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뢰’는 완성도를 떠나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중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배우 김상경이 또 다시 형사로 나오고, 박성웅이 살인마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흔한 연쇄살인 스릴러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영화는 사건 해결에는 관심이 없다.연출을 맡은 손용호(40) 감독은 관객에게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대신 묵직한 질문 하나를 툭 던져 놓는다. 그는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이야기하고, 우리 사회가 가해자를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에 관해 묻는다.
사형제를 다룬 영화가 ‘살인의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사례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한 기성세대의 당황스러움을 보여준 ‘방황하는 칼날‘(2014)도 있었고, 사형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내보였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도 있었다. 해외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사형제에 찬성하는 ‘듯한‘ 견해를 꾸준히 견지하면서 ‘살인의뢰‘만큼 또렷한 마지막 장면으로 마무리 지은 영화는 아직 없었다. 그리고 이 결말은 매우 논쟁적이다.
영화가 개봉한 날(12일) 손용호 감독을 만났다. 그에게 직접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느냐고. 손 감독은 “난 기본적으로 사형반대론자"라며 말을 이었다.
-개봉했다. 기분이 어떤가.
“쫄깃하다.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완성된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았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당신의 자체적인 평가는 어떤가.
“이제 관객의 몫이다. 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냈다고 본다. 나름 만족한다."
-영화의 어떤 점이 맘에 든다는 것인가.
“배우들의 연기다. 그게 가장 큰 목표였다. 극한 상황에 캐릭터를 몰아넣고, 그 상황에서 폭발하는 연기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만족한다."
-물론 감독이 디렉팅을 하기는 하지만 연기는 감독이 손댈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않은가. 좋은 연기가 목표였다는 말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린다.
“일리 있는 말이다. 내가 배우의 세세한 연기 모든 것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를 최대한 잘 끌어낼 수 있는 연출 방식을 생각했다. 그렇게 했던 이유가 있다. 우리 영화는 감정을 천천히 쌓아올리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배우도 관객도 너무 힘든 영화가 된다.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오바하는 연기는 아니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 완벽하게 해줬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살인의뢰’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우리 영화가 사형제에 관해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 내가 답답한 건 우리 제도가 멈춰있다는 것이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것은 아닌데, 사형은 17년 동안 집행하지 않았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범죄는 갈수록 발전하고, 피해자는 느는데 시스템에는 변화 없다. 그것에 분노를 느꼈다. 여론이 움직여야 돈이 움직이고, 그래야 제도가 바뀌는 것 아닌가. 우리 영화가 그런 담론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사형제를 담론화해야 하는 건가.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나. 너무 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정의는 이겨야 하고, 사건은 해결돼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부모가 되면서 세상을 보는 인식이 바뀐 것 같다. 올해 딸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한 사건 피해자의 처지를 생각하게 됐다."
-질문을 바꿔보자. 소설가나 영화감독 등 창작자에게 있어서 첫 작품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보통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그런데 당신은 사형제를 다뤘다. 왜 사형제를 다룬 영화가 당신의 첫 작품이어야 했는가.
“이 영화를 십 년 동안 준비하고 그런 건 아니다. (웃음) 다른 영화 준비하다가 엎어지고 그랬다. 이 이야기는 영화사 대표가 초고를 제공했다.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떠냐고 제안하더라. 그래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봤다. 한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살인사건 피해자 아버지가 밥을 먹을 때마다 죽은 딸의 밥을 식탁에 올려놓더라. 딱 그 한 컷으로 시작했다."
-영화의 설정이 부분적으로 너무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절대악을 상정해놓고, 관객으로하여금 분노하게만 하는 것 같았다. 이게 논쟁을 끌어내기 위한 올바른 방식인가.
“그게 담론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봤다. 강천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더 촌스럽다. 강천에게 사연을 주면 관객이 모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박성웅이 연기한 조강천은 절대악이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그런 악이다. 그런 점이 우리 영화가 새로운 점이라고 본다. 그런 강렬함이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
-‘살인의뢰‘는 스릴러적인 요소와 메시지가 함께 있다. 두 가지를 조율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균형에 영화의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고 본다.
“맞는 말이다. 그게 어려웠다. 외줄 타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난 상업영화 감독이다. 피해자의 아픈 이야기를 장르 공식 안에 집어넣어야 했다. 너무 피해자 중심으로 가면 영화가 심하게 우울하고 지루해진다. 그렇다고 스릴러적인 요소만 강조할 수는 없었다.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한 게 이런 부분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다."
-영화의 결말과 조강천 캐릭터 조형도 상업적인 부분을 고려한 것인가.
“없지 않다. 강렬해야 하니까."바로 그 상업적인 면에서 좀 걸리는 설정이 있다. 강천이 피해자 시체를 묻은 곳을 알려주지 않는 것 말이다. 이 설정은 바로 그 상업적인 측면에서만 관객의 분노를 더 일으키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꼭 필요한 설정은 아닌 것 같다. 과해 보였다.
-자료들을 반복해서 보면 더 큰 분노를 느꼈을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맞다. 그 부분이 두려워서 경계했다. 내가 실제 사건에 빠져들면 영화가 완전히 균형을 잃을 것 같았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바로 목욕탕 결투 장면이다.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이미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이스턴 프라미스’의 목욕탕 액션 장면이 언급되기도 했다. 오마주인가.
“오마주 아니다. 찍을 때부터 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스턴 프라미스’와 우리 영화의 목욕탕 장면은 완전히 다르다. 다만 장소가 목욕탕이라는 것, 나체로 결투를 벌이는 인물이 있다는 것 정도다."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인가.
“’이스턴 프라미스’를 봤기 때문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참고한 것도 아니다. 목욕탕에서의 액션이 잘 나오지 않는 건 촬영이 힘들어서다. 내가 찍어보니까 알겠더라. 매트를 깔아놓고 넘어져도 아픈데, 목욕탕 맨바닥에서 넘어지는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봐라. 우리 영화는 그 장면의 컷을 잘게 나누지 않았다. 오히려 길게 갔다. 눈속임할 수 없다. 김의성 배우는 거의 탈진 상태까지 갔다. 정말 고생했다. 난 이 장면에 자부심을 느낀다."
-감독이 말한대로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김의성이었다. 대단한 카리스마더라.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와는 딴판이었다. 어떻게 캐스팅했나.
“김의성 배우는 ‘관상’에서 한명회 역을 맡지 않았나. 난 그 영화를 보면서 한명회는 누가 연기할까 정말 궁금했다. 영화 막판에 김의성 선배의 얼굴이 나오는데 임팩트가 있고, 설득력이 있더라. 그래서 꼭 함께하고 싶었다."
-다시 영화의 메시지적인 측면으로 돌아와서 묻고 싶다. 영화에는 메시지가 반드시 있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메시지가 있는 영화도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드라마를 2시간 동안 관객에게 보이면, 그 안에는 결국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우리 영화는 그런 메시지가 더 분명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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