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지난 2년 간 한국 방문을 포기한 이후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한국에 오게 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국은 처음 방문하는 남편과 함께 서울과 부산에서 내가 나고 자란 추억의 장소를 돌아다녔다.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많이 바뀌어 버린 동네는 얄밉게도 원래 그랬다는 듯 그저 무심히 서있을 뿐이다. 겨우 겨우 기억을 더듬어 이제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장소를 변해버린 현재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나에게 소중한 그 곳들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슬퍼하는 동시에, 이렇게 많은 변화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 낸 능력과 그 뒤의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의 노동에 감탄과 탄식을 함께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은 사이, 그 와중에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 항공 승무원들의 친절과 완벽을 추구하는 듯한 서비스, 한 가닥도 흐트러지지 않게 고정해놓은 헤어스타일과 유니폼, 불편함에도 그녀들이 신고 있던 하이힐 같은 것이다. 과도할 만큼 세심한 친절과 함께 그녀들이 묻는 말에 완전한 문장이 아닌,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모습 또한 그렇다. (물론, 안 그런 승객들도 많았기를 바란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함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마치 몰래 약속이나 한 마냥 모든 승객이 동시에 일어나 오버헤드 빈에서 일제히 짐을 내리고 나갈 준비를 하는 기내의 모습이나, 마치 한국인의 ‘빨리 빨리’의 정신(?)을 누가 더 잘 실천하는가를 경쟁하듯 무빙 워크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신속히 걷는 사람들 또한 그런 예일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열심히 걷는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변해버린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 중의 어느 사이에 있는 것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을지로에서 무자비한 재개발로 아직 싸우고 있는 이들도, 용역 깡패가 들이닥쳐 가게를 산산조각 내버린 흔적이 있는 어수선한 길을 걸으며, 허물어져가고 있는 노포들을 떠올렸다. 한국 도착 후 첫 날 밤, 체크인을 하기 위해 서있던 호텔 프런트, 그리고 그 이후로 커피숍과 음식점이나 다른 곳에서도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의 앞에는 눈에 띄는 문구의 팻말도 새로이 보였다. “폭언과 폭행 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는 “서비스를 드리는 분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말들이었다.
이렇게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그리고 그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이것들이 결국 함께 이루는 벡터 값을 생각하게 된다. 빨리 빨리의 정신으로 뭐든지 빨리 만들어내 많은 것들이 더 빠르게, 예쁘고, 단정하게 변했다. 그렇지만 그 정신으로 역사 깊은 노포들도 사라져 간다. 서비스직 직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대중에 알리고 고쳐나가기 위한 푯말이 나오지만, 서비스직 여성 근무자들은 다양한 감정과 육체적 노동에 트라우마를 입기도 하고, 여성 승무원들은 불편한 유니폼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완벽한 화장과 머리스타일을 유지한 채, 웃음을 띠며 긴 시간동안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기대 받는다.
누군가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에 있어서 변화는 한보 앞으로 가면 두보 뒤로 가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느리게 오는 것이라고 얘기를 하곤 한다. 대의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어떤 변화는 그렇게 느리게 가도록 내버려 두기엔 너무 큰 상처와 피해가 따르기도 한다. 변화의 앞과 뒤를 생각할 때 누구의 기준에서 앞과 뒤인지 벡터의 값이 항상 어느 집단의 기준에서 정해지는지, 생각해야 한다.
(*벡터: 크기와 방향을 모두 갖춘 수량)
<
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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