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직업” 환상과는 달리, 성공에 대한 압박·돈·공황… 바이올리니스트·포크 싱어
▶ 작곡가 등 뮤지션 정신질환, 일반인보다 3배 가량 많아, 도움 요청할 곳은 극소수
무대에 서는 음악인들은 엄청난 프레셔에 시달린다. 지난 달 수퍼보울 해프타임에 공연하는 저스틴 팀벌레이크. [사진 AP/ 기사 내 사실과 관련 없음]
우울증에 시달리는 밴드‘후크웜스’의 매튜 존슨. 그가 멋진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테라피스트들에게 문제를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사진 Andrew Testa/NY Times]
■ 음악인 정신건강 ‘헬프 라인’상담 내용들
여기는 영국 웨일스, 밤 11시. 전직 드럼주자 로브 애스턴(23)는 벌써 네시간 째 전화통에 매달려 있다. 세계 최초로 시행중인 음악인을 위한 정신건강 헬프 라인에서 상담하는 것이다.
비영리단체 헬프 뮤지션즈 U.K.(Help Musicians U.K.)가 작년 12월 100만 파운드(140만달러)를 들여 시작한 ‘뮤직 마인즈 매터’(Music Minds Matter)는 음악계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돈 문제에서부터 무대 공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를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할 수 있다.
처음 개설한 12월에 헬프 라인은 일주일에 평균 25건의 문의를 받았다.
애스턴의 지난번 당번은 더 바빴다. 상황이 좋지 않은 밴드를 운영하는 여성 매니저가 첫 전화였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던 그녀와 긴 통화를 마친 그는 다음번 걸려온 전화에는 바짝 긴장해야 했다. 나이 든 뮤지션이 자살할 생각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간신히 달래서 집 주소를 알아낸 그는 앰뷸런스를 보냈다.
이런 전화를 받고 나면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며 머리를 식혀야 한다는 애스턴은 얼마 후 또 다른 음악인을 한참 위로해야 했다. 투어가 잡혀서 처음엔 좋아했으나 곧이어 혹시 제대로 공연을 못하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프레셔가 밀려오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해 난리였다.
월요일 밤은 조용했다. 차를 마시고 인터넷을 하고 스트레칭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애스턴은 11시반 즈음에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불안과 우울증 문제가 심한 전자 음악인의 호소였다. “헬프라인에 전화나 이메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큰 용기이고 대화하고 싶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말한 그는 즉시 답장을 보내 언제든 전화하라고 격려해주었다.
뮤직 인더스트리에서 정신건강 문제는 무척이나 뜨거운 이슈다. 유명가수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돕는 기관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을 수년간 구상해왔다는 헬프 뮤지션즈의 수장 리처드 로빈슨은 2016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학에 음악업계의 멘탈 헬스 문제를 연구해달라고 의뢰한 것이 헬프라인 런칭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연구조사에 참여한 사람은 약 2,200명. 전도유망한 바이올리니스트부터 포크 싱어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조사에 응했는데 이중 71%가 불안과 공황상태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68.5%는 우울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이 숫자는 불안과 우울증을 가진 16세 이상 일반 영국인이 17%(전국통계)인 것과 비교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음악인의 절반 이상이 도움을 찾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웨스트민스터 대학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음악에는 치유기능이 있다. 그러나 음악 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은 파괴적이 될 수 있다”
다른 연구 결과도 비슷한 수치를 보여주었다. 2016년 노르웨이 학자들은 음악인들이 일반직 종사자들보다 심리치료를 받는 비율이 3배나 높은 것을 발견했다.
로빈슨은 음악계의 독특한 환경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하고 아무리 창조적인 사람이라도 자신의 쇼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공포를 느낀다고 설명했다. 헬프 라인에 걸려오는 전화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말한 그는 전자 음악인, 작곡가, 공연 종사자들이 가장 많이 도움을 요청한다고 전했다.
많은 음악인들은 이같은 상담 지원 노력들을 환영하고 있다. 록밴드 후크웜스(Hookworms)의 프론트맨 매튜 존슨은 자신도 자살예방 핫라인에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이라고 밝히고 “우리가 힘든 것은 테라피스트에게 문제를 설명하려고 애써도 그들은 나의 라이프가 너무 멋질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얼마나 많은 압박감을 느끼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존슨은 틴에이저 시절부터 우울증을 시시때때로 겪어왔다. 음악연주자가 되었고 그의 밴드가 히트 앨범을 2장이나 냈지만 우울증은 더 심해졌다. 재정적으로 불안한 직업인데다 무대에 오르기도 끔찍했고, 리뷰나 온라인상의 비난에 직면하는 일은 더욱 두려웠다.
“최근 발표한 싱글에 대해 유튜브 코멘트들을 들여다보았어요. 너무 좋다는 멘트들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고 ‘맘에 안 든다’는 단 한 개의 포스트만 마음에 남아 미치겠더군요”
그가 사인한 도미노(Domino) 레이블은 다행히 밴드 멤버들을 무척이나 챙겨주는 편이다. 상태가 괜찮은지 항상 점검하고, 안 좋을 때는 알아서 행사를 미루거나 취소하는 일도 나서서 해준다. “레코드 실적이 안 좋다고 해도 우리를 외면하지는 않을 사람들”이라고 신뢰를 표한 존슨은 “친구들 중에는 유명 레이블과 계약했지만 레코드 하나 나오고 바로 버림을 받은 사람도 많다”고 업계의 고충을 토로했다.
헬프 뮤지션즈의 의뢰로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연구를 이끌었던 샐리 그로스는 “헬프 라인은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이 결코 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정신 건강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은 없다”면서 이 문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고 음악인의 현실적 삶에 대한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댄스 액트로 플래티넘 앨범을 여러장 발매한 닐 반스(예명 Leftfield)는 “풋볼 클럽도 선수들의 건강을 다각도로 살피기 위해 전문가를 두고 있다”고 말하고 “레코드 회사들도 밴드 멤버들을 위한 테라피스트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겪어온 반스는 2002년 밴드가 해체되고 새 음악을 써야하는 압력에 시달리면서 심각한 위기를 겪었지만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을 여유가 있어서 극복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리처드 로빈슨은 헬프 라인은 중요한 첫 걸음이라고 강조하고 글로벌 음악업계가 ‘뮤직 마인즈 매터’와 같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으면 재능있는 음악인들을 계속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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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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