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라는 말이 80분 내내 실감났다.
28일 밤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펼쳐진 미국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PTX)의 첫 단독 방한공연은 멤버들의 목소리로만 음악들을 펼쳐낸 마술이었다.
파랑·녹색·빨강 조명을 쏘아대는 계단 모양의 장치만 덩그러니 놓인 무대에서 다양한 노래들이 빚어졌다. 멤버 케빈 올루졸라가 공연 중간 연주한 첼로를 제외하고는 악기 하나 없었다.
본래의 멜로디는 유지하면서 새로운 리듬과 화성, 효과음으로 옷을 갈아입은 다른 가수의 기존 히트곡들은 신선한 생명력으로 펄떡거렸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상큼한 곡 ‘프라블럼’은 한층 무르익었고, ‘크레이지 인 러브’ 등 메들리로 들려준 비욘세의 곡들은 다양한 색깔의 무지개 같았다. 레이디 가가의 ‘텔레폰’은 파이의 켜가 여러 겹 쌓여진 페이스트인 ‘밀푀유’처럼 사운드의 결이 촘촘했다.
특히 ‘에볼루션 오브 뮤직(Evolution of Music)’은 말 그대로 시간 여행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운명)을 비롯해 이달 초 별세한 미국 R&B 가수 벤 E 킹의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스’의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 영국의 또 다른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MC 해머의 ‘유 캔 터치 디스(U Can’t Touch This)’,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 등을 축약해서 한번에 부르는 4분 남짓은 팝의 진화이자 역사였다.
오리지널 곡들은 화음이 한층 역동적이었다. ‘스탠딩 바이(Standing By)’를 부를 때는 3,500여 관객들이 스마트폰에 내장된 플래시로 공연장을 환하게 밝혔으며 ‘온 마이 웨이 홈(On My Way Home)’의 후렴구인 ‘아임 온 마이 웨이’를 부를 때는 관객들이 고음부와 저음부로 파트를 나눠 ‘떼창’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잠깐 풀어놓은 ‘PTX 스토리 모멘트’ 때 홍일점 커스티 멀도나도는 크리스마스 앨범 ‘댓츠 크리스마스 투 미(That’s Christmas to Me)’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아카펠라상’ 받은 이야기 등을 꺼냈다.
무대 매너 역시 볼 만했다. ‘포 파이브 세컨즈(Four Five Seconds)’를 부를 때는 플로어석을 누볐고, ‘렛츠 겟 잇 온(Let’s Get It On)’을 들려줄 때는 여성 관객을 무대에 올려 그녀를 둘러싸고 쇼맨십을 펼쳤다.
누구하나 뒤지지 않은 역량을 지닌 멤버들은 한명 한명이 악기였다. 미치 그래시는 여성 음역대보다 높은 고음으로 무대를 종횡무진했고, 스콧 호잉은 중 저음의 보컬로 중심축을 잡았으며, 아비 카플랜은 묵직한 베이스 음성으로 무대를 쥐락펴락했다. 멀도나도는 다른 남성 멤버들에 뒤지지 않는 무대 장악력을 보여줬다.
특히 비트박스를 담당하는 올루졸라는 ‘줄리-오(Julie-O)’ 때 비트박스와 함께 첼로 연주를 동시에 하는 묘기를 부렸다. 본래 바이올리니스트 린지 스털링이 협연하는 스트로마에의 원곡을 커버한 ‘아빠 어딨어(Papaoutai)’에서는 첼로 연주로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들은 대체로 일렬로 노래를 했으나 어느 댄스 그룹보다도 역동적은 무대를 선사했다.
본 무대도 뜨거웠으나 화룡점정은 앙코르였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다섯 멤버가 생 목소리로만 들려준 ‘댓츠 크리스마스 투 미’는 아름다움의 절정이었다. 중간에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몇몇 관객들의 환호성이 금방 잦아들 만큼 거룩하기도 했다.
앙코르의 마지막 곡으로 이들의 대표 레퍼토리인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마침내 울려퍼지자 공연장 내 수은주는 더 가파르게 치솟았다. ‘겟 러키’ 등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의 곡들은 원곡 못지 않은 다채로움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지난해 음악 페스티벌 ‘현대카드 - 시티 브레이크 2014’로 처음 한국을 찾았던 펜타토닉스는 이처럼 첫 단독 내한공연에서 자신들의 진가를 오롯이 드러냈다.
이날 공연은 매진 수준인 3,500명이 운집했다. 관객들은 한류 아이돌 그룹 팬들 못지 않은 환호성을 공연 내내 쏟아냈다. 호잉은 팬들의 반응에 놀라며 한국에 여러 번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고 카플랜은 공연이 끝난 뒤 “서울 팬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SEOUL YOU WERE UNREAL)고 자신의 트위터에 적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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