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모델로 나오는 연재물 보니 영광”본보에 연재 중인 인기 만화 ‘열혈장사꾼’의 실제 주인공 박상면 전 기아 영업이사가 신문을 펼쳐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박상혁 기자]
박상면 왕년의 ‘판매왕’ 전 기아 영업이사‘열혈장사꾼’ 실제 주인공…6,400대 자동차 판매 신화
“한인 커뮤니티 인연 소중, 은퇴 후 봉사로 인생 2막”“인생에서 누구에게나 기회는 찾아옵니다. 제가 미국까지 와서 저를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하는 연재만화를 한국일보에서 볼 수 있어 영광입니다. 늘 준비하는 자세가 영업인으로서 성공한 비결이죠.”
본보에 인기리에 연재 중인 장편만화 ‘열혈장사꾼’의 실제 주인공을 만났다. 기아에서 약 사반세기 동안 무려 6,400여 대의 자동차를 팔아치운 전설의 판매왕 박상면 전 영업이사다. 영업은 물건을 파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라는 그는 한국에서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뒤로하고 은퇴해 미국으로 건너온 뒤 현재 오렌지카운티에 정착해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박 전 이사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다. 조실부모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무작정 부자가 되고 싶었다. 모 건설회사에 입사했지만 월급에 만족 못한 그는 가방 공장부터 식당까지 수많은 사업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일확천금을 꿈꿨지만 남은 건 단칸방에서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해진 가족들. 그때 우연히 신문에서 기아자동차 판매사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그는 영업에 남은 인생을 걸기로 다짐했다.
제대로 된 이력이 없었던 박 전 이사는 취업을 위해 무작정 기아 본사 회장실로 향했다. 그는 “‘사나이로 태어나 자동차 한 번 팔아보고 싶다. 입사하면 꼭 판매왕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쳤었다”며 “그때의 나는 그만큼 필사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용기는 기회로 이어졌다. 과감한 태도를 높이 산 당시 김선홍 기아차 회장은 그를 신입 사원으로 특별채용했다. 판매왕의 첫 시작은 힘든 현실에서 비롯된 절실함과 이를 극복하려는 무모함이 합쳐진 결과였던 것이다.
자동차 영업사원의 세계는 냉혹하다. 실력은 오로지 결과로 입증될 뿐이다. 매일 점심을 3~4시로 미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지만 과로와 영양실조로 세 번이나 쓰러진 그는 방법을 바꿔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박 전 이사는 “열심히 하면 누구나 어느 정도 차를 팔수 있지만 그 이상은 하기 힘들다”며 “과로로 쓰러진 후 병원에서 ‘전국 판매왕’ 상장을 받은 경험이 새로운 영업 방식으로 방법을 바꾼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무작정 많이 만나기보다 한 번이라도 스쳐간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기억에 남기는데 초점을 뒀다. 박 전 이사는 “영업을 위해 실제 제가 관리하는 사람은 약 200명 정도였다”며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동차 하면 ‘박상면’을 떠올릴 정도로 저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 되니 박 전 이사는 더 이상 혼자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게 됐다. 그가 쉬는 날에도 200명의 사람들이 그를 위해 차를 팔고 있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게 영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악연도 인연으로 만들 정도로 모든 관계를 소중히 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박 전 이사는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알게 된 운전자가 나중에 고객이 됐다”며 “그 분이 지인들을 소개해줘 40대 넘게 차를 판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지키는 노력은 은퇴 후 미국에 와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박 전 이사는 “여기서는 한인 커뮤니티의 소중함을 매일 느끼고 있다”며 “지금 이 인터뷰도 소중한 인연의 결과로 가능했다”고 밝혔다.
이제는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을 산 박 전 이사는 돈이 아니라 나눔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 영업맨으로 활동하던 시절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배운 마술을 무기로 보육원들을 찾아가 마술쇼를 하는 봉사를 했다. 그를 모티프로 탄생한 장편만화 ‘열혈장사꾼’의 주요 인물 ‘매왕’ 역시 은퇴 후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기아에 입사한 직후 부촌인 평창동에 집을 갖겠다는 꿈을 꿨는데 막상 그 꿈을 이루니 물질적 풍요는 한계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며 “영업인 생활을 마무리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경운 기자]
“한국일보와 53년 애환 함께 했어요”창간독자 장기열 박사가 모친 소니아 석 여사의 장례식 소식을 1면 주요기사로 보도한 26년 전 한국일보 기사를 들고 있다. [박상혁 기자]
장기열박사 한인 치과의사 1호 창간독자1969년부터 매일같이 애독, 모친 별세기사 소중히 간직
“다양한 정보·미국생활 도움, 은퇴했어도 평생독자 될 것”“한국일보 창간독자로서 자긍심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한국일보 독자로 남을 것입니다”
장기열(85) 박사는 미국 치과면허를 취득하고 1971년 LA에서 개업한 첫 번째 1세 한인 치과의사이다. 10년에 1번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강산이 5번 바뀌는 동안 줄곧 같은 신문을 구독해 온 이유는 뭘까. 한국일보를 보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장박사는 “떠나온 고국에 대한 소식이 궁금했고 한인타운의 정보도 궁금해서 한국일보를 보게 됐다”며 “당시 한국일보가 유일한 소통 수단이어서 한국일보의 덕을 보지 않은 한인들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초창기 LA 한인사회 형성에 큰 역할을 했던 고 소니아 석 여사의 1남 1녀중 장남이다. 장 박사는 1963년 미국으로 건너와 고달픈 유학생활 끝에 1971년 1월 로마린다 대학 치대를 졸업했다.
그는 아직도 어머니 소니아 석 여사가 타계한 소식이 1면 탑 기사로 실린 1996년 7월15일자 한국일보 기사를 가보처럼 간직하고 있다.
“소니아 석 여사의 장례식 기사가 한국일보 1면에 실릴 정도로 어머니의 활동상이 대단했다”고 회고한 장 박사는 “한국일보는 한인 커뮤니티와 애환을 함께 하면서 한인들이 필요로 하는 미국 생활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다뤄주었다”고 강조했다.
1969년 창간독자로서 한국일보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애독해 온 장기열 박사는 “지난 1971년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치과를 개업했을 때 한국일보가 대대적으로 보도를 해주어 초창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장 박사는 지금도 아침마다 한국일보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는 “매일 아침 펼쳐보는 한국일보를 통해 한인 사회의 흐름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한다”고 밝혔다. 이렇듯이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신문 보는 일은 아직도 그의 일상의 삶으로 남아 있다.
특히 “일요일에 배달되는 LA 타임스를 통해서 미 주류사회 소식을 접해서 좋다”고 말했다.
슬하에 장성한 두 아들과 딸 하나가 있는데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계에서 일하고 있다.
장 박사는 1972년 한인회 이사 활동을 시작으로 1974년 현 LA한인상공회의소의 전신인 남가주 한인상공회의소에 이사로 들어가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1974~1975년 미국한인치과의사협회장, 1979~1981년 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했다. 또한 1976년부터 1991년까지 15년간 가주 전문의 시험관을 지내기도 했다. 상의 회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단체장을 하면서 단체 발전을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많이 털어낸 리더’로 상의 이사들에게 유명하다.
장박사의 이 같은 삶에는 어머니 석 여사의 영향이 컸다. 석 여사가 산 밥을 먹지 않은 한인회 직원이 없을 정도로 밥 사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를 닮아서일까. 장박사 역시 어머니와 같았다. 그의 좌우명이 ‘배고픈 사람 내가 돕는다’이니 말이다. 석 여사의 가르침이 장박사 삶의 토대가 된 셈이다. 그런 그도 은퇴는 피할 수 없었다. 지난 2017년 3월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일터였던 병원 문을 닫았다. 치과 간판을 뗄 때에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만감이 교차했던 것이다.
“일주일에 친구들과 2~3회씩 골프를 치면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밝힌 장기열 박사는 “앞으로도 계속 미국생활에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 한국일보를 읽으면서 최장수 독자로 남고 싶다”는 소원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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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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