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배우와 이토록 애달프면서도 따뜻하게 작별한 액션영화는 이제껏 없었다
2013년 11월30일,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주인공 폴 워커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했다. 영화를 통해 뛰어난 운전기술과 액션을 보여줬던 그는 가로수에 차를 들이받아 숨졌다. 10여 년 간 함께 했던 동료를 떠나보낸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 빈 디젤은 "형제여, 그대가 그리울 것이다"며 그를 애도했다. 당시는 ‘분노의 질주’ 일곱 번째 시리즈가 절반가량 촬영된 상황이었다. 워커의 죽음 이후 촬영은 무기한 연기됐다가 시나리오 수정 과정을 거쳐 워커 없이 완성됐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감독 제임스 완)이 4월1일 개봉한다. 워커는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에는 우리가 알던 워커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거대 범죄 조직을 소탕한 뒤 전과를 사면받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은 도미닉(빈 디젤)과 멤버들. 하지만 평화도 잠시, 한(성 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어 도미닉의 집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폭파된다. 이 테러를 저지른 인물은 도미닉 일당에게 동생을 잃은 데카드 쇼(제이슨 스태덤). 도미닉은 흩어져 있던 멤버를 모아 쇼를 제거하기 위해 나선다.
간단히 말해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은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브라이언 오코너’를 연기했던 고(故) 폴 워커를 위한 137분짜리 헌사다.’제작진과 배우들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친구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영화를 완성했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 예우를 해 폴 워커를 떠나보낸다. 할리우드의 허다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의례적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분노의 질주’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울림이 다르다. 브라이언을 향한 도미닉의 "가족과 함께 있는 네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대사는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들린다. 빈 디젤의 눈은 영화 내내 그리움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폴 워커가 죽기 전에 촬영한 장면도 있고, 워커 사후에 촬영된 장면도 있겠지만 ‘분노의 질주’ 가족들이 워커에게 전하는 애틋한 마음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분노의 질주’를 사랑했던 관객이라면 이번 시리즈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 영화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아름다운 영화인 이유는 폴 워커와 함께했던 이들이 이 시리즈에 헌신했던 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방식 때문이다. 그들은 쉬운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브라이언 오코너가 멤버들과 미션 수행 도중 죽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각색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분노의 질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시리즈 내내 강조했던 ‘의리’를 마지막까지 지킨다. 그들은 브라이언 오코너를 죽이는 대신 그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브라이언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도미닉과 함께 했던 ‘그 세계’를 떠난다. 해변가에서 가족과 함께 즐거워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을 지켜보던 테즈 파커(루다크리스)는 로만 피어스(타이레스 깁슨)에게 말한다. "정말 아름답지 않아?" ‘분노의 질주’ 동료들은 영원히 가족의 곁을 떠난 폴 워커를 위해 영화로나마 가족을 되찾아주는 방식으로 그를 조문한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마음 한구석에 새기고, 영원히 떠나보낸다. 한 배우와 이토록 애달프면서도 따뜻하게 작별한 액션영화는 이제껏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 폴 워커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일곱번째 시리즈는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한 액션을 선보인다. 여섯 편의 영화를 통해 이미 자동차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준 ‘분노의 질주’ 제작진은 이번에는 급기야 차를 공중에 띄운다. 이 영화의 가장 압권인 두 장면, 코카서스 액션신과 아부다비 액션신은 모두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게 포인트인 시퀀스들이다.
특히 코카서스 산맥 카액션은 오직 ‘분노의 질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적 쾌감으로 가득 차 있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만으로 남성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폭발시켜왔던 것을 넘어 이런 슈퍼카들을 활용한 폭파와 파괴를 연달아 보여줘 액션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흥분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총 하나 없는 도미닉 멤버들이 차 안팎에서 적과 맨몸으로 부딪히는 장면 또한 짜릿하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영화에 등장하는 차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도미닉의 1968년형 닷지 차저 R/T, 브라이언의 2014년형 수바루 WRXSTI, 레티의 닷치 챌린저 SRT392, 로만의 1968년형 쉐보레 카마로 Z/28, 테즈의 2014년형 지프 루비콘X 등이 등장한다.
맥라렌 P1, 2014년형 닷지 바이퍼, 페라리 458, 2012년형 부거티 베이론도 볼 수 있다. 압권은 역시 아부다비 액션신에서 등장하는 라이칸 하이퍼포스트일 것이다. 약 39억원에 달하는 이 차는 2013년에 세계에서 단 7대만 생산됐다. 영화에는 실제 라이칸 하이퍼포스트가 등장하고, 액션 장면을 위해서 5개의 모델이 만들어졌다.
볼거리가 많은 영화지만, 뒤로 갈수록 동력이 떨어지는 건 단점이다. 폴 워커에 대한 충분한 추모와 그에 못지 않은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러닝타임을 늘린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상영시간이 늘어지다보니 관객의 몰입도가 가장 높아야 할 마지막 액션 장면이 가장 지루하게 느껴진다. 초중반 부에서 워낙 센 액션을 많이 선보였기 때문에 클라이맥스에서의 액션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량을 쏟아붓기는 하지만 그것이 효과적이었다고 하기엔 너무 1차원적 쾌감에 의존한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도미닉과 그 친구들이 여전히 머리를 쓰지 않는 것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은 폴 워커의 영화다. 도미닉은 작별 인사 없이 브라이언을 떠난다(마치 폴 워커처럼). 그런 도미닉을 쫓아온 브라이언은 인사도 하지 않고 가려고 했냐며 그를 가볍게 비난한다. 잠시 나란히 도로를 달리던 두 차는 이내 갈림길에서 각자의 길을 간다. ‘분노의 질주’ 제작진과 배우들은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난 워커를 잠시 힐난한 뒤 그에게서 결국 작별인사를 받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이 엔딩이 명장면으로 꼽힐 만한 시퀀스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아마도 올해 개봉한 어떤 영화의 엔딩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불꽃같이 살다간 한 터프가이를 위한 작별 인사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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