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업적인 이유로 영화를 만들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먼저죠. 예술적인 부분을 가장 중시합니다."
’그랑블루’ ‘레옹’ ‘제5원소’ 등 스타일리시한 영화들로 유명한 뤽 베송 감독은 12일 부산 해운대 인근의 한 호텔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 철학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새 영화 ‘더 레이디(the Lady)’를 들고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1997년 ‘제5원소’의 국내 개봉 때 처음 한국을 찾은 이후 14년 만이다.
’더 레이디’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지 여사의 삶을 다룬 영화다. 부산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지난 11일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됐다.
근간 액션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그에게 어떻게 이런 정치적이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게 됐는지 물었다.
"나는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묘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랑블루’는 바다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했고 ‘제5원소’는 하늘, 공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렸죠. ‘잔다르크’는 14세기 중세를 배경으로 했어요. 이번 영화도 아시아에서 일어난 한 이야기로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전 영화들에 비해서는 더욱 현실적이고 개연성 있는 전개라는 점이 조금 다르죠."
그는 감독으로서 진지한 액션 영화를 만든 적도 없다고도 했다.
"’레옹’은 액션이 아니라 사랑 이야기였죠. 액션 영화를 제작은 많이 했고 각본도 많이 썼지만, 연출하는 것은 아주 싫어해요."
그는 실제로 ‘택시’ ‘트랜스포터’ 시리즈, ‘테이큰’ ‘콜롬비아나’ 등 많은 액션 영화들을 제작했지만, 직접 연출한 작품은 적다. 액션 영화를 연출하기는 싫어하면서 제작은 왜 그리 많이 하는지 물었다.
"액션 영화 연출은 조금 지루한 작업이에요. 하지만, 각본을 쓰는 건 아주 재미있어요. 액션 영화를 보는 것도 아주 좋아하고요. 그런데 연출을 하려면 숏들이 아주 짧고 여러 촬영 기술도 많이 필요하고 세트장에서 오래 기다려야 해서 싫어요. 30살이 되기 전에는 그런 것들이 흥미롭고 재미있었죠. 그래서 나는 항상 젊은 감독들, 뭔가 해보려는 신인 감독들에게 기회를 줍니다."
그는 "나는 액션보다는 인물과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작업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더 레이디’에서 고정된 카메라 프레임에 량쯔충(楊紫瓊.양자경)의 얼굴이 잡히고 남편과 통화하면서 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찍을 때 카메라 모니터를 보고 스태프들이 모두 훌쩍훌쩍 울었어요. 나는 그런 장면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는 배우 량쯔충의 제안으로 이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됐다고 했다.
"미셸(량쯔충의 영어 이름)이 이 시나리오를 처음 들고 왔는데, 읽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시나리오를 덮었을 때 이 영화를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후 2년간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이 작업에 몰두했어요."
이 영화를 만들며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물었다.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사람을 표현해야 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일단 영화의 키워드는 그분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관련된 정보들이 별로 없었죠. 함께 한 동지들은 모두 감옥에 가 있고 가족들은 15년간 그분을 만나지 못하고 옛날 기억들만 있는데, 기억이 너무 오래돼서 잊혀지거나 왜곡되고 부풀려진 것도 있었어요."
그는 그래서 마치 형사처럼 모든 정보를 하나하나 캐가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미얀마에 있는 여사의 집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영국 옥스퍼드의 집은 실제 그 장소를 찾아가서 찍었다고 했다.
심지어 영화에 등장하는 개 역시 실제 아웅산 수지 여사가 키우던 개와 같은 종의 개를 출연시켰다고 말했다.
"또 하나 힘든 점은 진실이 꼭 영화적이지는 않다는 거였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기 마련이고 영화에 속도감을 주기 위해서는 뭔가를 추가하거나 지어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었으니까요. 뭔가를 지어내서 덧붙이는 것은 그분에 대한 존경심을 무너뜨리는 것이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다룰 때는 영화적인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가 그리 정치적이거나 어려운 영화는 아니라고 했다.
"이 영화는 진정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이해하기 힘들거나 고차원적인 접근을 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상업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가 모두 갖고 있는 중요한 감정을 일깨워주는 영화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객들이 존재하는데, 어린 청소년들은 폭탄이 터지는 액션영화를 좋아할지 몰라도 40대 이상 관객들은 내용이 풍부한 영화를 좋아합니다. ‘킹스 스피치’ 같은 영화는 액션이 아니지만 큰 성공 거뒀잖아요."
주연배우인 량쯔충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녀에게 이번 역할은 평생에 딱 한 번 할 만한 역할일 거예요. 외모도 정말 비슷하고요. 아웅산 여사는 ‘스틸 오키드(강철난)’라는 별명이 있는데, 여자가 그렇게 가족을 저버리고 조국에 몸바쳤다는 것이 강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인식됐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이 여성을 사람들에게 항상 사랑받는 이미지로는 그리려고 하지 않았아요. 미셸은 그런 면을 잘 표현해줬죠. 오히려 남편 역할은 좀더 쉬웠을 거예요. 늘 착하고 아내를 배려해주니까요. 아마 모든 여성들이 바라는 남성상이 아닐까요(웃음)."
그는 지난해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아웅산 여사가 가택연금이 해제되면서 여사를 실제로 만났다고 했다.
"당시 편집이 안 끝난 상태여서 영화를 보여드리진 못했습니다. 그 만남에서 받은 인상은 사고가 아주 열려있고 똑똑하고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관대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나게 돼서 정말 영광이었죠.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절대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흥미나 관심을 많이 보였는데, 본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고 자만심 같은 것도 전혀 느낄 수 없었죠."
그는 2006년 ‘영화를 더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2009년 다시 메가폰을 들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바뀐걸까.
"어느 순간 영화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더군요. 내 안에 있는 뭔가가 다 말라버렸는지…더 표현하고 이야기할 게 없더라고요. 프랑스에는 ‘말할 것이 없으면 입을 닥쳐라’라는 속담도 있는데(웃음), 열정 없이는 절대 영화를 못 만듭니다. 그래서 그냥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제작은 재미있어서 계속 했어요. 그리고 다시 그 열정이 오기를 기다렸죠."
그럼에도 그다지 조바심은 나지 않았다고 했다.
"17살 때부터 영화 촬영장에서 살기 시작해 35년이 넘는 시간을 촬영장에서 보낸 인생이라 어느 순간 욕망이 사라져버린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고 별로 걱정은 안 했어요. 그래서 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아주 존경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열정적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기가 어려운데…."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엄청나게 많아요. 당장 뭘 할지는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고요. 다음 주에 사랑에 빠질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답 못 하잖아요."
(부산=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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