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톈안먼 모멘트, 러 파병 덕▶ 러 파병, 중도 암묵적 지지했을 것
▶ 미동맹 균열 와중에 북중러 결속
▶ 북, 권위주의 진영 핵심 멤버 등장
정부‘핵보유’북에 대응책은
▶ 북 핵 개발과 보유는 완전히 달라
▶ 미 핵우산도 완벽하진 않은 상황
▶ 자체 잠재 핵능력 확보로 보완을
한미 정상회담 선방했지만▶ 미·중 사이 한 위치‘과잉 교정’우려
▶ 안미경중 종언? 중과 경협은 필요
▶ ‘미 한국인 체포 사태’냉정 대응을
“북한 비핵화 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지켜 본 송민순(77) 전 외교부 장관이 내린 북핵 문제 전망은 ‘의외’였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최초의 북핵 6자회담 결과물인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 낸 당사자이자, 2016년 출간한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에서“한반도를 덮고 있는 빙하는 움직일 것”이라며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가 비핵화 협상시대의 종언을 고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을 눈앞에 둔 시점이자 김정은 방중 직후인 지난 5일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송 전 장관은 김정은의 열병식 참석에 대해 “북한이 권위주의 진영의 핵심 멤버로, 그것도 ‘핵 보유국’으로서 완전히 새롭게 등장했다”며 “북핵 문제도 북한이 핵을 개발 중인 때와 이미 핵을 보유한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던 ‘북한 비핵화’라는 의제는 상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추구해야 할 타당성을 상실했다”는 설명이었다.
이재명 정부에는 “잠재적 핵능력 확보에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송 전 장관은 “한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쓰고 있지만, 완벽한 핵우산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미국의 핵우산과 한국의 잠재적 핵 능력이 상호 보완하며 한반도 핵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선 “상황 관리 차원에서 잘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에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 입지를 ‘과잉 교정(overcorrection)’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봤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과의 동맹 안정이란 숙제 외에 한중관계 관리라는 숙제도 가볍게 봐선 안 된다는 뜻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정은이 참석한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서 무엇을 보았나.
“이른바 ‘젤렌스키 모멘트’를 떠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공개 면박할 수준으로 동맹 체제의 균열이 가시화하는 동안 북중러 3국 정상은 톈안먼 망루에 나란히 올랐다. 동맹 진영은 관세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반목하고 있는 반면, 권위주의 진영은 더 긴밀하고 단단해졌다. 두 진영의 그림이 대조적이다.”
-김정은이 톈안먼 망루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북러가 밀착하는 동안 북중관계가 나빴다고들 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북한은 자국군의 러시아 파병 결정을 미리 중국에 알렸고, 중국도 이를 묵인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패배하면 미국을 견제하는 권위주의 진영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선 러시아를 직접 돕지 못하지만 북한의 파병을 묵인했을 것이다. 북한의 파병은 러시아에 도움이 됐다. 북한이 중러와 함께 권위주의 세력의 핵심으로 등장한데는 그런 배경도 작용했다고 본다.”
-전승절 계기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제’가 사라졌다.
“비핵화 문제를 다룬다는 건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다. 핵 포기를 전제로 한 대화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중러 정상이 함께 텐안먼 망루에 선 데에는 3개의 핵보유국이 연대를 이뤘다는 뜻도 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재개될 수 있나.
“거의 불가능해졌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핵 국가가 스스로 그 지위를 포기한 사례는 없다. 창세기 속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기 전후 세상이 다른 것처럼 북핵 문제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 물론 미국은 앞으로도 ‘한반도 비핵화’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북아 핵확산을 억지하기 위한 일종의 핵 항아리의 뚜껑 같은 것이다.”
-김정은의 전승절 무대 등장이 북미 협상 재개의 전조라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가 북미 협상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만약 김정은과 협상에 나선다면, ‘북핵으로부터 미국이 안전해졌다’는 결과물을 얻으려 할 것이다. 이는 한일을 향하는 핵은 놔둔다는 얘기와 다름 없다. 이런 결과가 과연 동맹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미국 국내적으로도 마냥 환영받을 수 있을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북한 비핵화가 물 건너갔다면,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잠재적인 핵 능력 보유를 고민할 때가 됐다. 물론 미국의 핵우산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어떤 핵우산도 완벽하진 않다. 우리처럼 미국의 핵우산을 쓰고 있는 일본·독일도 자체적인 잠재 핵 능력을 갖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과 한국의 잠재적 핵 능력 간 보완관계 구축으로 가야 한다.”
-9년 전 저서에서 ‘한반도의 빙하는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전망이 바뀐 건가.
“사실관계가 달라지면 생각은 바뀐다(When the facts change, I change my mind)던 영국 경제학자 존 케인스의 말을 빌리고 싶다. 핵 개발도상국 북한에 대한 구상과 핵 보유국 북한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어떻게 봤나.
“상황 관리 측면에서 잘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3국 협력 강화를 추진한 건, 현실 외교를 위해 냉철한 결정을 했다고 본다. 진보 정부였기 때문에 한일관계를 더 자신 있게 한 듯하다. 보수 정권이었다면 한일 과거사 문제를 포기했다는 비판 여론이 컸을 것이다. 이와 달리 이번 한일관계 개선 시도에 대해선 국내 비판 여론이 잠잠했다.”
-아쉬웠던 점은 없나.
“미중 사이 한국 위치를 ‘과잉 교정’한 것으로 비쳐질까 걱정된다. 중국에 가깝다는 미국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탓이 아닐까 싶다. 이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끝났다고 했다. 중국과 경제 협력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워싱턴에서 한 말을 짊어지고 차후 중국을 만난 자리에서 한중 간 협력을 말한다면 대통령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미국에게 한 말을 같은 내용으로 중국에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의 외교어법이다.”
-대미 투자 문제 논의 와중에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한국인 무더기 구금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의 실체가 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미 투자 문제와 관련한 백악관 의도가 있었다고 보여지진 않는다. 외국인 불법 체류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해온 이민 당국은 ‘This is law(법대로)’ 원칙에 따라 체포 작전을 단행했을 것이다. 한쪽(통상 당국)은 대미 투자를 받으려 하고 또 다른 한쪽(이민 당국)은 불법 외국인 노동자 단속을 하려 하고, 서로 손발이 안 맞은 것이다. 동맹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감정적 대응보다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
-대미 투자 문제와 무관하다는 뜻인가.
“일단 그렇게 본다. 하지만 트럼프는 모든 카드를 동원해 최대치를 끌어내려는 인물이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대미 투자 규모를 빨리 확정하라는 암묵적 압박 카드로 쓸 수도 있다. 한국으로선 숙련 인력 투입·세제·노동환경 문제를 선결하지 않으면 대미 투자가 양측 모두에게 해가 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부각할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미 간 ‘동맹 현대화’ 논의가 한창이다.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이 쟁점이다.
“동맹 현대화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라면, 동맹 현대화 작업은 이미 이뤄져 왔다. 대만 유사시 미 본토에서 군수 물자를 보내겠나, 평택에서 보내겠나. 또한 ‘오산-타이베이’ 거리는 ‘괌-타이베이’ 거리의 절반 수준이다. 상황이 급박해져 대만으로 출격하는 미 전투기를 한국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대만 유사시 한국군 투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군사 전략적으로 불가능하다. 대만해협에서 미중이 충돌하고 주한미군 전력이 투사되면 대북 방어는 누가하나. 한국군이 대북 억제를 발휘하는 것도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의 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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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빈ㆍ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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