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장’ 임권택 감독]
102. 무려 일백두번째 연출작이다. 한국영화의 살아있는 전설 임권택 감독이 영화 ‘화장’(제작명필름)으로 돌아왔다.
1962년 영화 ‘두만강아 잘있거라’로 감독데뷔한 그는 화가 장승업의 생애를 그린 작품 ‘취화선’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으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이름이 붙은 영화학교가 생길정도로 충무로에서 존경받는 어른이다.
신작 ‘화장’은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죽어가는 아내(김호정)와 젊은 부하 여직원(김규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년 남성 오상무(안성기)의 이야기를 담은 가운데 국민배우 안성기가 주연을, 충무로 파워맨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제작을 맡았다.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체를 이끄는 거장들의 만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3년의 산고 끝에 ‘화장’을 내놓은 임권택 감독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소 거동이 불편할지라도 에너지가 가득하다. "102라는 숫자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노(老)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 벌써 일백두 번째 영화다.
“사실 일백번째 영화(천년학)를 만들 당시에 누군가 이야기해줘서 알았다. 나는 까먹고 있었다. 숫자에 연연하지도 않는데다 초반에는 다소 부끄러운 영화도 찍었기에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다. 괜한 관심을 받는 것 같다. 싱가포르에선가 공로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부끄럽더라. 크게 이룬 것도 없는데 그간 애써온 것에 대한 상인 것 같다.”
▲ 김훈 작가의 ‘화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력있는 문체에 매료됐다. 하지만 막상 영화화하려니 쉽지 않더라. 수렁에 빠져든 느낌이었다. 김훈 작가 특유의 문장을 영상화하는 것이 힘들었다. 글 속의 인물들을 어떻게 밖으로 끌어내느냐가 문제였다. 주인공 오상무의 정신세계를 표현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판타지로만 보일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터무니없어진다. 그래서 사실감을 주는 데 힘을 썼다. 완성된 작품을 보니 터무니없는 짓을 한 건 아닌 듯하다.”
▲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돋보이더라.
“이전에 죽음을 소재로 한 ‘축제’라는 영화를 찍은 적 있다.
나이를 먹으니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축제’에서 죽음을 치장했다면 ‘화장’은 받아들인다. 나이를 먹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변하는 것이 아니더라. 생이 내 안에 축적되고 소화됨을 느낀다. 보고 듣고 느낀만큼 영화로 나온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영화를 받아들이는 관객 역시 같을 것으로 본다.
“80대인 나의 눈으로 바라본 죽음이 ‘화장’이다. 이걸 40~50대, 혹은 더 어린 관객들은 어떻게 볼 지 궁금하다. 분명히 나와는 다른 시각으로 볼 거로 생각한다. 또 나보다 더 연세가 있는 분들은 어떻게 볼지도 궁금하다. 나의 세월로 담아낸 작품인 만큼 보는 분들도 각자 겪은 세월만큼 보리라 예상한다. 화려할 필요는 없다. 담담하게 찍었고, 그렇게 봐줬으면 한다.”
▲ 임권택의 그릇이 된 안성기는 왜 선택했나.
“그를 캐스팅한 것은 기술적인 문제다. 단순히 연기력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오상무는 아내를 보살피면서도 젊은 여자를 떠올린다. 안성기가 아니었다면 부도덕하거나 느끼해 보일 수 있었을 거다. 세상에 알려진 안성기의 좋은 성품을 이용한거라 보면 된다. 그가 아니었으면 ‘화장’이 다른 색으로 나왔을거다. 안성기였기에 관객 역시 오상무를 저항없이 받아들일수 있다.”
▲ 배우 안성기를 어떻게 평가하나.
“누군가가 그랬다. 안성기의 연기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고.
그의 연기는 매일매일 다르다. 그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했지만 멈춰 있지 않다. 여전히 한계에 도전하고 있고 실제로 넘어서고 있다. 나와는 여덟 번째 작품인데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안다. 오래 산 사람은 그만큼의 연기를 해내기 마련이다. 안성기의 연기에는 세월이 담겨있다. ‘화장’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 김규리가 봄이라면 김호정은 끝을 마주한 죽음이다.
“김규리에겐 ‘섹스어필’이 있다. 색정적인 매력이 있다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다. 생동감 있으면서도 색정적인 매력이 ‘화장’에 담겼다. 김호정에겐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감정이 격하게 올라갔던 화장실 신은 내가 찍은 영화 중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이 장면에서 그가 전라 노출을 했는데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치부를 드러냈지만 아름답다. 이것을 김호정도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화장’을 상영한 적 있었는데 반응이 좋더라. 그래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덜었다. 국내 관객 반응도 같았으면 좋겠다.”
▲ 임권택 감독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저항하거나 치장하고 싶었다. 죽기 전에 세상이 기억할 업적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저 지금을 살고 뒤를 잇는 사람들에게 넘겨줄 뿐이다. 내가 죽음을 맞이한 뒤에는 그저 영화에 미쳐서 열심히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됐음 한다. 그정도다.”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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