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요르드의 풍경.
노르웨이, 로엔 -> 브릭스달(Briksdal) -> 게이랑에르(Geiranger) -> 베이토스톨렌(Beitostolen)
아침식사후 우리는 북유럽의 또 다른 본질인 빙하(Glacier)의 시간을 향해 출발했다.
로엔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 목적지는 노르웨이의 지붕이라 불리는 만년설과 폭포를 볼 수 있는 빙하지대인 브릭스달 빙하(Briksdal Glacier).
그 길 위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미미하고 또 얼마나 고집스럽게 살고 있는지를 곱씹게 되었다. 브릭스달 기념품 숍과 카페가 있는 곳까지 버스로 이동하고 가파른 지형 때문에 오픈카를 갈아탔다.
바위를 깎고 산을 넘어 만든 길, 얼마쯤 가다 보면 어느새 발밑에 초록색의 빛을 띤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나타난다. 브릭스달 빙하는 손에 닿을 듯 가까우면서도, 절대로 닿지 않는 시간을 품고 있다. 수천 년 전 떨어진 눈이 압착되고, 시간이 얼어붙고, 무게로 밀려 흐르며 지금 여기에 도달한 것. 그것은 단순한 얼음이 아니라, 지구의 호흡이자 대지의 기억이다.
그 얼음 앞에서 우리는 대부분 말이 없어진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은, 결국 침묵을 배워야 한다. 그 침묵 속에서 프리드리히 니체(Fiedrich Nietzsche)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진리를 원하는 자는 사막으로 가야한다. 사막은 침묵이고, 침묵은 진실의 울림이다.”
빙하는 현대 문명 속의 ‘사막’이다. 아름답지만 멀고, 청명하지만 위협적이다.
브릭스달 빙하를 보고 다시 내려온 기념품 상점 앞에 다음과 같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브릭스달 빙하가 2,000년 이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사진 속 기록처럼 매년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빙하가 녹고 있는 주된 이유는 기후 변화, 특히 지구 온난화 이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으로 인해 겨울철 적설량은 줄고, 여름철 기온은 높아지면서 빙하가 충분히 보충되지 못한 채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이 증가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빙하가 수천 년 동안 저장해둔 담수가 사라지며 농업과 식수에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빙하 감소는 지역 기후 순환에도 영향을 주어 날씨 변동성이 증가하게 되고, 자연경관이 사라져 지역 관광 산업에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브릭스달 빙하 역시 머지않아 완전히 없어져 이곳으로 빙하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어서,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오르드로 손꼽히는 헬레쉴트(Hellesylt)-이랑에르(Geiranger) 구간을 유람선을 타고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투어를 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노르웨이 피오르드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이 피오르드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북유럽인의 정서와 세계관을 형성한 정신적
원형에 가깝다. 노르웨이 민속 이야기에서 피오르는 항상 신과 인간이 만나는 경계로 등장한다. 깊고 어두운 물, 둘러싼 절벽,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배. 그것은 ‘삶과 죽음 사이의 강’을 연상시킨다.

7자매 폭포.
한명의 구혼자를 두고 일곱자매가 거절했다는 7자매 폭포(Seven Sisters Waterfall).
어느날, 일곱명의 아름다운 자매들이 이 피오르드 마을을 내려다보며 춤을 추고 있었고, 맞은편 산 너머에는 외로운 술주정뱅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자매 중 한 명을 아내로 맞으려 했지만, 어느 자매도 그와 결혼하지 않기로 하고 모두 하늘로 도망쳤고, 그 자리에 폭포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맞은편 절벽에는 구혼자폭포(The Suitor) 가 외롭게 떨어지고 있는데 그는 자매들이 돌아오기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한다.
게이랑에르 선착장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한국 민속 마을 입구에 장승처럼 서있는 트롤(Troll) 조형물이 있었다.
트롤은 노르웨이 전통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느 존재로 익살맞고 장난기 많은 존재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서운 산의 괴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노르웨이 여행의 마스코트인 트롤과 기념사진을 찍고, 산길을 따라 올라 전망대에서 U자형으로 깊고 아름답게 펼쳐진 게이랑에르 피오르의 정경을 마음속에 담았다.
노르웨이 작곡가 랄프 뢰블란(Rolf Lovland)과 아일랜드 바이올리니스트 피오누알라 셰리(Fionnuala Sherry)가 만든 뉴에이지 듀오, 시크릿가든(Secret Garden)의 Only Love를 들으며, 트롤스티겐(Trollstigen) 방향으로 올라 큰 나무 하나 없는 눈 덮인 능선과 바위들 사이를 지나, 해발 1,030미터에 이르면, 시크릿가든의 음악처럼 고요한 호수 하나와 만난다. 바로 깊은 호수(Lake Djupvatnet). 거울처럼 맑은 호수엔 눈과 바위, 산, 구름까지 고요히 잠겨, 마치 세상이 멈춘 듯,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진다.
그 신비로운 침묵을 지나 차는 다시 고개를 넘어 깊은 숲과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초록 언덕에 둘러 싸인 작은 마을 베이토스톨렌(Beitostolen)에 도착, 호텔(Radisson Blu Mountain Resort)에 체크인한다.
베이토스톨렌은 작은 산악 마을로, 물 비린내와 흙냄새가 섞인 공기를 마시며 떠오른 단어는 ‘회복’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찢긴 감정과 지친 정신이, 이곳에서는 조용히 봉합되는 느낌.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와야만 완성된다’는 말을 이곳에서 떠올려 본다.
<글·사진 임광숙 여행 인문학 작가·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