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바둑 대결이 지난 15일 막을 내렸다. 구글의 최고 경영진이 2명이나 내한할 만큼 이번 대결은 인공지능 개발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고, 결과적으로 구글은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얻게 되었다.
요즘 젊은 세대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바둑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바둑을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주말에 우리 가족이 인사드리러 가면 점심 상을 물린 후 볕이 잘 드는 거실 한 켠에 바둑판을 놓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바둑을 두곤 했다.
“바둑 한 판 두실래요?”는 말수 적은 아버지가 더 말수 적은 할아버지에게 보이는 친근함의 표시였다. 아련한 오후 햇빛 속에서 흰 돌 검은 돌이 탁탁 소리 내며 바둑판에 놓아지곤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바둑을 나는 초반 몇 분 흥미롭게 지켜보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공방이 한 시간 넘게 이어지곤 해서 곧 자리를 뜨곤 했다. 그러다 “아차차” 하는 탄식이 누군가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둘 중 한 명이 수세에 몰렸다는 것이고 곧 바둑이 마무리 된다는 신호였다.
곧이어 촤라락 촤라락 바둑알 정리하는 소리와 함께 대국이 끝나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바둑에 대해 모르지만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총 5번 중에서 4국과 5국을 인터넷 생중계로 보았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대국을 보기 위해 미 서부 시간으로 새벽 1시를 훌쩍 넘길 때까지 깨어있어야 했고, 특히 5시간 넘게 이어진 5국은 시간이 너무 늦어져 결국 중계방송을 중간에 꺼야했다.
그것은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캐스터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다음 수를 예측하며 쉴 새 없이 떠들었지만 대국장의 무거운 침묵이 노트북 화면 밖에서도 느껴졌다. 이세돌 9단은 장고를 거듭하다 초읽기에 몰리고 알파고의 판세를 뒤흔드는 한 수를 알아차리고 짧은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무서운 집중력으로 수를 계산하고 알파고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반격의 수를 두기도 했다. 1,202개의 CPU를 가진 알파고에 맞서 저력을 보여준 이세돌 9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공상과학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1984년)의 인공지능 스카이넷의 전신 또한 사이버다인 시스템즈라는 안보기술 회사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비교 자체가 다소 과장된 것일 수 있지만 알파고 대국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구글 딥마인드 대표 하사비스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컨트롤이 가능하며 여러 영화에서 언급된 안전성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소프트웨어 투자와 발전이 미국에 비해 2년 이상 뒤처져 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알파고는 스스로 딥러닝을 하며 보다 완벽해지고 있을 것이다. 몇 십년 내 우리는 똑똑한 기계들과 함께 공존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생활하는 모습이나 하는 일도 많이 바뀔 것이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발전이 기쁘고 기대되지만, 아날로그의 낭만을 좀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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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아마존 선임 프로덕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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