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가고 잊혀지는 세상에서 뭔가 뻔하지만 옛날식 사랑 얘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어요."
당대 최고 스타 배우들 중 한 명인 소지섭을 7일 오전 부산 해운대 인근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전작 ‘영화는 영화다’에서 영화배우로서 강한 인상을 남긴 데 이어 3년 만에 정통 멜로 영화 ‘오직 그대만’으로 돌아왔다. 복서 출신으로 거친 인생을 살아온 한 남자가 부모를 여의고 시력마저 잃어가는 한 여자를 만나 아픈 사랑을 하는 얘기를 담은 영화다.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얘기지만, 작가주의 감독으로 명성을 쌓아온 송일곤 감독의 연출력을 만나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승화됐다. 여기엔 두 주연배우 소지섭과 한효주의 열연도 큰 몫을 했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이 영화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선정돼 개막일인 지난 6일 영화제를 위해 새로 건립된 ‘영화의전당’에서 처음으로 상영됐다.
소지섭은 "워낙 통속적인 멜로이다 보니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멜로가 잘 돼야 본전이란 이미지가 있지 않느냐"며 "그래도 이 사랑 얘기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그는 이번 작품이 이전 히트작인 ‘발리에서 생긴 일’이나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비슷하게 거칠고 간절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하자 "성향이 그런 것에 좀 끌리는 것 같다. 하나에 꽂혀서 쭉 달리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그게 액션일 수도 또는 사랑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스타일의 작품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다는 그는 "보면서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4개월 동안 촬영했고 그 전에 준비 과정까지 포함하면 ‘철민’으로 살았던 기간이 더 긴데, 작업 여운이 많이 남아있기도 하고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느낌을 떠올리니 더 그랬죠."
그는 새 영화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철민’이란 인물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들었을 것 같다고 했다.
"멜로 부분이 강하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감정을 유지해 나가려고 노력했어요. 힘든 신(scene)들이 많았거든요. 드라마는 빠르게 지나가는데, 영화는 하루종일 단 몇 컷을 찍기 위해 계속 그 상태로 있어야 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어제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사실 약간 튀는(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어요."
실제로 그런 간절한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냐고 묻자 그는 "그런 경험이 있진 않지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평소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여성상을 묻자 "무엇보다 내 일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예전엔 왜 선배들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과 결혼할까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오래 하다보니까 왜 그런지 조금 알겠다. 굳이 설명 안 해도 눈빛만 보고 넘어가는 일들이 많으니까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마흔이 되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는 그는 특히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어도 싫어하는 건 맞추기 힘들더라고요. 물론 예쁘면 좋겠죠. 그런데, 나이가 드니 이젠 그게 그렇게 중요하진 않아요. 이 일을 하면서 예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는데, 얼굴만큼 마음이 예쁜 사람은 별로 없더군요. 그래도 어딘가에 있긴 있겠죠?(웃음) 이제 잘 찾아보려고요."
그는 계속 거친 역할을 주로 하는데, 그런 작품이 많이 들어오냐고 묻자 "시나리오는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데,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바스트 컷이나 대사로 하는 연기보다는 약간 몸을 쓰면서 하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나이가 더 들면 말로 하는 연기를 많이 할텐데, 지금도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다"고 웃었다.
수영선수 출신인 그는 배우들 중에서도 특히 탄탄한 몸매로 여성 팬들에게 사랑받는다. 이번 영화에서도 복서 출신으로 애인인 정화를 위해 다시 몸을 만들고 격투 경기에 나가는 장면 등이 나온다.
평소 몸매 관리에 많이 신경을 쓰는지 물었다.
"해야죠. 배우로서 하지 않으면 안 되고요. 영화 준비하면서 운동을 조금 하긴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턱걸이 장면에서 원래 뒷모습만 찍기로 해서 등근육 쪽으로만 운동하고 앞은 신경을 별로 안 쓰고 있었는데, 촬영 당일에 다 찍게 됐다고 해서 준비가 안 된 채 나간 게 아쉬워요. 운동했던 사람들은 그런 게 좀 있거든요. 늘 몸 관리를 잘 해야하는데, 조금만 망가져도 노력을 안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그런 게 있어서요."
다른 배우들 중에 몸이 좋다고 인정하는 배우가 있냐고 묻자 "상우형(권상우) 몸이 정말 좋다. 운동을 정말 많이 안 하는데 그렇게 유지되는 건 체질인 것 같다"고 했다. 또 "승헌이 형(송승헌) 가슴이 제일 좋다"며 "저는 그분들에 비하면 완전히 아기다"라고 몸을 낮췄다.
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지만, 그도 이제 연기 경력이 15년이 넘는 배우다. 그에게 배우란 어떤 의미일까.
"연기자가 되야겠다 마음먹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할수록 재미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만큼 고통이 따르는 것도 맞아요. 15년 정도 하고 있는데, 머릿 속에 두 가지 생각이 계속 공존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좋은 나이인 것 같아서 많이 하고 싶은 반면에 안에서 더 이상 끄집어낼 게 없어서 새로운 작품을 할 때 너무 힘들어요. 이제 촬영장에 나가면 재미보단 고통이 따르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하는 것 같긴 한데, 속이 비어 있어서 그런지 진짜가 아니라 기교로만 하는 것 같고…."
슬럼프냐고 묻자 "연기에 있어서는 슬럼프가 맞는 것 같다"며 "채울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다른 게 될 수도 있지만, 그런 시간이 길다고 채워지는 건 아니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줘야할 것 같아요. 자꾸만 ‘남들이 바라보는 나’에 맞춰서 살게 되는 것 같거든요. 막상 나를 보면 진짜 나는 없고 남들이 기대하는 나만 있는 것 같아서 ‘도대체 내가 뭐지’ 이런 생각을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나를 찾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기존의 거칠고 남성적인 역할 말고 새로운 캐릭터로 연기 변신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안 그래도 다음 영화가 그런 시도라고 할 수 있어요. ‘회사원’이라는 액션영화인데, 저를 좀 새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캐릭터도 그렇고 비주얼도 그렇고…. 사람죽이는 일이 직업인 남자인데, 일반인들처럼 출퇴근하고 상사한데 욕도 먹고 그런 설정이 재미있어요. 상황이나 설정이 재미있게 가는 게 있어요."
그는 또 "내 연기는 얼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불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 부럽다"며 "류승범이나 하정우 씨 같은 배우들을 보면 에너지가 넘쳐보이고 열정이 보여서 굉장히 부러운데, 이런 배우들과도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영화는 영화다’로 신인감독으로 데뷔했던 장훈 감독과 함께했고 이번에도 상업영화로는 첫발을 디디는 송일곤 감독과 함께한 그는 다음 영화 ‘회사원’ 역시 신인감독과 호흡을 맞춘다고 했다.
"감독님만 믿고 가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우선 시나리오가 재미있어야 하고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같이 만들어가는 걸 좋아해요."
’오직 그대만’ 역시 그의 제안으로 원래 더 어둡고 무거웠던 철민 역할이 조금 더 밝아지면서 코믹한 상황도 추가됐고 극중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도 그가 평소 좋아하는 영화라고 하자 감독이 추가한 것이라고 했다.
"멜로로 흥행한 작품이 많지 않은데, ‘오직 그대만’이 한국 멜로영화 중에 톱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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