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야구나 인생이나 어디에나 위기가 있고, 실패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기회는 있고, 충분히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제일 중요하죠. 인생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에요. ‘파울볼’이라고 하는 영화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도전할 기회가 있다는 의미를 담았지 않나 싶어요.”
16일 오후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73) 감독은 야구장도, 강연장도 아닌 서울 왕십리의 한 극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시사회에 앞서 영화를 미리 봤다”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말했다. ‘야신(野神)’이라 불리는 냉철한 승부사의 눈을 적신 영화는 이날 시사회를 연 다큐멘터리 영화 ‘파울볼’(감독 조정래·김보경)이다.
이 영화는 2011년 9월 창단해 지난해 9월 해체된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와 감독 김성근, 그리고 이 팀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고양 원더스는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야구단이다. 이 구단은 프로야구팀에도 대학야구단으로도 가지 못했거나 프로팀에서 방출당해 좌절한 이들의 재기를 돕기 위해 위메프의 CEO 허민(39)이 사비를 털어 만든 팀이다.
영화 ‘파울볼’은 일용직 노동자, 대리운전기사 등 각양각색의 이력을 가진 야구 선수들이 1,093일 동안 고양 원더스에서 패자부활을 위해 야구방망이를 돌리고, 공을 던지는 모습을 담았다. “선수도 아니던" 그들은 김성근 감독의 강훈련 속에 점차 선수의 모습을 갖춰가고 한 명의 인간으로 다시 선다.
“성공했다는 것이 꼭 프로에 가는 것만은 아니죠. 순간순간 자기 한계라는 것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게, 그게 성공이 아닌가 싶어요. 자신을 몰아치는 것 그곳에 길이 있어요. 이게 선수들에게는 야구를 앞으로 하든 안 하든 어마어마하게 귀중한 것이 될 거라고. 어느 위치에 가도 남에게 지지 않을 거라는 마음만 있으면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파울볼’은 고양 원더스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를 함께 다룬다. 지는 것에 익숙하던 이 팀은 3년 동안 프로야구 2군 팀과의 경기에서 통산 90승25무6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또 소속 선수 31명을 프로구단으로 보냈다.
하지만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은 여전히 프로야구선수가 아니었다. 프로로 간 선수보다 고양 원더스에 남아있는 선수들이 훨씬 많았다. 결정적으로 고양 원더스의 구단주 허민은 지난해 9월11일 선수들에게 팀 해체를 통보했다. KBO 이사회는 고양 원더스가 2군 리그에 합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허민 구단주는 야구단을 이끌어갈 동력을 잃었다.
언젠가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운동을 하던 선수들은 갑작스러운 팀 해체 소식에 눈물 흘렸다. 김성근 감독 또한 붉어진 눈시울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결국 손으로 눈을 가렸다. 이런 모습이 모두 영화 ‘파울볼’에 담겼다.
우리 시대 최고의 리더이자 스승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은 이날 자리에서 “선수를 순수하게 대하는 것 그게 지도자의 기본이 아닌가 싶다"고 짚었다.
“내 밑에 있는 아이들의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부모의 입장에서 선수를 대해야지 감독 입장에서 (선수를) 대하면 거리감이 생겨요. (감독 생활을 하면서) 내가 덕 본다는 생각은 없어요. 내 모든 것을 바친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살지 않나 싶어요."
이런 김 감독의 진심이 ‘파울볼’에 녹아있다. 영화 말미, 고양 원더스 초창기 멤버였다가 1년 만에 팀을 떠났고, 다시 김 감독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 뒤 이 팀의 마지막을 함께한 설재훈 선수는 말한다. “버틸 때까지 버텨 보려고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3년 만에 다시 프로야구판으로 돌아온 김성근 감독은 ‘파울볼’이 “야구의 귀중함을 알려줬다"며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돼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몇 명이나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대전구장은 1만3,000명이 들어오니까 대충 짐작이 되는데, 영화관은 잘 오지 않아서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이 영화에는 인생이 있지 않나 싶어요. 기쁨도 있고, 눈물도 있고, 좌절도 있어요. 자기 스스로 가능성을 찾고 있는 많은 분이 보시고 스스로 뒤를 돌아보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해요."
‘파울볼’이라는 제목은 파울볼은 다시 칠 수 있는 ‘기회’다. 아직 아웃도 아니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상태라는 의미에서 김성근 감독이 선택한 단어다. 4월2일 개봉한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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