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정치를 사로잡고 있는 당파 논리가 재정적자 감축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1일로 세 번째 주재한 의회 지도자들과의 백악관 담판은 결정적인 진전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한 채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협상의 어려움을 예감한 듯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매일 만날 것"이라며 의회 지도자들을 압박했다.
사실 지난 7일 첫 백악관 회동 이후 큰 흐름에서 타결을 예고하는 합의가 이뤄졌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을 이끄는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통 큰 결단’에 바탕을 둔 흐름이었다.
비용절감과 세입증액을 통해 향후 10년간 4조 달러를 절약한다는 ‘빅 딜 패키지’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협상 후 아직도 차이가 많이 있지만 "건설적인 만남이었다"고 밝힌 대목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워싱턴 정치권이 국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 발짝씩 물러선 초당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내비쳤다.
그러나 일요일인 10일 백악관 회동을 앞둔 9일 밤 베이너 의장은 돌연 4조 달러 규모의 ‘빅 딜 패키지’는 불가능하다면서 2조 달러 선으로 절감 규모를 줄인 ‘스몰 딜’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에도 전화통화를 통해 이 같은 입장을 통보했다.
상황의 급반전이었다. 이유는 당초 베이너 의장이 오바마 대통령과 합의를 이룬 ‘빅 딜’안에 대한 공화당 내 반발이 거셌고, 베이너 의장의 당내 지도력까지 위태롭게 할 정도였기 때문이라는 게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다.
베이너 의장이 당내 반발 여론을 돌파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공화당 내 `티파티’ 계열의 보수파 의원들은 물론이고 베이너 의장에 이어 하원 ‘넘버 2’인 에릭 캔터 원내대표까지 베이너 방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폈다고 한다. 특히 떠오르는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인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은 베이너 방안에 반대투표할 것이라고까지 공언했다.
반발의 이유는 ‘빅 딜’ 방안에는 부유층 감세혜택을 중단시키는 방안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주장한 이 방안을 수용하는 것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증세는 절대로 없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당내 보수파들의 입장을 거스르는 것인데다, 공화당 지지자들을 이탈시켜 내년 대선과 총선에서 당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이들의 반발 입장에 개재돼 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11일 "당 지도부 내부는 물론 대통령 경선후보부터 티파티 초선그룹에 이르기까지 `어떤 증세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발로 베이너 의장의 입지가 없어져버렸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베이너 의장은 ‘단지 지위를 좇으며 20년 의정 활동을 해온 게 아니다. 뭔가 큰일을 성취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대통령과 함께 야심 찬 재정적자 감축안을 추구했지만, 이 고귀한 야망은 높은 당파성의 현실정치 벽 앞에 부닥쳤다"고 해석했다.
큰 정치에 대한 베이너 의장의 결단이 현실정치를 극복하기에는 힘이 약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민주당 진보진영에서도 오바마-베이너 빅딜안에 대한 반발이 제기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베이너로부터 세제 개편안을 양보받아내기 위해 민주당이 반대해왔던 사회보장 프로그램 예산을 줄이겠다는 방안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진보파의 대표주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를 비롯, 당 지도자들은 노인 복지 혜택 삭감을 포함한 어떠한 합의에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도 디폴트를 막기 위한 ‘단기적인 임시 미봉책’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가능하겠느냐"며 ‘빅 딜’을 통해 4조 달러 규모의 예산절감 방안으로 가야 한다고 의회를 계속 압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문제해결을 위해서라면 민주당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 다른 편도 같은 행동에 나설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정치적 고통’을 감내하는 통 큰 양보를 촉구했다.
특히 "베이너 의장은 큰일을 하고 싶어한다"며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후퇴한 베이너를 고무시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오는 8월2일까지 국가 채무 상한이 증액되지 않으면 사상 초유의 미국 정부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사태를 초래할 이번 협상의 타결 여부는 워싱턴 정치가 당파성을 극복할지와 백악관과 정치권의 결단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협상 진행과정에서 드러난 한 가지 교훈은 빅 딜을 통한 대가를 얻기 위해서는 큰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라며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워싱턴 정치판에는 그러한 정치적 용기가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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