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는 사람들한테는 가을에 첫 서리가 언제 내리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첫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은 10월 24일이었지만 올해는 11월 중순까지도 고온이 계속된 데다 밤 기온이 32도(섭씨 영도) 이하로 내려간 날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구름이 끼고 바람 부는 날이 많아 첫 서리가 늦어지고 겨울이 지각하는 바람에 이래저래 텃밭의 가을걷이 일정이 상당히 지연되었다.
늦게까지 호박과 토마토를 따 먹으며 푸른 텃밭이 유지된 건 순전히 기후재앙의 덕이었다. 별난 덕도 다 보고 산다 싶었는데 늦가을 햇볕 속에서도 가뭄은 심해 줄기가 시들해지면 물을 흠뻑 뿌려 가며 생명을 연장시켜나갈 수가 있었다. 작물들에 도움을 준 가을볕에는 비타민 D 같은 영양분도 많아 인체에 좋다는 말도 있어 가을이 길다고 불평할 일은 아니었다.
올해는 본격적인 첫해 농사라 여러 종류의 작물들을 많이 시도 했지만 시행착오도 많아 고구마, 가지, 오이, 들깻잎 농사는 거의 수확이 없었다, 그래도 행여나 하고 기다리다 뒤늦게 줄기를 다 뽑아내며 그 자리에 마늘과 무와 네덜란드산 살롯 양파를 심었다. 앞서 심은 무와 쪽파, 부추 등과 함께 추위가 닥치기 전에 월동 작물 심기를 대강 마친 셈이다.한파가 닥쳐와 모두가 얼어 버리면 그나마 허사가 될 것이지만, 아내는 배추가 없어 텃밭 농작물로 김장은 못해준 대신 겨울에도 무를 뽑아 아이들한테 섞박지나 깍두기를 만들어줄 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신명이 난다고 한다.철따라 씨앗이나 구근, 흙을 사 들이고 부대 장비나 비품을 준비하고-- 그런 비용이 딸네 통장에서 꾀나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요새말로 가성 비를 따진다면 매우 낮을 게 분명하다. 수확이 많은 것이 좋기야 하겠지만 이 텃밭이 뉴저지에 와서 인생의 변곡점인 일터가 되었고 쉼터며 운동터며 아이들과의 교류터가 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확량의 몇 배로 남는 장사였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도 애틀랜타에 사는 아들네 가족이 멀리서 달려와 충주김씨 작은 종친회( )를 열었고 저희들 남매 가족 사이 정을 흠뻑 나누고 돌아갔다. 두 남매가 잘 성장해 건강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 모습이 기쁘고 아직은 자녀들에게 부모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게 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추수감사절이 오기 전에 텃밭의 가을걷이와 함께 미화 작업도 서둘렀다. 지난 초여름, 텃밭 사이사이에 있는 예쁜 자갈 통로를 가득 채웠던 잡초를 말끔히 뽑아냈었다. 그런데 작물 키우는 데만 관심을 두는 사이 자갈길에 어느새 또 잡초들이 잔뜩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잡초들의 무서운 생명력이라니--. 세상에 잡초는 따로 없다는 주장도 있다. 벼가 자라는 논에 보리가 나면 보리가 잡초이고 꽃밭에 호박이 열리면 호박이 잡초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비하해 잡초 같은 인생이란 말도 있지만 세상에는 낮은 자리에 있으나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기는 하다. 그 반대로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능력이 없거나 남에게 해악을 끼쳐 잡초같이 뽑힘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대학교수들에 이어 천주교 사제단까지 시국선언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전국의 대학교수들은 잡초 같은 권력자는 반드시 뽑아내야 한다며 임기단축 개헌이나 자진 하야, 탄핵 등 가능한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경제, 안보가 모두 풍전등화다. 도처에 잡초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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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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