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감정 받고도 몇 년 후면 다시 등장
잭슨 폴락의 작품으로 전시되었던 페인팅 ‘무제, 1950’
잭슨 폴락이나 리처드 디벤콘 같은 20세기 대표적 화가들의 작품은 수백만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가짜가 극성을 부린다. 크리스티 경매소 등 대표적 경매회사에서 판매하는 작품들 중에도 간혹 가짜가 나와서 매매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가짜로 감정 받은 작품들이 사라진 듯하다가는 몇 년 후면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곤 하는 것이 미술품 시장의 현실이다.
‘가짜’ 팔아도 특별한 법적 처벌 없어
전문가들 소송 겁나서 감정 꺼리기도
리처드 디벤콘 재단의 총무인 리처드 그랜트는 몇 년 전 어퍼 이스트 사이드 아파트를 방문 중 벽에 걸린 3점의 드로잉을 보자마자 문제를 발견했다. 이들 드로잉은 디벤콘 재단이 앞서 가짜로 감정한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그 작품들이 다시 나와서 자신이 가짜를 사들인 줄도 모르는 새 주인은 자랑스럽게 벽에 걸어둔 것이었다.
디벤콘 재단처럼 화가의 유산을 보존하려는 기구들에게 가짜 미술품을 가려내는 작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가짜를 가려내도 한동안 잠잠하다가 5년이나 7년 후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장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짜 미술품을 다시 파는 것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계속 진행되고 점점 심해지는 문제라고 수집가나 딜러, 예술가 재단, 치안당국은 입을 모은다. 연방수사국(FBI)이 범죄에 연루된 위작들을 압수할 수는 있지만 시중에 나돌고 있는 위작들 중 이들은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가짜로 판명된 미술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 지에 대한 분명한 규정이 없다. 어떤 작품이 어떻게 위조되었는지, 몇 작품이나 관련되었는지, 가격대는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제각각이다.
예를 들면 지난달 합의에 도달한 맨해턴의 한 갤러리와 갤러리 측이 가짜 잭슨 폴락을 자신에게 1,700만달러에 팔았다고 주장하는 고객 케이스.
FBI는 ‘실버 폴락’이라고 알려진 이 페인팅이 대규모 위작 작업의 일환인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그러나 지난해 갑자기 문을 닫은 문제의 갤러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다. 갤러리 측은 여전히 작품이 진짜 폴락 작품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짜라는 의문이 제기된 1,700만 달러짜리 페인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위작 논란이 공개적으로 벌어진 만큼 가까운 장래에 이 페인팅이 거래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장가가 당장 오늘이라도 이 페인팅을 폴락의 작품이라며 판다고 해도 법적으로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위작이 확실한 경우 법집행관들은 작품에 가짜라는 스탬프를 찍거나, 아주 드문 경우에는 작품을 파기함으로써 재판매가 안 되도록 조치한다. 그런데 그 또한 잡음이 없지 않은 것은 잘못하다가 진짜 미술품을 파기해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이나 구매자나 미술 시장 자체 내의 감시 체제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술가 재단이나 작품 관리 기관들은 이베이나 소규모 경매소에서 위작을 발견하면 그 사실을 딜러나 웹사이트에 알릴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작품을 압수하거나 가짜라고 표시를 할 권한은 그들에게 없다. 이렇게 위조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종 지하로 숨어들어갔다가 나중에 진짜라는 주장과 함께 다시 등장하는 게 보통이다.
로이 릭텐스타인의 작품들을 관리하는 릭텐스타인 재단의 잭 카워트 총무에 의하면 소장품이 가짜라는 사실을 수집가들에게 알려도 별로 소용이 없다. 얼마 있다 보면 수집가들이 가짜들을 진짜인 척 조용히 팔아넘기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6개월 쯤 후 진품인지 감정해달라며 똑같은 작품을 보내 온다”고 그는 말한다.
프랑스, 스위스 등 다른 나라들에서는 작가의 ‘윤리적 권리’를 인정해 작가의 후손이나 재단 측이 법정에 위작 파기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한편 예술 법 전문가인 맨해턴의 변호사 로널드 스펜서는 미국에서 그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가짜라고 감정되었던 J.M.W. 터너의 페인팅들이 불과 2달 전 진품으로 다시 확인이 되었다.
그러니 감정 결과 가짜로 확인되었다는 사실을 차후 수집가들이 알도록 스템프를 찍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작품 파기는 절대로 안 된다고 스펜서는 강조한다. 많은 아트 딜러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가짜라고 파기하는 게 관행이 된다면 진짜 작품이 잘못해서 갈기갈기 찢기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위조 미술품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일은 사실 전문가들이 꺼리는 일이기도 하다. 미술품 전문가나 기관들은 더 이상 진품 감정을 하거나 가짜로 의심되는 작품을 가려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가짜 감정을 내릴 경우 그 작품 소장가의 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요 경매회사들의 경우, 팔려고 선전한 작품이 가짜라는 사실을 발견하면 보통 판매를 취소하고 작품을 소장가에게 돌려보낸다. 예를 들어 지난 1997년 크리스티는 45만달러에 판매한 마크 샤갈 작품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매매계약을 취소하고 작품을 주인에게 돌려보냈다. 그리고 난후 이런 가짜들이 어떻게 처리되는 지는 추측에 맡길 뿐이다.
치안당국이 개입하면 그림은 달라진다. FBI나 법무부, 우정국(우편물 위조와 관련된 위조 케이스를 일부 담당한다) 등 정부기관들은 위조 관련 유죄 판결이 내려지거나 재판 전 합의에 도달한 경우 위작에 ‘가짜’ 라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기꾼들은 보통 위조 미술품들을 정부당국에 압수 당하지만, 속아서 가짜를 산 구매자는 일반적으로 수사 종결 후 문제의 작품이 가짜라는 편지와 함께 소장품을 돌려받는다. 때로는 작품들을 FBI가 보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04년 정교한 위조품 제조 작업을 지휘했던 일라이 사크하이는 피해자들에게 1,250만 달러를 보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피해보상을 받은 소장가들은 기꺼이 작품들을 FBI에 기부했고 FBI는 가짜 미술품 컬렉션 목록을 늘리게 되었다.
디벤콘 재단의 그랜트 총무가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거실에서 발견한 가짜 디벤콘 드로잉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그 작품들은 행방이 묘연하다. 소장가는 위작들을 아트 딜러에게 반환하고 돈을 돌려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랜트가 딜러에게 계속 전화를 했지만 답이 없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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