를 심어주었다.
‘라스트 콘서트’에서 죽어가는 소녀를 위해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피아노 선율은 첫사랑처럼 애틋했고 사춘기 소녀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이해하고 감당하기엔 버거운 감정들이었지만 가슴 깊이 남았던 것 같다.
‘남과 여’의 주제곡을 들으면 속삭이는 듯한 대사가 떠오르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우리에게 막연한 설렘과 기대를 심어주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남북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강인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지닌 스칼렛 오하라를 통해 역경속에서도 강하게 살아야한다는 굳은 의지도 배웠다. 사랑과 이별을 오가며 헤어짐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았던 영화들은 살아가는 삶의 한 페이지가 모여 인생의 책을 만들었던게 아니었을까?
그때의 배경음악을 기억하면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어린 나이에 다 이해하지 못했던 장면들과 음악이 수십 년이 지나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감성을 키우던 정서적 안정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 시절,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사랑과 아픔과 이별을 알았고, 슬픔을 배웠으며, 그 감정들이 어떤 것인지를 몰라도 가슴 깊이 느꼈던 것 같다.
“영화를 통해 무엇을 배웠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절 고운 감성과 정서를 키우고 아련한 추억을 걷는 사랑을 배웠다.”라고. 어느날 문득 흘러나오는 주제곡 하나에 다시 그 시절로 걸어 들어간다. 그 시절 영화와 함께 머물던 자리에 추억도 오래남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게 인생이다.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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